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까지 석성 4.5km 일부복원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경주역사지구 명활산성 정비 사업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오는 2016년까지 사업비 400억원을 투자해 천군동 산334번지 일원에 소재한 명활산성을 연차적으로 정비해 관광자원 인프라 구축에 주력키로 했다.    명활산성 복원으로 세계에 신라문화의 우수성을 선양하고 보문관광단지와 연계한 새로운 문화자원을 조성함으로 관광객 유치와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추진하는 이 사업은 명활산성 9.5km중 사업비 305억원을 들여 석성 4.5km를 복원 정비하고 26만7천300㎡의 사유지 매입 및 발굴사업에 95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이에 따라 시는 올해 사업비 1억원을 들여 명활산성 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연차별 정비계획에 의거 복원해 나가기로 했다.   한편 사적 제47호로 지정된 명활산성은 경주의 동쪽 명활산 꼭대기에 쌓은 신라 산성으로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신라 실성왕 4년(405)에 왜구가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만들어진 성임을 알 수 있다.    원래 토성이던 것을 진흥왕때를 전후한 시기에 석성으로 개축한 것을 최근에 발견된 진흥왕 12년(551)에 세운 명활산성작성비의 연대를 추정 석성 축조년대를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성을 쌓는 방법에서도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한 신라 초기의 방식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눌지왕 15년(431)에는 왜구가 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 당시 신라의 수도인 월성을 지키는데 중요한 곳임을 말해주고 있다.    자비왕 14년(475)~소지왕 10년(488)까지 월성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하였던 13년간은 임시 궁궐로 사용되기도 했다.   진흥왕 15년(554)에 성을 다시 쌓았고, 진평왕 15년(593)에는 성을 확장했으며, 선덕여왕16년(647)에 상대등 비담 과 염종 등이 이곳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김유신장군이 평정한 이 산성은 경주의 서쪽에 있는 서형산성, 남쪽의 남산성, 북쪽의 북형산성과 함께 신라의 도성을 지키기 위해 경주의 동쪽에 마련된 산성이다.    시 관계자는 “지금은 많은 부분의 성벽이 무너져 부분적으로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으며 일부 토성과 석성의 흔적 등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명활산성은 2000년 12월 2일 남산지구, 월성지구, 대릉원지구, 황룡사지구 지구와 함께 경주역사유적지구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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