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공경 100년 전통 ‘선산수호회’
성지는 천북면사무소가 있는 동산리의 동쪽 산기슭에 위치한 마을이다. 소리못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소리못’이라고 불러오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강정’과 ‘중방’을 병합해 성지리라고 했다. 불고기단지로 유명한 화산리의 남서쪽, 갈곡리의 북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천북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1km 지점에 ‘강정마을’이 거랑을 끼고 옹기종기 모여 있고, 골짜기를 따라 더 거슬러 오르면 ‘소리못마을’이 있다. ‘중방’은 소리못과 갈곡리의 중간 등성이에 자리하고 있다. 소리못이 성지1리, 중방· 강정마을이 성지2리를 이루고 있다.
경주에서 7번 국도를 이용해 포항으로 가다가 천북면으로 들어가는 927번 지방도를 타고 들어가면 천북농협사거리에 이르고 여기서 직진하면 천북면사무소가 나온다. 면사무소 정문에서 계속 나아가면 성지마을에 이른다. 보문관광단지의 하일라콘도 뒤쪽으로 넘어가는 길을 택해 물천과 갈곡을 거쳐 가도 된다. 경주시청 기준 9km, 12분 거리다.
장수마을 열쇠는 맥반석 암반수?
성지1리는 경주손씨 집성촌으로 절반이 손씨이다. 주로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고, 한우 86두를 부업으로 기르고 있다. 최근에 소리못 주변으로 식당(3)과 여관(3), 공장(3) 등이 들어와 있다. 전체 64가구, 176명에 남자 78명, 여자 98명이 생활하고 있다. 본래 이 마을은 ‘동뫼’라는 마을 앞 등성이에 있었으나 참상(慘喪 젊은이의 죽음. 즉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는)이 3대로 있어 터가 안 좋다고 지금의 자리로 마을이 내려오고 그 일대는 손씨 문중의 묘소가 되었다. 이곳으로 내려와서 집안이 번창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장수마을이다. 물 좋고, 산 좋아 중풍이나 바람으로 누운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 일대가 질 좋은 맥반석 암반으로 특히 물이 좋아 그 덕에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오래 산다고 믿고 있다.
작은 마을에 90살 넘은 어른들이 이순희(95 인호댁), 노재호(93 정동댁), 허귀남(92 신호댁), 손춘익(91 송호어른), 정순교(90 상동댁) 등 5명이다.
성지2리는 강정과 중방이 각각 45가구, 120명씩으로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고 한우 150두를 기르고 있다. 최근에 강정마을에 공장들이 들어섰다.
봉덕사 종소리? 희귀동물 울음소리?
소리못[聲池] ‘소리못’, ‘소리지’, ‘소오리’, ‘소리’라고도 하며, 동산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본래 이곳은 넓은 골짜기라는 뜻에서 ‘광곡(廣谷)’, ‘광동(廣東 예장지나 비문)’이라고 부르다가 조선시대에 작은 못이 생긴 후 이 못둑에 올라서면 봉덕사 종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못 이름을 소리못이라고 부르면서 마을이름도 ‘소리못’, ‘성지’, ‘소리지(素里池)’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못에 희귀동물이 살아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하여 소리못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또 광곡역(廣谷驛)이 있었으므로, ‘광곡역’이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마을 위쪽 골짜기를 지금도 ‘너브골’이라고 부른다. (64가구)
당나무 팽나무(경주에서는 포구나무라고도 한다)로 수령 약 300년 되었다. 동제는 50여 년 전까지 매년 정월보름날에 지냈으나 지금은 없다.
정강(江亭) 소리못에서 넘치는 물이 흘러내리는 물 맑은 냇가에 위치한 마을로 이곳에 정자가 있었으므로, 마을이름을 ‘강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정자는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다. 최근에 호정정사와 성남서사가 들어서 강정마을의 이름이 새삼 빛을 발한다. (45가구)
중방(中坊) 성지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곳에 승방(僧坊)이 있었다고 하여 ‘중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성지와 갈곡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중방’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45가구)
당나무 수백 년 된 회나무가 있었는데 동제를 지낼 사람이 없어 1970년대에 누군가가 밤에 모르게 베었다고 한다.
꿈에 받은 회재선생 마지막 시
호정정사(昊亭精舍) 승문원 교리를 지낸 경주인 호정(昊亭) 김세량(金世良 1502~1571)을 추모하여 그 후손들이 1979년 강정마을에 세운 정사다. 호정공은 조선 중종 때 별과에 장원으로 뽑혔으나 당시 2등으로 뽑힌 같은 마을 호계(虎溪) 이을규(李乙奎)에게 양보하여 임금의 칭찬과 아울러 본도(本道) 도사(都事)에 임명된다. 그 후 진해현감과 청도군수를 지냈다. 공은 회재선생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진해현감으로 있던 어느 날 꿈에 강계로 유배 가 있던 회재선생이 나타나 시 한 수를 지어주었는데....
침상아래 신발 두고 떠나니
정기가 하늘과 통하는구나.
담담하게 풀 속에 한결같이 누워
홀로 신선봉에 노닌다네.
