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자 벌써 서설 속에서 매화의 암향(暗香)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매화 사랑에는 조선조 퇴계 이황이 백미일 것이다. 그가 얼마나 매화를 사랑했으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유언으로 던지는 말이 “매화에 물 주어라”였겠는가.   오늘 자연과의 교감으로 유명한 신충이의 흔적을 찾으러 경남 산청으로 발길을 내딛고 있다. 경남 산청군 소재지에서 곶감으로 유명한 덕산방면으로 가다, 칠정 조금 못미처 오른쪽으로 작은 다리 하나가 보이는데 이곳 입구에 다물민족학교란 간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을 따라가면 탑동마을이 나온다. 마을이름에서 이미 이곳이 단속사지 3층탑이 있는 곳이란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마을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 언덕위에 날렵한 당간지주가 하늘을 찌를 듯 곧추서 있다.    여기서 10여 미터를 가면 오른쪽으로 난 좁은 길을 들어서면 바로 단속사지 3층 쌍탑이 천년의 이끼에 쌓여 오늘도 기행자를 맞이하고 있다.    때는 신라 34대 효성왕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이었다. 형 중경이 부왕인 성덕왕 14년 12월에 태자에 봉해졌으나, 동왕 16년 6월에 죽는다. 이에 아버지 성덕왕은 23년 봄에 둘째 왕자인 승경을 태자에 봉하니, 이가 효성왕이다. 이후 13년이 지나 성덕왕이 훙(薨)하니 왕위에 오르게 된다.    아버지가 36년간이나 왕위에 있었으니 아무리 둘째 왕자라고는 하나 나이가 상당하였다고 판단된다. 또한 효성왕은 즉위 6년 만에 돌아가니 더욱 사실인 것 같다. 아마 효성왕과 신충의 인연은 오랜 왕자, 태자시절을 보낼 때인 것으로 보인다.    하루는 왕자 승경(후일 효성왕)이 신충과 잣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면서 “내가 보위에 오르면 너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소성왕은 공신을 책봉할 때 이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오랜 기다림과 설움으로 신충은 그날 약속을 지켜본 잣나무를 어루만지며 자신의 속내를 잣나무에 부쳐 읊었다. 현대어로 불러보면,     한창 무성한 잣나무/가을이 되어도 이울지 않으니/너를 어찌 잊으랴 하신/우러르던 그 낯이 변하실 줄이야/달그림자 내린 연못가/흐르는 물결에 모래가 일렁이듯/모습이야 바라보지만/세상 모든 것 여읜 처지여!/(마지막 구절은 없어졌다)   노래를 마친 신충은 이 향가를 적어 잣 가지에 붙였더니 그만 잣나무가 말라버렸다. 이 소문이 서라벌에 퍼져 곧 효성왕(동왕 3년)의 귀에 들어가자, 효성왕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그에게 중시라는 벼슬을 내리니 곧 잣나무가 다시 푸르름으로 돌아왔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머리 검은 동물이 배신을 한다.’고 한다. 인간이 아무리 제잘난 맛에 산다고 해도 의리를 배신하면 침묵의 자연이 그냥 내버려두지 않음을 향가 ‘원가’는 일깨워 주고 있다고 하겠다.   지금 나라는 온통 배신 얘기로 들끓고 있다. 수 만년 영원할 것 같이 온 국민 앞에서 맹세하며 웃는 얼굴로 서로 손을 맞잡던 것이 얼마나 지났는지, 벌써 온갖 저잣거리 상말이 난무하고 있다. 이태 전 어느 CF에서 한말이 기억난다. “줘도 못 먹나?”   이곳 단속사(斷俗寺)는 원래 금계사(錦溪寺)였다고 한다. 시냇물처럼 수많은 신도에 몸살을 앓던 지주가 금강산 유점사에서 온 도승에게 “어떻게 하면 신도들이 적게 올 수 있을까”라고 묻자 그 도승은 절 이름을 ‘단속사(속세를 끊어 버린 절)’로 바꾸라고 한다.    절 이름을 바꾸자 정말 신도들의 발길이 끊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속사는 불에 타 망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이곳 단속사지 뒤편에는 630년 된 매화나무가 있다. 물론 미당 서정주의 동백꽃으로 유명한 고창의 선운사에도 수령 600년의 매화나무가 한 그루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성리학의 정수를 느끼게 해주는 매화는 이곳의 정당매(政堂梅)가 아닌가 한다. 정당매는 진주사람 통정공 강회백선생과 통계공 회중 형제가 유년시절 이곳 단속사에서 공부하던 시절 심은 매화라고 한다.    그 후 통정선생의 벼슬이 정당문학겸 대사헌에 이르렀다고 하여 후대인들과 승려들로 부터 정당매로 불러졌다고 한다.   의리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삶의 덕목의 하나인 것이 사실일 것이다. 시끄러운 판을 떠나 속세를 끊는 심정으로 단속사지에 가서 정당매의 암향이라도 한 번씩 맡고 오는 것이 상말 기자회견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란 충고를 해주고 싶다.                          박 진 환 프리랜스 기자<pjw32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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