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달(경주.경북문단)   겨울 초입, 동창천 제방을 따라 산내 장터가 들어섰다. 병풍을 두른 듯, 산속에 갇힌 오지마을이라 불과 십여 분이면 한바퀴 휙, 둘러 볼 손바닥 만한 장터. 그런데도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재첩과 고둥, 힘차게 물살을 가르는 산천어와 빙어. 전국에서 제일로 쳐준다는 산더덕의 쌉싸름한 향과 이름 모를 산나물들이 모처럼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노인들과 함께 겨울의 오후를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작은 장터라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 어느 것 하나 쉽게 보고 넘기지 못하는 타고 난 장돌뱅이 기질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고는 장정 팔뚝만한 것을 나뭇단처럼 묶어 놓은 할머니 한 분과 마주 앉았다.   “할머니, 이게 뭐예요?”   “아이고, 젊은 양반 여태까정 이것도 모르능교”   무척이나 답답하다는 듯, 할머니의 ‘아이고’ 라는 한마디에 오랜만에 발동이 걸린 나의 장난기는 금새 주눅이 들고 말았다.   “이기 마라 카는 긴데, 이걸 말려서 가루로 빠순기 바로 이긴 기라”   길거리 자판기에서 파는 일회용 마차는 먹어보았지만 마를 직접 구경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게 신기했던지 할머니는 옆에 놓인 병을 가리키고는 볼이 쏘-옥 들어 갈 정도로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은 마의 효능까지 구수하게 뱉어냈다.    “이걸 묵으면 전봇대도 훌쩍 뛰어넘는 기라”   “네? 전봇대를요……?”   나는 상상도 못했던 전봇대란 한마디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몸에 좋다는 무공해니 신토불이라는 말이 얼마나 식상했으면 할머니의 전봇대란 말 한마디에 귀가 번쩍 튀였을까. 비록 과장된 말인 줄 알면서도 말도 안되는 소리가 아니라 거짓말처럼 말이 되는 소리였다.    거짓말 같은 참말!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참말 같은 거짓말은 수없이 들어왔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거짓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하고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나는 할머니가 뱉은 그 한마디 만으로도 값을 흥정하고픈 생각이 싹 가시고 말았다. 그리고는 할머니 앞에 놓인 마와 나 사이의 거대한 차이를 생각했다. 내게 있어 마는 한낱 입으로 들어가는 건강식품이요, 할머니에겐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야 할 소중한 물건이었다. 나에겐 먹고 나면 금새 잊혀질 물건에 불과하지만 할머니에겐 팔고 나면 또다시 산을 헤매고는 몇 날, 며칠이나 말리고 다듬고 보듬어야 하는 자식과도 같은 귀한 존재였다.   그러고 보니 장터에 죽 늘어선 모두가 물건으로 비쳐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전부가 캐고, 건지고, 말리고, 까불려야 하는 하나같이 산이고 물이었다.   “할머니 이거, 한 병 주세요.”    나는 값을 깎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할머니가 건네주는 마를 안아 들었다. 그러자 오랜 시간 산을 헤맸을 할머니의 그 마음이 따뜻하게 가슴으로 전해져 오고는 마를 찾아 헤매는 그 마음이 어쩌면 이 세상을 버티게 하는 힘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해가 산중턱에 뉘엿뉘엿 기울 무렵, 나는 모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전봇대라도 훌쩍 뛰어 넘을 기분으로 성큼성큼 산내장터를 빠져 나왔다. 약      력 경남 합천産 포스코 사보기자 역임 경주문예대학 졸업 경주문협,경북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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