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심곡리 (深谷里) 골짜기 깊어 ‘심실(深谷)’ 아들 많이 난다는 ‘자지테’ 심곡(深谷)은 서면에 속한 심곡저수지(일명 도리못)가 있는 마을이다. 골짜기가 깊어 ‘심실’ 또는 ‘심곡(深谷)’이라 불렀다고 한다. 진양인(晋陽人) 하경현(河景賢)이라는 사람이 임진왜란 때 이곳에 피난하여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지금도 진양하씨 5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심곡은 남쪽으로 아화리에 잇대어 있고, 북쪽은 심곡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도리와 접해 있다. 동쪽으로는 인내산(534m) 자락을 사이에 두고 사라리와 맞닿아 있고, 서쪽은 관산(393.5m)을 중심으로 영천 북안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주의 서북단에 위치한 마을이다.   경주에서 국도 4호선을 따라 영천으로 가다가 아화에서 북쪽 도리방면으로 들판을 가로질러 나 있는 2차선 길을 따라 약 2km정도 들어가면 심곡저수지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다. 최근 새로 뚫린 자동차 전용도로가 이 마을을 관통하고 있어 새 길을 타고 영천으로 가다 아화·도리에서 내리면 바로 이 마을에 이른다.   경주시청을 기준으로 21km, 30분 거리다. 진양하씨 집성촌   이 마을은 한때 과수와 마늘 농사를 많이 했으나 마을 주민들의 고령화로 인력이 부족해 특용작물은 거의 없고, 현재 주로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다. 마늘은 30가구 4000평, 3천만원정도이고, 포도는 20가구가 7천평에서 9천만원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 외에 한우와 돼지 각 300마리 정도를 기르고 있다.    마을주민은 126가구에서 남자 158명, 여자 140명으로 총 298명이 생활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청년들이 어른을 공경하고 솔선수범하며 모범적으로 잘 한다며 어른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자지테에 살고 있는 올해 94살의 이종문(용전어른) 할아버지는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당목은 심실입구 압살에 있는 수양버들로 수령이 150년 정도 되었다. 한 뿌리에서 3가지가 자랐는데 1가지는 거의 썩어가고 있고 나머지도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못밑 저지대 침수 잦아   심곡(深谷) 진양하씨(晋陽河氏) 가문의 경현(景賢)이라는 이가 임진왜란 때(1592년) 피난 와서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 골짜기가 깊다고 하여 ‘심실’ 또는 ‘심곡(深谷)’이라 불렀다고 한다. (23가구)   갱빈마을 자지테 서남쪽 냇가에 자리잡은 마을로 ‘강변(江邊)마을’, ‘갱빈말’이라 부르고 있다. (33가구)   자지테 마을 뒷산에 자색(붉은색)을 띤 지초(芝草)라는 약초가 많이 생산되었다고 하여 ‘자지터’, ‘자지현(紫芝峴)’, ‘지현(芝峴)’이라 부른다고 하며, 혹은 ‘자도기(者道基)’라고도 한다. 남자 아이가 많이 태어난다고 하여 ‘자지테’라고 했다고도 한다. 실제로 이 마을은 아들이 많이 났고 지금도 딸보다 아들이 훨씬 많다고 한다. 또 이 마을 남자들이 정력이 좋고 장수하는 마을이라 소문이 나 빈집이 한채도 없었다고 한다. (19가구)   점마을 옛날 이곳에 옹기점이 있었다고 하여 ‘점마을’, ‘점말’, ‘점(店)’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4가구)   주원(周院) 영경원(永境院)이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주원’이라 불렀다고 하며, 혹은 심곡못 주위에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주원(周院)’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에는 70~80호가 살았으나 못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이주하고 지금은 못 주변에 5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앞살 심실 본동 앞에 있는 마을이라 ‘앞살’이라 부른다. (16가구)   새테 본래 못밑에 새테마을이 있었으나 못이 생기면서 마을이 없어졌다. 현재 교리 최씨 산막 1가구만 있다.    못밑 못밑에 있는 마을로 본래 심원사 절만 있다가. 일제 때(1933년)못을 막고 그 이후에 생긴 마을이다. (7가구) 시집오기 전 죽은 남편위해 평생을   심곡리 석불좌상(深谷里石佛坐像) 합장한 자세로 결가부좌하고 앉아 있는 돌부처로 본래 불당골에 있던 것을 1960년에 못밑의 심원사(深源寺)에 옮겨 놓았다. 불상의 머리 부분은 떨어져 나갔고 몸체부분도 심하게 마모된 상태로 현재 심원사 법당 뒤 한 정각에 보관되어 있다.   심곡리 효열각(深谷里孝烈閣) 효부이자 열부인 경주김씨(慶州金氏)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비각으로 1924년에 세웠으나 퇴락하고, 1980년에 다시 세웠다.   김씨는 18살에 이문억(李文億)과 결혼하고 3개월 만에 시집을 가기도 전에 남편이 죽자 시댁으로 가서 아홉달을 남편 묘소를 오가며 조석으로 시묘살이를 했으며, 평생을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며 가문을 지켰다고 한다. 못밑 심원사 옆에 있다. 영경원(永境院) 주원에 있는 영경원의 터. 마을주민들 조차 모르고 있어 지금은 어딘지 모른다.   