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읍 노당리(老堂里)
‘사릿골’로 더 알려진 노당(老堂)
550년 은행나무 안계동할매 회초리
또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거리엔 온정의 손길을 호소하는 자선남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각종 송연모임을 알리는 걸개들이 거리에 나 붙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시간 틀에 따라 이맘때만 되면 한해가 저문다고 저리도 난리를 친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폭풍한설을 견디며 한 자리에서 550년간 이를 묵묵히 지켜보고 서 있는 노당리 은행나무는 과연 어떤 심정일까?
노당은 본래 ‘사리골’로 더 알려진 마을이다. 필자에게 사리골은 남다른 감회가 있는 마을이다. 550년 전 이 마을을 일으킨 경주인 김처형(金處衡 1441~1487)이란 선비가 나의 15대 할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자라면서 어른들로부터 `월성김씨사리골문중`이란 말씀을 누차 들어왔던 터라 친숙하면서도 오랫동안 떠나있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런 기분이다.
본래 이 마을은 경주인 김처형 선비가 들어와 김씨의 `金`은 모래(沙)와 서로 잘 어울린다는 뜻에서 `사릿골`, `사동(沙洞)`이라고 불렀는데, 그 후에 안동권씨 노은(魯隱)이란 호를 가진 이가 그 옆에 마을을 일구면서 자신의 호를 따서 ‘노당(魯堂)’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마을이 늙을 ‘老’자 노당(老堂)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 · 폐합에 의하여 강서면 초제리와 강동면 초감리 일부를 병합하면서부터이다. 사릿골 · 노당 · 점골 · 거리마을이 노당1리, 풀못안 · 대밭골 · 남산이 노당2리를 이루고 있다.
경주김씨, 안동권씨, 오천정씨, 월성손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이 마을은 안강의 넓은 들판을 끼고 있어 살기 좋은 마을이다. 지금은 130가구 260명의 주민이 주로 벼농사에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으며, 젖소 500두 돼지 2천300두, 닭 2천수 등을 기르고 있다.
노당은 경주시 안강읍의 최북단에 위치한 마을로 포항시 기계면과 경계를 이룬 마을이다. 안강에서 68번 지방도를 따라 기계방면으로 가다가 양월리와 육통리를 지나면 도로 왼쪽으로 산자락에 의지해 펼쳐진 이 마을에 이른다. 경주시청 기준으로 23km 30분 거리에 있다.
김(金) 모래(沙) 잘 어울려 `사릿골`
사릿골은 약 550년 전 경주김씨 처형(金處衡 1441~1487)이란 선비가 마을을 일으킬 때, 김(金)은 모래(沙)와 서로 잘 어울린다는 뜻에서 ‘사릿골’, ‘사동(沙洞)’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또 다른 이야기는 이곳에 모래가 많아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가장 중심에 있는 큰 마을로 은행나무와 마을회관이 있다. 동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에 지내며, 당목은 마을회관 앞에 있는 550년 된 은행나무이다.
노당(老堂·魯堂) 사릿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을 개척한 안동권씨의 호를 따서 ‘노당(魯堂)’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오래된 집이 많다하여 ‘노댕이’ 혹은 ‘노당(老堂)’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지금도 옛날 집터에 기와조각 등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점골 노당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옹기점이 있었다고 하여 `점골`, `점곡(粘谷)`이라고도 한다.
거리마을 신라시대부터 의창군과 통하는 길목으로, 사람과 말의 통행이 많아 ‘거리마을’이라고 했다고 한다.
3번 유배당한 청백리 노암공
정산서당(鼎山書堂) 조선 인조 때 사마양시와 별과에 장원하여 홍문관 교리, 시강원 사서에 제수되어 심양으로 들어가 볼모로 잡혀있던 소현세자를 모시기도 했으며 순천부사, 울산부사, 성주목사를 지낸 경주인 노암(魯庵) 김종일(金宗一 1597~1675)이 공부하던 곳에 그의 후손들이 세운 서당으로, 정산(鼎山:소두방재) 아래 사릿골에 있다. 노암공은 화왕입성동고록(火旺入城同苦錄)에 기록된 임란의사 한강(寒江) 김경룡(金慶龍 1563~1605)의 아들로서 그 어머니가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 삼정산에 단을 모아 100일을 불공을 드렸는데 범이 늘 호위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범 같은 자식을 낳고 싶다고 소원하여 얻은 자식이 노암이다. 그래서 범 눈을 지녔었다고 한다. 청백리였던 노암은 폐습혁파를 위한 상소와 관련해 3차례나 유배생활을 했다.
형제 임란의사 경주인 행파(杏坡) 김춘룡(金春龍)과 한강(寒江) 김경룡(金慶龍)은 형제로써 함께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서 영남지역 임란의사들을 기록한 화왕입성동고록(火旺入城同苦錄)에 형제가 나란히 이름을 기록한 임란의사이다.