投履牀下去 精氣與天通
淡然一草裏 獨遊神仙峯
꿈에서 깨어난 공은 ‘선생이 돌아가셨구나.’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며칠 후 부음이 왔는데 꿈을 꾼 날이 회재선생이 돌아가신 날이었다. 회재선생이 돌아가실 때 호정공의 꿈에 보인 것은 두 분의 인연이 남달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운암공부조묘(耘庵公不示非廟) 임란공신 경주인 운암(耘庵) 최봉천(崔奉天 1564~1597)을 모신 묘우다. 운암공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선략장군 훈련원 첨정으로 제수되고, 33세에 경상좌도 수군우후에 제수되었다. 그 이듬해 정유재란에 출전하여 영천의 창암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순조 21년(1821)에 가선대부 병조참판(兵曹參判)으로 증직되었다. 강정에 있는 공의 부조묘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기와집 형태로 1848년에 지었으며 경상북도 문화제 제44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일호정(一湖亭) 증 이조참의 경주인 우헌(迂軒) 손성도(孫星度)를 추모하여, 그 후손들이 1953년 성지에 세운 정자이다. 벼슬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후진을 가르치며 학문에만 뜻을 두고 평생을 닦았다고 한다.
성남서사(聲南書社) 경주인 운암 최봉천을 추모하여 그의 후손들이 1986년에 강정의 신주를 모신 사당의 오른쪽에 지었다. 경내에는 운암공의 위패를 모신 상충사(尙忠祠)가 있다.
성지리지석묘(聲池里支石墓) 소리못 언저리 보리밭에는 2기의 고인돌이 대체로 원형을 잘 보존한 채 남아 있다. 지금 이 고인돌 옆에는 로즈장여관이 들어서 있다.
참상(慘喪)으로 마을 옮기고 자손번창
용함산 소리못마을 앞 등성이로 본래 이곳에 소리못마을이 있었으나 용의 턱에 해당하는 곳이라 기운이 세어 젊은 사람이 자꾸 죽어 마을을 옮겼다고 한다. 그 후 손씨들의 묘가 많이 들어서 ‘동뫼’라고 부른다.
길마재 고개가 마치 질매(멍에)처럼 생겼다. 이 고개를 통해 대단위목장을 거쳐서 동대봉산을 넘으면 오천 오어사가 나온다.
용치골 큰 골짜기로 대곡에는 윗용치와 아래용치 2개의 웅덩이가 있다. 그 아래에 30년 전에 막은 대곡저수지가 있다.
절골 중방마을 위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절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도 절터가 남아 있다. 신라시대에 건립한 절이라고 알려지고 있으며 연화문양이 새겨진 주춧돌 8개가 있었으나 5년 전에 도난당했다고 한다. 아직도 그곳에는 탑재들이 묻혔다고 한다.
점테골 옹기점이 있었던 곳으로 최근까지도 사기, 기와조각 등이 많이 나왔으나 지금은 논이 되었다. 마을 위에 있다.
막산막골 산돼지 등 짐승을 지키기 위해 막을 지어 놓고 지켰던 곳.
초막골 옛날에 초막이 있었던 골짜기로 점테골 위에 있다.
손씨골 소리못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손씨(孫氏)가 살았다.
도트미 중방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포항시 남구 대송면 쪽으로 통하는 큰길이 있었다고 한다. 돌트미재의 아래쪽이다.
도틈재 중방 동쪽 등성이로 포항 연일로 넘어가는 고개.
거무숲들 숲이 우거져 검게 있었던 곳을 들로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안 말라 농사가 잘되었다고 한다. 손씨골 들어가는 입구로 소리지 위가 된다.
돈구디 일꾼들 놀이터로 내기 등 놀이가 이루어졌던 점테 부근의 터. 점테골 아랫부분으로 점터가 그 부근에 있다.
소리못 성지 서북쪽에 있는 못으로 소리지(素里池), 성지(聲池) 라고도 한다. 본래 작은 못을 일제강점기인 1942년경에 새로 막았다.
절골못 본래 작은 못이 있었던 곳에 30여 년 전에 새로 막아 중방지라고 한다.
인물 많은 장수마을
선산수호회 이 마을의 경주손씨 소리못문중은 100년에 이르는 웃어른에 대한 공경의 전통이 전해오고 있다. 선대에서 마을 뒷산(임야 130정보)을 문중재산으로 물려주면서 집안어른들에게 해마다 경로잔치를 베풀어 어른을 공경하고 효를 다하는 정신을 이어가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회화나무(괴화나무) 소리못마을 어귀에 서 있는 3그루의 회화나무로 경주손씨 16세 우헌공 손성도(孫星度)가 세 아들을 위해 심었다고 전해온다. 이 나무는 높이 15m, 둘레 4.2m로 1982년 천북면 나무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나무의 수령이 360년 정도 되는 것으로 평가, 우헌공이 심었다는 이야기와는 약 100년의 시간차이가 난다.
선행비 남원양씨 남운이라는 이가 이 마을 손씨가문에 시집와서 아이도 없이 일찍 남편을 여의고, 5형제 맏며느리로 어려운 가정형편에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도 4명의 시동생과 27명의 조카들을 훌륭하게 잘 키우고 72세에 돌아가셔서 선행비를 세워주었다.
소하천 정비가 시급
이 마을은 특별히 주민들이 바라는 숙원사업은 없고 마을 소하천 정비가 미비해 비가 많이 올 경우 홍수가 우려된다고 한다.
이 마을은 유난히 인물이 많다. 이계원(80 전 황남초등학교 교장), 손성호(77 경주시 노인회장), 손홍락(71 전 부산 00학교장), 손무창(63 전 경주시 사적관리사무소장), 손효익(59 부산정보고교장), 장지종(59 중소기업청 상임이사), 손치호(56 부산 정암안전유리), 손상락(54 삼성중공업 이사), 이두환(55 경상북도 환경과장), 손용주(54 대구대 교수), 손순호(52 천북우체국장), 손성원(50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손돈호(48 동국대 교수 화가), 손욱호(44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그 외에 의사, 석·박사 등 인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