상림을 감싸고 흐르는 위천이 이젠 겨울을 녹이고, 버들강아지 노래를 따라 따뜻한 아지랑이와 함께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강 따라 조성된 산책길을 따라 걸어본다. 그날 천령군 태수 최치원도 지금 기자가 걷고 있는 이 길을 걸으며, 혼돈 속에서 몸부림치는 천년 왕국 신라의 해짐을 미리 알고 눈시울을 붉혔으리라. 조선 반상사회보다도 더한 골품제가 엄존하는 조국에 대한 회한이 온 몸을 뒤덮었을 것이다.
그가 남긴 ‘난랑비서(鸞郞碑序)’를 보면, “우리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 이른다. 그 교(敎)의 기원(起源)은 선사(仙史:화랑들의 역사,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두고 한 말로 보인다.)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三敎·佛 , 仙 , 孔)를 포함하고 중생을 교화한다.<중략>”라고 치원은 적고 있다. 이는 치원 역시 ‘난랑’이라는 화랑 출신의 비문을 지을 때, 화랑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혹 그도 화랑을 이용해 서라벌 영화를 꿈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상림을 나와 함양 나들목에서 대전 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상 나들목으로 빠져 나왔다. 이어 서상면사무소에서 곧장 서상면 금당리 논개 묘역으로 향했다. 위천은 봄빛이었는데 이곳은 잔설이 기자를 붙잡는다. 좁은 도로를 잠깐 달리면 언덕위에 높다랗게 누런 잔디의 봉분이 두 개 나타난다. 위쪽이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충의공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묘이고, 바로 아래쪽이 진주 촉석루 의암에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신안 주씨 논개의 묘다.
넓은 주차장에 적막만이 나뒹굴며, 죽어서도 남편 곁에 묻힌 다시 태어난 서라벌 원화, 절개의 상징 논개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그동안 논개는 기생으로 폄하되어, 친정인 신안 주씨 집안과 남편의 집안인 해주 최씨 문중에서도 외면하여, 약 400년 동안 철저히 무시를 당하여 왔다. 그러다가 1975년 해주최씨 족보에 ‘의암부인 신안주씨’로 오르면서 한을 조금이나마 풀었고, 1987년 양 문중에서 최경회장군과 논개의 묘를 찾아 대대적으로 성역화 하여, 구천을 헤매던 의암 논개의 한은 이제 극락에서 영면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절개의 고장 함양사람들의 역사 되찾기를 바라보면서, 우리네 서라벌인들은 과연 어떻게 역사를 대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아직은 한숨이 먼저라고 말하고 싶다.
논개는 매우 특이하게 4갑술(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갑술시 - 1574년 9월 3일 밤)의 사주(四柱)를 타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 주달문은 술시(戌時)에 딸을 낳았으니까, 개(犬)를 낳은 것과 같다고 하여 ‘놓은 개’, 즉 ‘논개’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논개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에게 의탁되는데, 숙부 주달무는 김풍헌에게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아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논개 모녀는 외가로 피신하게 되나, 곧 김풍헌의 제소로 장수 관아에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만난 사람이 재판관인 현감 최경회였다. 경회는 논개 모녀를 무죄방면하나 갈 곳이 없던 두 사람은 관아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연명하게 되었다. 이후 논개의 나이 17세(1590년) 되는 해 그동안 자신과 어머니를 보살펴 준 담양부사 최경회에게 부실(副室)로 들어앉게 되었다고 한다.
신라에는 원화가 있었다. 비록 준정이 남모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자, 원화를 폐지하고 화랑으로 대신하게 하였지만, 서라벌 여인네의 마음가짐만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논개는 천년신라 여인네들의 전통인 곧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지고, 시대를 달리하여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한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지아비 및 나라의 원수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갚으려고 한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는 판단이 선다.
만해 한용운은 그의 시 ‘논개의 애인이 되어 그의 묘(廟)에’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낯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은 가지 않습니다/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는 살 같은 광음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논개(論介)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그대는 조선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나는 시인으로 그대의 애인이 되었노라<중략>
분명 논개는 서라벌 순수를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의미일 것이다. 이곳 함양은 최치원뿐만 아니라, 아직도 수많은 화랑 원화가 다시 태어나는 곳이라는 반가운 느낌이 한줄기 시원한 바람으로 발길을 이끌고 있다.
박 진 환 프리랜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