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윤 식文人, 전 경주고 교사     ‘마지막 잎새’ 등 주옥같은 단편 소설들로 유명한 미국 작가 오ㆍ헨리(OㆍHeny)의 ‘20년 후(After twenty years)’란 소설은 대충 이렇게 전개된다.   미국의 서부 개척 붐이 한창이던 때에, 이를 기화로 일확천금이란 야심만만한 꿈을 이루어 보려는 같은 마을 출신의 두 시골 청년이 의기투합하여 가족 몰래 야간 가출을 단행한다. 마을을 벗어나서 두 갈래 갈림길에 이르자 한 친구가 말한다. “우리 여기서 헤어지자, 그런 다음 20년 후의 바로 이 날, 이 시각에 성공한 모습으로 여기서 다시 만나자” 다짐을 굳게 한 두 친구는 헤어져 각자 제 갈 길로 떠난다.   그리고 2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두 사람은 마침내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한 친구는 살인범으로 전국에 수배되어 숨어다니는 처지요 또 한 친구는 그 살인범을 체포해야 하는 경찰관의 신분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동기생 모임이란 제목을 걸어 놓고 느닷없이 소설의 스토리를 끌어 들이고 있으니 좀 생뚱맞게 느낄 지도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그럴 만한 사연이 있어서 하는 노릇이다.   경주고교 35회 졸업생들과 필자와는 인연이 깊다. 그들이 1학년 때에 필자는 영어 담당 교사로서 영어 부교재 속에 나오는 오ㆍ헨리의 ‘20년 후’란 단편소설을 이들과 함께 공부한 적이 있었으며 또 이들이 졸업하던 1986년에는 3학년 10개 반 중에서 자연계인 9반의 담임교사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이 공교롭게도 졸업한 지 꼭 20년 만에 처음으로 동기회를 하게 되었으니 꼭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을 받아 들자 문득 소설 ‘20년 후’에 등장하는 그 기구한 운명의 두 주인공의 상봉 장면이 뇌리를 스쳤던 것이었다.   회고하건대 홍안소년이었던 20년 전 그들이었지만 고3이란 멍에를 짊어지고 젊음의 발산이나 개인의 창의적 활동 같은 것은 상상조차 못하고 오로지 대학 입시 준비에 매달린 채 조조학습, 야간자율학습, 모의고사 등에 시달리던 그들이었다.   심지어 3학년은 가을 소풍 행사에서도 제외되었다. 소풍가는 날 교실에 감금되어 억지 자습을 하면서 1, 2학년 후배들이 즐겁게 놀고 있을 남산 쪽에 시선을 박은 채 온종일 한숨을 토해내던 그들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 두 배의 세월동안 그들은 대학에 다니거나 일찌감치 직업전선에 뛰어들기도 했으며 병역을 치르느라 혹은 최전방에서 전선을 지키는 병사로서 혹은 전ㆍ의경이 되어 데모현장에서 쇠몽둥이나 죽창을 휘두르는 무법자들과 대치하기도 했을 터이다.   그러다 직장을 구하고 결혼도 해서 지금은 햇병아리 같은 초등학교 2·3학년짜리 아들 딸을 거느린 40대 초반이 된 소위 386세대의 끄트머리가 그들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 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으로 피어 있을 그들의 세련되고 듬직한 자태와 대면하고 싶었다.마침내 그 날이 왔다.   지난 토요일(2006. 11. 25) 오후 6시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2백여명의 회원들과 50여명의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주힐튼호텔 특실에서 거행된 모임은 화려하고 성대했으며 회의 또한 화기애애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국민의례 등의 공식절차에 이어 특별 초대된 은사와 각 반 담임교사에게 드리는 기념메달 전달과 후배들에게 주는 장학금, 야구부 후원금 및 총동창회 운영기금을 전달하는 의식이 차례로 진행되었다.   특히 회의 벽두에 그들이 떠나간 이후의 모교 발자취와 현재의 발전된 여러 모습들을 영상으로 담아 소개하는 아이템이 돋보였으며 같은 동기생으로서 이 지역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성악가 이상진 군이 부른 가곡과 역시 동기인 정연도 군의 초등학생 딸내미의 피아노 반주를 곁들인 바이올린 독주가 이색적이었다.  실로 힐튼 같은 특급호텔과 격이 어울리는 품위 있고 멋있는 파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형식과 내용이 이렇게 알찬 행사가 불과 한 시간 내외에 거뜬하게 치러졌으니 이는 오로지 회장단의 빠른 두뇌 회전과 협동심 및 회원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협조의 결과이리라.   또 하나 필자로 하여금 따뜻한 정감을 느끼게 한 것은 저녁 식사를 곁들인 2부 스케줄을 각 반별로 회동할 수 있게 짜서 학생들과 담임 선생이 술과 안주가 풍요한 테이블을 둘러싸고 즐겁게 담소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었다.   경주고교 35회 졸업생 제군! 부디 가족과 모교, 향토와 나라를 사랑하고 이들의 삶을 도와주는 유능한 인재가 되어 다오. 동기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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