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생물이 나서 살아온 햇수를 나이 또는 연령이라고 한다. 한자(漢字)에 깊은 뜻을 둔 중국인들은 보통 나이를 말할 때 숫자로 쓰기도 하지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비유를 들어 말하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15세는 지학(志學), 20세는 약관(弱冠), 30세는 이립(而立), 40세는 불혹(不惑), 50세는 지천명(知天命), 60세는 이순(耳順)이라 하고 나이 일흔이 된 것을 고희(古稀)희라 한다.   그중에서 70세를 고희라 부르는 유래는 두보(杜甫)의 인생칠십 고래희(古來稀)라는 싯귀(詩句)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사람이 일흔을 산다는 것은 드문 일로 여겨졌던 때이다. 두보의 이 귀절이 나오는 곡강이수(曲江二首)라는 제목의 둘째 시를 소개하면 이렇다.   조정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잡히고/매일 강어귀에서 취해서 돌아오네/술 빚(외상)은 항상 가는 곳마다 있지만/ 인생 칠십이 예로부터 드물구나/꽃속으로 날아드는 나비는 그윽하고/물을 적시는 잠자리는 힘차게 날고 있다/내 전하고픈 말은 풍광과 함께 흐르는데/잠시 서로 즐기며 서로 떨어지지 말자꾸나.   곡강은 장안 중심지에 있는 못 이름으로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했으며 특히 봄이면 꽃을 찾는 사람들로 붐비었다고 한다.   이렇게 화창하고 아름다운 못가를 거닐면서 두보는 덧없는 인생을 아쉬워하고 한탄했다. 소년시절부터 시를 잘 지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고, 각지를 방랑 생활을 즐기다 이태백, 고적같은 문인을 알게 되었다.   이백과 함께 중국 문란의 양대산맥을 이루며 시성(詩聖)이라 불리웠다. 그의 시를 성립시킨것은 인간에 대한 위대한 성실이었으며 인간의 사실, 인간의 심리, 자연의 근본에서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어 시를 지었다.   그의 시에 영향을 받은 학자로는 송나라 시대의 왕안석, 소식같은 문인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이제현, 이색이 크게 영향을 받았고, 조선시대에는 유윤겸이 있고 현대에 와서는 이병주씨가 두보의 맥을 이어왔다.   방랑시인 두보가 주창한 인생은 고희인 것을 예감이라도 한듯 그는 이순을 넘기지 못하고 59세에 세상을 떠났다. 요즘은 의술이 발달했고 모두가 건강에 관심을 갖고 정열적으로 살기 때문에 60,70 나이는 부끄러운 인생으로 생각하고 회갑이니 고희연이니 하는 것을 아예 사양하는 시대에 와 있다. 경로당에도 80이 가까워야 출입하고 그 이하는 젊은 층에 든다. 인생의 나이가 평균 75세 이상으로 노인층 인구가 해마다 높아간다.     옛날에도 `인(人-사람)은 노(老-나이)로 쓴다’말처럼 사람의 차이는 나이에 있다.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사건 사고와 많의 종류의 병들이 인간을 위협하고 있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주의와 조심으로 그리고 병마와 싸우는 인간의 투지가 사람의 목숨을 연장시키고 있다.    일생일사, 생고병사라는 말처럼 이땅에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는 고생하다 병들어 반드시 죽고 만다. 지기수기(知己修己)라는 말이 있다. 나를 아는 것, 자신을 갈고 닦는 것, 그리고 나아가서 자신을 이기는 경지인 극기에 이른다면 인생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것이다. 무욕(無欲)이 장수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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