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시작되는 11월이면 가을 경치가 유달리 아름다운 남이섬이 떠오른다. 남이섬은 경춘선 열차를 타고 가다보면 우측에 강원도 춘성군 남면 방하리에 있다. 북한강 줄기따라 강 한가운데 있는 섬이라 하여 하중도(河中島)라고 한다.   총면적 20여만평에 이르며 원래는 홍수 때에만 섬으로 고립되었으나 청평댐의 건설로 완전한 섬이 되었고, 강변가요제가 열린 곳이라 많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섬이다. 섬 도선장 입구에 남이 장군의 묘소가 있는 것에 연유하여 남이섬이라 부르게 되었다. 섬 안에는 넓은 잔디밭이 잘 꾸며져 있고, 섬 둘레에 밤나무 숲이 무성하고, 별장·방갈로·골프장·수영장, 그리고 위락시설이 잘 구비되어 가까운 서울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섬으로 오가는 배를 타고 잠시 가면 섬에 닿게 되는데 맨 먼저 맞는 곳이 남이장군이 묻혀있는 묘소이다. 누구 나가 안내된 표지판을 읽고 숙연한 자세로 묵념을 올리며 묘 주위를 살펴본다.   조선조 시대의 무신인 남이장군의 시호는 충무(忠武)이며, 태종의 외손자이다. 약관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그는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인해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의산군에 책 봉되어 서북 변방에 있는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고 28세에 병조판서에 오를 만큼 뛰어난 무관이었다.   1468년 예종이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궐에서 숙직하던 날 밤, 하늘에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은 없어지고, 새 것이 나타날 징조”라고 말하자, 그에게 항상 질투를 느껴오던 류자광이 이 말을 엿듣고 역모를 획책한다고 모함하였다.   백두산의 돌은칼 가는 데에 다 닳아 버렸고, 두만강의 물은말이 다 마셔서 말라 버렸구나. 사나이 스물에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어느 누가대장부라 일컬으리요.   그가 여진토벌 때 읊은 시 북정시(北征詩)는 너무도 유명하며 시 속의 미평국(未平國)이란 글귀를 미득국(未得國)이라 했다고 조작한 사실은 역사의 한 사건이 되기도 했다.   즉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을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왜곡하여, 반역의 뜻이 있다고 모함함으로써 영의정 강순 등과 함께 29세의 젊은 나이에 주살(죄를 물어 죽임) 됐다.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은 “백두산의 돌은 칼 가는 데에 다 닳아 버렸다”는 말로 남자다운 호기와 큰 포부, 그리고 패기를 잘 드러낸 말이다.   한 나라의 유능한 관리가 잔꾀 많은 모리배에 의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후세에 정사(正史)는 남이 장군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길이 되새기며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관계가 너무 악랄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정치판의 얄궂은 사례에 과연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처세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가 너무도 힘든 현실에 놓여 있다.   ‘20∼30대 청년 여러분, 여러분들은 과연 국가를 위해서 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가?’라고 조용히 묻고 싶다. 남이 장군의 젊은 시절을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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