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가 가까워지면 거리는 황량함을 느끼게 되고, 떨어진 낙엽만 뒹굴며 행인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번화가 네거리에는 어김없이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길목을 지키며 가는 한 해를 모두가 아쉬워한다. 누구나가 다 지나간 해를 반추(反芻)하며 살아온 삶의 과정에 대해서 반성하고 후회하고 또 새로운 각오를 세우며 바르게 기를 소망하고 있다.   며칠 전 일간지 신문에 찻잔 속의 태풍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사연이 소개되어 한참 하늘을 우러러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던 기사가 있었다.   18년 전 동네 구멍가게에서 말린 쥐포를 훔친 사람이 사죄의 내용이 담긴 편지와 함께 현금 10만원을 경찰서로 배달한 사건의 내용은 “희미한 기억이지만 1988년 동네 아이들과 가게 주변에서 놀면서 몇 차례 구멍가게에서 주인 몰래 쥐포를 훔쳐 먹은 적이 있다”며 양심을 고백한 것이었다. “그 당시 주인아저씨는 다리 한 쪽이 없는 불편하신 장애자였는데 도와드리지 못할망정 도둑질로 폐를 끼쳐 지금까지 그것이 죄 몫이 되어 괴롭게 살아 왔다.”는 사연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가서 사죄드리고 싶지만, ‘우리 슈퍼’라는 당시의 가게가 사라져 찾을 길 없고 용기도 나지 않았다.”며 경찰에 부탁하여 대신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경찰은 실제로 이 가게가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없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세무서와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수소문하며 주인 찾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경찰 담당자는 ‘사소한 죄’지만 뉘우치는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며 주인을 꼭 찾아 편지와 돈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사죄가 우리의 차가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정말 멋진 미담이다. 우리가 그 주인공의 심정으로 되돌아 가 보자. 그 사람은 어리석은 소행과 순간적 잘못을 수십 년 가슴에 담고 얼마나 괴롭게 살아 왔을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모두 과거가 있고 아름답지 못한 잘못을 저질러 왔다. 무엇보다도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반성하고 회개하는 마음씨가 늦었을지라도 정말 칭찬하고 싶은 바른 마음이다.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다. 필자도 포항극동방송에 ‘생활과 신앙’이라는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한 달에 두세 번 경주교도소에 교화위원으로 출강하지만 그들과 다를 바가 조금도 없다. 웃기는 말이 될지 모르지만 수용자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러분! 여러분이나 나는 다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죄 값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고, 나는 남모르는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죄가 들어나서 죄수가 되었고, 나의 죄는 탄로가 나지 않아서 죄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나갈 가능성이 많지만, 우리 같은 세상 사람들은 여기에 들어 올 가능성이 더 많은 사람들입니다….”   사실 지은 죄를 가슴에 안고 산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듯이 무겁다. 구멍가게 주인을 찾든 못 찾든 철모를 시절에 저질렀던 죄는 이제 모두가 용서된 셈이다. 잘못은 남에게 알림으로써 이미 반은 풀린 것이다. 편지의 주인공은 이제 발 뻗고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이고, 과거를 청산함으로 보다 더 밝은 내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사죄의 한 토막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고 이렇게 사는 양심적 회개가 정말 가치 있는 삶이다. 그 소식을 전하는 주인공에게 새해에 광명이 비췰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며, 어두웠던 과거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 용기와 선한 양심에 박수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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