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梨)
배는 수박과 함께 수분 함량과 당도가 제일 높은 과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추석 무렵에 산출되어 가을 한철을 풍미하는 진객인 배는 봄날에 하얗게 피었다가 눈처럼 날리며 떨어지는 아쉬움으로 그 옛날 많은 시인 묵객의 가슴을 울리기도 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폐병으로 죽어가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나 구두쇠인 아비는 의원도 포기한 아들에게 더 이상 약을 지어주지 않았다.때마침 수확기를 앞두고 찬바람이 한바탕 불어 대더니 배밭에 배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팔 수도 없게 된 배의 처리를 고심하던 아비는 식구들에게 밥 대신 배를 삶아 먹이기로 했다. 몇 주가 지났을까. 그 집 앞을 지나던 의원은 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얼굴이 좋아서 진찰해 보니 폐병이 다 나았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듣고는 배가 폐병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추정하게 된다.
실제로 쇠고기 육회에는 배를 채내어 섞어 먹고, 김치나 동치미를 담글 때도 배를 넣으며 냉면에도 배 조각을 넣는 것이 관례이다.
오래된 기침에 배의 속을 파내고 꿀을 넣어 중탕하여 고아낸 “꿀배”를 시럽처럼 떠 먹기도 하는데 특히 어린아이에게 먹이기 좋으며 효과도 그만이다. 요즘엔 배를 갈아서 즙을 내어 첨가한 음료수가 시판되어 히트 상품이 되기도 했다.
배를 한의학적으로 살펴보면 약명은 “이(梨)”라고 하며, 단맛과 서늘한 성질을 지닌 것으로 본다. 돌배에는 신맛이 약간 있다. 체액을 생성하고 메마름을 윤택하게 하며 열을 식히며 가래를 삭히는 작용이 있어 열병으로 진액을 상하거나 탈수되었을 때, 번갈과 소갈 즉 입마름과 답답함, 열로 인한 기침, 열로 인한 변비, 딸국질, 경기 등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생과일을 먹거나 씨방을 제거한 후 즙을 내어 마신다. 졸여서 고를 내어 먹기도 한다.
고서(古書)에 의하면 술을 많이 먹은 후에 갈증이 날 때 배를 먹으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열증이 아닌 한증의 해수, 속이 냉한 설사, 지나치게 속이 냉하여 생긴 복통이나 구토, 여성의 산후 등에는 배가 적당하지 않으므로 먹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