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복사 터가 있는 마을로 답사객 발길 잦아   동대산 언 계곡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입춘 지낸 나무들은 벌써 수액을 끌어올려 가지 끝으로 생명의 기운을 보내고 있었다. 두꺼운 옷자락을 스치는 바람의 기운이 한층 부드럽다. 쌍춘년이라고 했던가?    입춘이 두 번 들어 백년해로하고 잘산다는 속설 때문에 유난히 결혼식이 많았던 병술년의 두 번째 입춘이 설을 뒤로한 채 이미 지나갔다. 성질 급한 개구리 한마리가 잠에 취한 눈을 껌벅이며 봄기운을 반긴다.   말방은 경주시 외동읍 지역으로, 동대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마을이다. 경주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울산으로 가다가 괘릉과 활성을 지나면 국도 왼쪽으로 외동석재라는 돌 공장이 있는 마을이다. 동대산을 경계로 양북면 장항리와 맞닿아 있고, 남으로는 개곡리와 서쪽으로는 국도를 사이에 두고 죽동리와 북은 활성리와 이웃하고 있다.    말방은 신라 원성왕(元聖王) 때 파진찬(波珍飡) 김원량(金元良)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숭복사 터가 있는 마을로 동·서 2기의 3층 석탑이 남아있어 답사객들의 발길이 잦은 마을이다. 숭복사 어귀가 되어 마방(馬房)이 있었으므로 ‘말방’이라 했다고 한다. 또 불국사에서 이곳까지 절이 이어져 비를 맞지 않고 올 수 있었다고 하며 그 끝자락에 해당하므로 ‘말방(末方)’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언방(言方)’이라고도 불린 것으로 보아 말(言)과 관련성이 깊은 땅이름인 것으로도 보인다.    장산·양짓말·하촌이 말방1리, 말방·탑리가 말방2리를 구성하고 있다. 범죄 없고, 윗어른 공경하는 ‘모범마을’   말방1리는 동대산 서편 기슭에서 꿈틀꿈틀 흘러내리던 산등성이가 숨을 고르는 7번 국도변 평지의 들판에 자리한 마을이다.   숭복사지를 비롯한 동대산 쪽의 골짜기와 등성이는 모두 말방2리에 해당하고 말방1리는 특별한 유적이 없다. 마을 자랑거리로 100년 된 교회와 마을 어귀 도랑둑에 서 있는 오랜 땅버들 3그루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마을은 외동읍 32개 마을 중에 범죄 없고, 경로효친사상이 높아 ‘모범마을’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비록 호수는 적지만 20여개의 다양한 성씨가 모여 살면서도 일가친지처럼 화합이 잘 된다고 한다. 마을일을 자기 일처럼 손수 돕고 협동하는 잘 사는 마을이라고 한다.    현재 80가구에 96세대 470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거주인구는 이보다 적다고 한다. 주민등록은 이곳에 두고 다른 곳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넓은 들판을 끼고 있는 이 마을은 주로 논농사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밖에 다른 특용작물은 없고 한우 150두를 기르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올해 아흔일곱살의 김경이(연안댁) 할머니로 마을을 산책하고 길가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정도로 아주 건강하시다. 이장이 확인해준 주민등록 명부에는 1907년생으로 등재되어 있어 올해 100세이지만 할머니의 띠를 확인한 결과 돼지띠로 밝혀져 97세로 확인되었다.    동제 및 당나무 1902년에 장산교회가 들어온 이후로 동제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오랜 당나무가 있었으나 모 장로가 베었다고 한다. 노루가 누워 있는 형상인 ‘장산’   장산(長山, 獐山) 마을 앞으로 길게 늘어진 산이 마치 노루처럼 생겼다고 하여 ‘장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동대산 준령이 흘러내려 그 여운이 길게 이 마을 앞을 거쳐 현재 국도 서쪽 동맷갓까지 연결되어 마치 노루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개간하여 농토가 되고 공장이 들어서 산은 그 형체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45가구)    양짓말 장산의 남쪽 양지쪽에 있는 마을로 양지(陽地) 바른 곳에 있다 하여 ‘양짓말’로 불렀다고 한다. (20가구)   하촌(下村) 장산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말방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다 하여 ‘아랫말’, ‘하촌’이라 불렸다고 한다.   국도 동쪽에 인접한 마을로 말방1리 마을회관과 장산교회가 이 마을에 있다. (15가구) 100년전 건립된 장산교회가 자랑   동창(東倉)터 동창(東倉)의 터. 지금의 마을회관 뒷들이다.   동맷갓(120m) 장산 마을 서쪽에 국도변에 있는 산으로 마치 노루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장산(獐山)’이라고 했다고 한다. 본래 동대산에서 이곳까지 산이 연결되어있었으나 낮은 부분은 농토로 개간되었다.    동창뒷들 동창(東倉) 터 뒤에 있는 들. 도로동쪽에 넓은 들 마을 뒷들이다.   창앞들 동창(東倉) 터 밑에 있는 들로, 장산 북쪽에 있다.   고랑못 안 고랑못 안쪽에 있는 논.   새못안 새못 안쪽에 있는 논.   새봇밑 새보 밑에 있는 논.   쌍보밭  장산 남쪽에 있는 밭이다. 상보들 위에 있는 밭으로 지금은 논으로 변했다고 한다.   고랑못 말방 서북쪽에 있는 못으로 두 고랑이 모이는 자리에 못이 있다.   새못 말방의 서쪽에 새로 만든 못. 동창뒷들에 있던못이었는데 30년 전에 경지정리로 인해 지금은 논으로 변했다고 한다.   새보 장산 북쪽에 새로 만든 보.   상보 장산 동남쪽에 있는 봇도랑으로, 위쪽에 있는 보라고 ‘상봇도랑’이라고도 부른다.   창앞들보 창앞들에 물을 대는 보.    장산교회 1902년에 건립된 이 교회는 현재 윤성종 목사(50)를 중심으로 100여명의 신자들이 있다.  마을 진입 굴다리와 도로 확·포장 시급   이 마을은 7번 국도가 지나가기 때문에 경주방면에서 이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국도 아래 도랑으로 난 낮고, 좁은 굴다리를 거쳐야 한다. 승용차가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고 낮은 이 굴다리가 마을 진입로에 해당한다. 때문에 큰 차들은 어쩔 수 없이 국도를 횡단하여 (비보호)좌회전을 해야 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늘 사고의 위험을 감수하고 불안하게 살아야한다. 뿐만 아니라 비가 많이 오면 그마저 잠기어 통행이 불가능하여 도로를 불법횡단 해야 한다.   또한 그밖에 마을 진입로도 몹시 좁다. 하루에 시내버스가 6번 들어오는데 진입로가 좁아 차량의 교행이 어렵다.   이 마을 주민들은 마을로 진입하는 굴다리와 도로의 확·포장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마을 숙제로 꼽고 있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장지호(83·전 대전시 총무국장), 장재길(43·부산 남부경찰서 경비과장), 이수홍(40·울산 중산한의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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