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단다는 뜻으로 마부작침(磨斧作針)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부단한 노력과 끈기와 인내로 일하면 기필코 성공한다는 것이다. 좀 시대에 뒤떨어진 답답한 말같이 보이나 그 일화를 알게되면 쉽게 이해가 되고 스스로 웃게 된다. 그냥 생각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고 우둔하고 속 없는 사람같이 보이지만 대의(大意)를 가지고 그 뜻을 음미해 보면 묘한 해답이 나온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선(詩仙)이라 불리웠던 이백은 자는 태백이고 호는 청련으로, 시성(詩聖) 두보와 더불어 중국시(詩)의 양대산맥을 형성한 천하귀재였다.   이백보다는 이태백으로 유명한 그는 다섯살때 육갑(六甲)을 암송했고, 열살 나이에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읽었으며 호방한 성격에 협기가 있어 재물을 모르며 베풀고 방탕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열 다섯살 때부터는 제후(諸候)들과 관계를 맺고 스무살이 넘도록 아버지에게 글을 배울 정도로 영특했다고 한다.    이백은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축나라땅 성도에서 생활할 때 이러한 일이 생겨났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찾아 학문을 연마하려고 입산수도 하였는데 공부에 싫증이 났고, 돈 뿌리며 흥청망청 놀던 시절이 그리워 스승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하산하여 도망쳐 버렸다. 고향집을 향해 걷고 있던 이태백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어른님, 지금 거기서 무얼하고 계십니까?”하고 물었다.   “내가 지금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다네”   “그렇게 큰 도끼가 바위에 문지른다고 바늘이 되겠습니까?”   “그럼, 되고 말고지,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야...”   이백은 그 노파가 하신 말씀가운데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이란 말에 귀가 번쩍이고 그 말의 뜻을 깊이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 생각을 달리한 이백은 그 노파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부모님 곁을 찾는 일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하던 산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백은 몇날 며칠을 두고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고 있는 노인네의 인내심과 노력에 크게 감동을 받아 학문 공부에 열정을 기울렸다.   그는 두보와 함계 이두로 변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대가이다. 그의 작품이 1천100여점이 현존하고 있을 정도로 당나라 시대의 거장이다.  어린시절은 촉나라에서 생활했으며 난봉적이고 성격이 난폭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며 방랑 생활을 계속하다가 43세에 관직에 오르기도 했으나 오래가지 않았고 우리 나라에서는 이태백을 주태백으로 불리울 만큼 그의 생애는 불우하고 복잡했다.    그의 생애가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마친 그의 본질은 세속을 높이 비상하는 대붕(큰인물)이요 꿈과 정열에 사는 멋있는 문장가였다. 두보가 언제나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살고 인간 속에 침잠하는 방향을 취하는데 대하여 이백은 오히려 인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고 후세가 평가한다.    “우리집 아이는 머리는 괜찮은 편인데, 인내와 끈기가 없어요” 우리나라 어머니가 자기의 자녀를 대게 그렇게 평가한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 만드는 정신을 깨달은 이백은 그 교훈에 일생을 걸고 중국의 제1문장가가 된것, 순간적 변화라 하기에는 너무 빠른 판단일까? 우리 모두가 명심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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