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중·고 부산동창회 박항영 회장 언제부턴가 낯설음은 줄어들고 거리를 걸어가면 누군가 반갑게 어깨를 툭 칠 것만같은 부산. 고향을 어머니인 듯 안고 살아가는 경주 사람들이 있어 정겨운 곳이다.   흐렸지만 포근한 바람이 불고 있는 범일동. 동양오피스텔 903호 경주중·고등학교 부산동창회 사무실에서 박항영 회장과 황병률사무국장을 만나 잠시 놓쳤던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전해들었다. 지난 송년의 밤 행사에 300여명에 달하는 동문들이 대거 참석할 정도로 동창회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 중이라는 박 회장. 2006년 6월, 정년퇴임을 하면서 그동안 자주 찾지 못한 동문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갚는다는 생각으로 제 38대 회장에 취임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난 2004년 12월 옥조근정훈장을 받았을 당시 지면을 통해 알게 되었던 박 회장은 1946년 경주시 양남면 기구리에서 태어났다. 석읍초등학교, 신라중학교,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67년 국가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철도청 공무원으로 영주에서 첫발을 내딛었다고 한다.   2006년 6월. 38년간 젊음을 보내고 최선을 다했던 공직을 떠나면서 한치도 후회없다는 생각을 할 만큼 투철한 사명감으로 임했다는데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지만 철도청에 몸을 담았던 것은 지금도 즐기고 있는 여행이나 등산처럼 동적인 것을 좋아한데 그 까닭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전국 어디에서도 근무가 가능하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단점이겠지만 박 회장은 그것을 즐겼고 행복했었다고 한다.   그동안 직장에서 같이 근무한 직원들에게나 후배, 자녀들에게 당부하듯 자주 하는 말이 “이 사회에 꼭 있어야 될 사람으로 살 것”을 강조한다고. 가장 평범하면서도 깊이 새기면 무한한 그 뜻을 놓치지 말라는 부탁도 함께 한다. 젊은 후배들의 동창회에 대한 개념이 적극적이길 고대한다는 박항영회장은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기 보다는 동문들이 가까워지는데 촉매제가 되고 싶어 경주와 부산을 자주 오가며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개인 볼일도 미뤄두고 동문들을 찾고 있다고 했다.   전문산악인으로 알려질 만큼 30여년 동안 등산을 해 왔다는 박회장은 수봉산우회 참석을 우선으로 여기며 근래 들어서는 아코디언 연주에 흠뻑 빠져있다. 끝은 늘 출발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퇴임후 새로운 삶을 설계하기에 또한 행복하다고 했다.   동성부락인 양남 기구리에 선산이 있고 가까운 일가들을 자주 찾게 된다는 박항영회장은 늘 고향 경주가 발전되길 기원한다는 진심어린 걱정도 전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이남수씨와의 사이에 현경, 홍근, 경근, 세림씨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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