관률정(寬栗亭) 심곡마을을 개척한 취암(翠庵) 세마(洗馬) 하경현(河景賢)을 추모하여, 진양하씨(晋陽河氏) 후손들이 조선 헌종 7년(1841)에 심실마을에 세운 정자이다. 정문에 붙은 ‘진덕문(進德門)’ 현판이 추사의 친필이다. 진본은 3년 전에 도난당하고 복사본이 걸려 있다.   용담 한동하 송덕비(龍潭 漢東夏頌德碑) 1931년 심곡저수지 건립에 앞장선 용담(龍潭) 한동하(韓東夏)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87년에 세운 비. 대장간 있던 불뭇골   배미장골 심곡의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 능선이 뱀처럼 긴 골짜기이다.   불당골 천둣골의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불당이 있었다고 한다.   불밋골 옛날에 대장간이 있었던 곳으로 ‘불뭇골’이라고도 한다. 심곡 동쪽 골짜기로 배미장골 안쪽 골짜기다.   신당골 심곡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신당이 있었다고 한다.   약물내기 배미장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피부병에 좋은 약물이 났다고 한다. 현재 심곡저수지 서편 산골짜기다.   이븐골 지난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지난골 심곡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지네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천둣골 심곡 남쪽에 있는 골짜기.   홈골 물을 대기 위해 홈통을 놓았던 골짜기로, 불당골 남쪽에 있다. 질펀하게 물새기는 ‘고래’   개새이 평전내의 남쪽에 있는 들로, 개울의 새(사이)에 있다.   개핀들 자지테의 남쪽에 있는 들이다.   고래 갱빈마을의 서쪽에 있는 들로, 고래실이 있다. 물이 질펀하게 새기는 땅을 ‘진땅’ 또는 ‘고래’라고 한다.   고래드미 고래등 밑에 있는 들을 말한다.   뚝둘들 고래등 옆의 심곡저수지 아래쪽에 있는 들.   모름들 심곡의 동남쪽에 있는 들.   자지텟 들 자지테에 있는 들.   중보밑 갱빈마을 북쪽에 있는 들. 이 들의 위쪽에 중보(中洑)가 있었다고 한다.   하개 갱빈마을의 남쪽 끝에 있는 들이라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큰돌배기 커다란 돌이 박혀 있었다고 하는 논으로, 큰들에 있다.   방구배기 커다란 바위가 박혀 있는 논으로, 개핀들에 있다. 고인돌이다.   심곡저수지(深谷貯水池) 심곡 서북쪽에 있는 저수지로, 1944년에 준공하였는데 ‘심곡못’, ‘심곡제(深谷堤)’라고도 한다.   맨마실못 맨마실에 있는 작은 못으로 ‘매마실못’, ‘맨마실저수지’라고도 한다. 자지테 못 자지테의 동남쪽에 있는 못으로, ‘자지테저수지’라고도 한다. 말똥처럼 생긴 산   고디이산 모양이 마치 고디이(고동)처럼 생긴 산으로, 심곡저수지 둑과 밀개사이에 있다. 교리 최 부자 윗대 묘가 있다.    뫼마실 갱빈마을 동쪽 골짜기에 있는 산으로 ‘맨마실’이라고도 한다.   뻑대산 심곡저수지 동쪽에 있는 높이 333m의 산으로 측량을 위한 기점인 폴대가 박혀 있다고 한다.   피마실 불밋골 동쪽에 있는 산.   고래등 지형이 마치 고래처럼 생긴 등성이로, 평전 내 북쪽에 있다. 지금은 반은 파내고 공장부지로 조성해 놓았다.   황새등 심곡저수지의 동쪽에 있는 등성이로 고디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을 말한다.   말똥고개 점마을에서 영천시 북안면 신촌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지형이 마치 말똥이 쌓인 것처럼 생겼다. 비만 오면 피난해야   심곡은 저수지 아래 저지대에 있기 때문에 상습침수지역으로 장마철이면 자주 피난을 가야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앞살과 갱빈마을은 비만 오면 물이 마을을 덮쳐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하천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침수에 대한 불안감은 더 높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심곡저수지에서 내려오는 거랑을 폭 40m로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갱빈마을 어귀 아래까지만 공사를 하고 그 상류는 아직 거랑 폭이 20m에 불과해 범람우려가 높아 주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현재 연간 3~4억 정도의 예산이 배정되어 100m 정도씩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남은 600m를 마치려면 5~6년을 더 불안에 떨어야 한다. 주민들은 이에 대한 조속한 조치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심실과 압살마을의 진입로 폭이 좁아 차량의 교행이 안 되고 통행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갱빈마을과 자지테로 진입하는 도로도 좁아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천너머 지은들이 4만여 평으로 아직 경지정리가 안 된 들이다. 이 곳은 농업진흥지역 밖에 있는 들로 공장용지로 전환해 이곳에 공장을 유치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하정진(82 전 대구 청구고등학교 교장), 하상원(78 전 아화초등학교 교장), 하상일(73 전 대구교대 교수), 하상식(57 창원대 교수), 장종권(46 서울대병원 감사팀장), 하일도(43 대구대 교수), 최병진(43 경기도 일산시 한의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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