노당리 지석묘 사릿골에는 여러 개의 지석묘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 만리장성을 쌓을 때, 주변 나라에서 바위를 가져오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안계동 할머니가 돌을 운반해 갔다. 이 할머니가 마치 양떼를 몰고 가듯이 나무회초리로 돌을 후리면서 몰고 갔는데 이곳 재 밑에서 돌들이 멈춰 서서 말을 듣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중 제일 큰 놈을 번쩍 들어 고개 위에 올려놓고, 다른 돌을 옮기기 위해 사릿골로 다시 내려오는데, 만리장성을 다 쌓았다는 전갈이 왔다. 이에 할머니는 채찍으로 쓰던 나무를 그 자리에 꽂아 두고 가 버렸다고 한다.
사릿골에 있는 큰 은행나무가 그때 꽂아 둔 것이라 하며, 마을에 있는 여러 개의 고인돌은 그때 할머니가 몰고 온 돌이고, 칠성고개에 있는 지석묘는 먼저 옮겨다 놓은 큰 돌이라고 한다.
일제 때 화담산 잘라 인물 안 나
노당리 고분군(老堂里 古墳群) 신라말기의 서민층 묘로 추정되는 점골에 있는 무덤들이다. 작은 돌방무덤으로 일제때 도굴되었다고 한다.
노당리 은행나무 사리골에 있는 수령 약 550년 된 은행나무로 1982년 10월 29일 도지정보호수(제11-25호)로 지정되었다. 이 마을 당목이기도 한 이 나무는 안계동할머니가 꽂아둔 나무회초리가 자란 것이라는 전설과는 달리 550년 전 이 마을을 일으킨 경주인 김처형(金處衡)이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건강하고 은행도 많이 연다.
노당리 향나무 사릿골에 있는 약 400년 된 향나무로 1982년 도지정보호수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표지석에는 수령을 250년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나무둘레가 4m에 이르는 고목이고, 마을주민들도 400년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달성산(達城山) 어래산 동쪽의 끝 봉우리로, 이 마을의 뒤산에 해당한다. 산 밑에는 달성천이 있어 기계 · 강동 · 안강의 경계를 이룬다.
화담산 마을 앞에 있는 나지막한 구릉과 같은 산으로 본래 길이 이 산 아래에 있었으나 일제 때 산을 잘라 길을 내고부터는 마을에 인물도 나지 않고 어려워졌다고 한다.
한박등 웃노당 북쪽에 있는 등성이로 산 모양이 함지박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노당재 노당의 북쪽에서 포항시 기계면 성계리의 안니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인돌들이 있는 고개라 칠성현(七星峴)이라고도 한다.
느릿골 사릿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어은곡(於隱谷)이라고도 한다.
개심이 사릿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개어심(介於心)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옛날에 만석군이 살았다고 한다.
모골(某谷) 개심이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모동(某洞)이라고도 한다.
옻밭구미 옻나무가 많았던 골짜기로, 웃노당 북쪽에 있다. 지금은 옻나무가 없다고 한다.
천둥소리에 산이 무너져
우룃들 조선 고종 원년(1864)에 천둥소리에 작은 산이 무너져 내려 이루어진 들로 사릿골 동쪽에 있다. 달대 위에 있는 들이다.
달대 우룃들 동쪽에 있는 들로, 달평(達坪)이라고도 한다. 달성천 아래에 있는 들로 마을 앞들이다.
못안들 우룃들 남쪽에 있는 들로, 들 앞에 못이 있다. 예전에 못이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못이 없어졌다.
달성보 달성천에 있는 보로, 신라시대에 만든 보로 알려져 있다.
점골못 점골에 있는 못으로 30년 전에 막았다고 한다.
굴바우 어래산에 있는 굴이 있는 바위로 아래위로 두 개의 굴이 있다.
벼락바우 옛날에 벼락 맞아 넘어진 바위이다. 동쪽 등성이 아래 있다.
아흔다섯에 장작패고 낚시까지
이 마을은 감나무골의 도랑 복개사업을 주민들이 가장 바라고 있다. 도랑 복개로 마을 안길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최고령자는 사릿골에 사는 권혁두(95 지곡어른)할아버지로 지금도 낚시를 즐기고, 장작을 팰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고 계신다. 예전에는 술을 많이 자셨으나 지금은 조금만 하고, 담배는 30년 전에 끊었다고 한다. 백수에 가까운 어른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권 할아버지는 찾아간 취재진의 인사에 맞절을 하며, 일일이 이름과 관향을 묻는 친절을 잊지 않았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김헌영(77 경주김씨장군공파중앙종회부회장), 유락(64 안강 산대초등학교 교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