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괜스리 가슴 한곳이 허전하고 쓸쓸해지는 것은 누군가 곁에 있어 아름답고 내편이 되어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이때쯤이면 모두가 한결같이 허전함을 느끼곤 한다. 이런 허무함으로 인해 잠시나마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계절. 그래서 이 가을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남다르다. 경주의 가을 정취는 다른 어느 곳보다 아름답다. 보문단지 호숫가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과 토함산 8부 능선 오른쪽 정상에서 외남선으로 연결되는 길목 30여만평의 넓은 초원. 온갖 형형색색의 나무와 언덕 너머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풀은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듯 착각에 빠지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 간직된 정서 때문이리라.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그래서 해마다 이때쯤이면 너나없이 이곳을 즐겨찾고 먼 동해바다 수평선을 지그시 바라보곤 하는 것일까. 도심에서 30분 거리에 이처럼 아름다운 경관이 있는 곳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경주만의 자랑이라 해도 좋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서 토함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동해가 나온다. 곱게 영근 감나무 마을을 지나면 해안에서 겨울을 맞아 들이는 바다와 흰 거품을 거칠게 내뿜고 있는 파도를 볼 수 있다. 가슴을 열고 크게 호흡해 보자. 청색 바다 물결이 점차 초록색으로 변하고 붉게 물든 석양에 옷 자락을 적신 솜구름이 수줍은 듯 비켜가는 산자락. 서산에 늬엿늬엿 넘어가는 태양빛은 가을이어서 더욱 좋다. 토함산에서 내려다 보는 산은 온갖 채색의 옷을 입고 있는데다 하늘빛을 따라 변하는 나뭇잎으로 마냥 거대한 정원으로 착각된다. 건천에서 산내로 향하는 길 송선 저수지 오른쪽의 황토빛 조그만 카페. 저녁 무렵 이곳에서는 단풍으로 곱게 물든 산자락이 살포시 물위에 내려 앉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따스한 차 한잔을 놓고 오랜 친구와 마주보며 함께 이 가을을 음미하는 것도 좋으리라. 경주의 가을은 이래서 더욱 좋다. 많은 이들이 이 때문에 경주를 찾고 있고 우린 그래서 이 땅이 늘 자랑스럽다. 달빛 저무는 반월성. 귀에 익은 남천을 따라 흐르는 냇물 소리가 수줍은 듯 고개숙인 코스모스를 흔들고 있다. 젓대 소리 하나로 달빛을 붙잡아 두었다는 월명선사의 피리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 가을 밤, 계림은 마냥 숨소리마저 조용하다. 이런 풍경이 채색되는 경주의 가을은 해마다 되풀이 되지만 이번만은 유난스럽다.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 설레는 까닭은 발밑에 떨어져 작게 울고 있는 한잎 낙엽 때문일까. 길가던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노오란 은행잎을 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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