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식 통보를 받고 하루하루 기대 속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캄보디아에 대한 지식을 쌓아 왔다.
캄보디아는 1953년 11월 9일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인도차이나 반도 남서부 라오스와 태국사이에 위치해 있다. 전형적인 열대 몬순기후를 보이는데 5월~10월은 우기, 11월~4월은 건기이다.
면적은 181,035㎢로 남한의 2배가량 된다. 화폐단위는 리엘이다. 수도는 프놈펜이고 거의 대부분(96%)이 불교를 믿는다.
11월 20일 아침 여행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면서 시의원으로서 첫 여행에 아내를 두고 혼자 떠나게 되어 섭섭한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아내와 같이하던 여행과는 다른 목적임을 마음에 새기고 출발을 했다. 그래서인지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 내내 새로움이 느껴졌다.
대구공항을 출발, 홍콩을 경유하여 약 7시간 하늘을 날아 캄보디아 씨엔립에 도착했다. 비행기에 내리자 높은 기온이 느껴졌고 전깃불이 아주 적어 어두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씨엔립 공항을 빠져나와 버스를 탔다. 운전대 바로위에 “아시아 버스와 함께 즐거운 여행”이라는 커다란 한글이 눈에 띄었다.
현지가이드의 말이 우리나라에서 용도 폐기된 중고차들이 여기 캄보디아에선 퍽 인기여서 한국차라는 것을 자랑하기위해서 저런 한글 표시를 지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시가지에도 전등불이 적어 한국의 어느 시골동네 같았다. 호텔에서 같이 간 일행들의 인사가 있고 저녁을 먹고 여정을 풀었다. 앙코르의 밤이 시작되었다.
앙코르 와트(Angkor Wat), 1860년 프랑스의 박물학자 앙리 무어가 표본을 채집하려 캄보디아의 깊숙한 정글을 헤매다가 발견한 석탑 사원군이 앙코르 와트이다. 캄보디아의 국기에도 앙코르 와트가 그려져 있다. 알고 보니 캄보디아인들은 오래 전부터 밀림 속에 신비로운 석조 사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거긴 저주의 땅으로 한번 들어가기만 해도 신의 저주로 곧 죽게 된다는 전설이 있어 묻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앙리 무어”는 그것을 미개국의 미신쯤으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다음해에 전설처럼 열병을 얻어 앓다가 죽었다.
그가 죽어가면서 남긴 기록덕분에 앙코르 유적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오늘날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때지어 몰려오는 축복을 이 나라에 주었다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랜 내전으로 기아와 빈곤으로 허덕이던 캄보디아로서는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살길을 얻게 된 것이다.
앙코르 톰(Angkor Thom)을 찾았다.
앙코르가 왕도(王都)를 톰은 큰’大’이라는 뜻을 나타내므로 앙코르 톰은 ‘대왕도’란 뜻이다.
크메르 왕국 최고 전성기인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걸쳐 자야바르만 7세가 축성한 대왕도로 앙코르 와트 북쪽에 인접해 있는 종교도시이다. 사면에 못을 파서 해자를 만들고 그 안에 80여개의 왕궁사원을 세웠는데 그중 가장 아름답고 웅대한 것이 중앙에 우뚝한 바이욘 사원이다. 지름 25m, 높이 45m인 중앙탑을 중심으로 49개의 첨탑이 솟아 있고 그 첨탑마다 관세음보살의 얼굴을 조각해 놓았다.
이것을 “크메르의 미소”라 하는데 캄보디아 화폐 500리엘에 그려져 있기도 했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