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트레스디아스라는 영성훈련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오후 늦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 모여 위치도 장소도 알 수 없는 폐교된 한 시골초등학교로 간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모든 것이 의아한 것뿐이었다. 추천한 사람에게 어떤 곳이냐고 물어도 그냥 ‘가 보면 안다’라는 식으로만 대답했진 전혀 감조차도 잡지 못했다. 입소(?)하던 저녁시간 창문은 검은 천으로 가리워져 있고, 시계도 휴대폰도 전부 압수당한 채 모든 것이 없는 상태(無)에서 자신을 찾고, 자신을 알며, 자신을 깨닫는 시간인 것만 같았다.   조(組)별로 그룹을 만들더니 마루바닥으로 된 방에 10명씩 배치를 받고 서로 인사를 나눌 정도로 저녁 계획표에 의해 과정이 시작되었다. 4박 5일이란 속박된 시간 속에 자신은 전부 무시당한 채 일과표에 따라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희한한 사건이 첫 날에 생겨났다. 한 그룹의 구성원들도 거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관은 60명이나 되는 훈련생들에게 자기소개를 마음껏 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자신을 남에게 알린다는 것이 모두가 쑥스러운 사정이었지만 단체의 공통적인 요소가 같은 신앙인이라는 것 뿐 서로서로가 생소했으나 한 두 사람씩 차례가 지나가자 분위기는 금방 좋아졌다.   50대 쯤 되어 보이는 미남형의 한 입소자는 과거의 경력을 소상히 밝히면서 현재의 처지까지 아주 자세하게 소개되어 많은 박수를 받았고, 과거의 험난했던 시절을 고백할 때는 함께 동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차례에 이어 일어선 40대 중반의 젊은이는 일어서는 순간부터 많은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할 말을 잊은 듯 2분가량 그냥 서 있기만 해서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한참동안 침묵이 흐른 후, “여러분, 죄송합니다. 내가 일평생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조금 전에 일어섰던 분입니다. 나는 이 순간 모든 것을 용서하고 전부를 잊어버리고 저 분을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군대 생활할 때 상사였던 저 분에게 맞아 고막이 끊어지는 신체장애자로 20여 년을 살아 왔습니다. 언젠가는 그 사람을 만나 복수하려고 지금까지 작심하며 살아 왔는데 여기서 저 분을 만나게 되다니, 이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닙니까?….”   옛말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요즘은 합승택시에서 만난다고 하지 않던가? 장애의 몸으로 살면서 만나서 복수하겠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자리가 바로 룸메이트였다니 두 분이 다 험한 세상을 살면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게 된 동기가 신앙과 믿음이었는데, 여기서 둘이 만나게 되다니 너무 얄궂고 기구한 운명적 만남에 화해와 용서의 순간이 된 것이다.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산다”라는 말처럼 먼저 가슴으로 맞이하는 아름다운 축복의 순간 -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묘한 일도 있는가? 그날 밤 우리 모두는 사랑의 잔치에 꼬박 밤을 세우며 두 분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사랑하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그 밤, 나는 아직도 그 밤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거룩한 말씀, 그 자리는 경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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