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처럼 모여 앉은 판자촌에는 키 큰 난장이들이 살고 있었다. 8학군도 외면한 어둠의 아이들이 골목 마다 눈을 맞고, 비를 맞으며 천방지방 뛰어 놀고 있었다. 단기4339년 섣달 어느 날. 겨울밤을 향해 줄행랑치는 어스름한 저녁나절에 나는 양재천 학여울 방죽위에 서 있었다. 무릎깊이 여울에 빠져 죽었다는 넝마-주이 혼령들의 스산한 이야기를 둠벙둠벙 듣고 있었다. 수직상승하는 강남의 빌딩 숲 사이로, 빛나게 솟아오른 타워팰리스, 그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야성 아래로 예전에 그 예전에, 키가 몹시 큰 난장이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들이 지금도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이렇게 쬐끄만 거랑을 사이에 두고 포이동은 강남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처럼 마주보고 있었다. 시작노트 시인은 왜 시를 쓰는가? 시인이라면 무엇을 시로 써야하는가를 때로 생각해 보고 때로는 한탄하기도 한다. 시인이라는 벼슬 아닌 벼슬을 머리에 이고 산다는 것은 늘 목에 무엇인가 ‘칵’ 걸려 있는 채로 산다는 느낌이다. 세상이 시끄러울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 인구의 거의 절반이 서울과 수도권에 살고 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 모두가 퇴임 후에도 서울에 살고 있다니 말해 무엇 하랴. 엄청난 부자도 , 엄청난 가난뱅이도 마주보며 사는 곳이 서울이란다. 일개 촌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하루 사이에도 집값이 몇 억씩 오른다는 서울특별시는 미쳐도 특별히 미친 곳이다. 그래도 시인이기에 어쩌다 들락거린 낯선 도시에서 희망의 한 조각을 찾아내고 싶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는 참 고단한 작업 아닌가! 약      력 1962년 안동에서 태어나 현재 보문 남촌마을에서 산다. 방송대국문과 졸업, 연세대사회교육원 ‘논술교육지도자’과정 수료. 계간’자유문학’에 시 ‘비와 여름사이’ 등의 작품으로 등단. ‘세계한민족작가연합’, ‘경주문인협회’, ‘시와 수필문학회’회원 저서 ‘논술아 한문이랑’, 현재 논술학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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