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산서성은 내 머리속에 풀지못한 숙제처럼 늘 남아있었다. 꼭 조사해야 할 곳으로... 학문을 시작하던 석사시절, 특히 불교벽화에 대한 공부를 할때 늘 궁금하던 것이 바로 중국 사원에 그려진 불화의 모습이었다.   돈황이나 실크로드 석굴사원의 벽화가 아닌 송, 원, 명, 청대의 사원에 그려진 벽화와 탱화를 우리나라의 불화와 비교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로선 외국 조사가 지금처럼 용이하지 않아 그에 대한 갈증이 더욱 컸었다.   그후 중국의 사찰을 찾을 때마다 법당에서 불화를 볼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설레임은 늘 내게 적지않은 실망으로 돌아왔다. 전각 안에 불상조각은 거대한 규모로 봉안되어 있었지만 벽화는 물론 탱화도 없는 전각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불단에는 불상과 불화를 세트로 봉안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언제부터, 왜 불화 봉안의 전통이 사라진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과 실망감은 1998년 여름 북경 법해사 벽화의 조사와 북경 서점에서 구입한 ‘산서사관벽화(山西寺觀壁畵)’라는 책을 보며 다시금 기대감으로 바뀌어 그후 늘 산서성 사원벽화의 조사는 나의 숙제거리였다. 여러 사정으로 지연되다가 결국 올 4월 산서성의 여러 사원벽화를 조사할 기회를 갖게 됐다.   고평 개화사의 설법도와 불전도, 직산청룡사의 수륙화, 대운원의 유마경변상도, 불교 주제는 아니지만 홍동 수신묘의 벽화 등은 반가움과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8월에 다시금 산서성을 찾아 불궁사 응현목탑, 홍동 광승사와 수신묘,   영락궁의 도교벽화, 그리고 벽화는 아니지만 전각을 온통 소조상으로 꽉 채운 쌍림사 소조상의 장엄한 모습 등을 조사하며 중국 산서지역과 우리나라의 사원의 전각배치, 불상 봉안의 형식, 불화의 모습 등이 비교되었다.   우선 개화사, 청룡사, 불광사 그리고 수신묘와 영락궁벽화에서 볼수 있듯이 이곳 벽화 대부분은 벽면 전체를 화면으로 삼은 거대한 규모와 이를 꽉 채운 수많은 존상들의 드라마틱한 구성이 두드러져 우리의 눈과 가슴을 충만케 했다.   그러나 몇몇 전각을 제외하곤 대부분 벽화가 없어졌거나 혹은 심하게 손상되어 그 흔적만 남아있는 등 벽화 자체가 지닌 보존상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어 안타까운 심정을 접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벽화와 비교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할수 있는 점은 후불벽 뒷면 불화가 대부분 관음보살이라는 점이다. 강진 무위사, 창령 관룡사, 청도 운문사, 완주 송광사, 양산 신흥사, 공주 마곡사 등지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조선시대 전각의 후불벽 뒷면의 벽화는 모두 관음보살도를 그린 공통점이 있다.   지역을 불문하고, 또 전각의 성격에 상관없이 왜 후불벽 뒷면에는 관음을 그리는 것인지, 또 이것이 우라나라만의 특징인지가 늘 궁금하던 점이었다. 그런데 북경 법해사에도 후불벽 뒷면에 우리나라처럼 관음보살이 그려져 있어 놀라웠는데 산서성 사찰에서도 그러한 점을 확인하게 되어 중국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특히 벽화 대신 벽면을 소조상(塑造像)으로 장엄한 쌍림사에서도 확실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특히 관음보살이 가장 중요한 존상으로 여겨졌음을 알수 있는데 불전의 내용을 벽화 대신 소조부조상으로 장엄한 석가전과 사천왕 등을 봉안한 천왕전에는 우리나라처럼 후불벽 뒷면에 관음을 배치하였고, 천불전과 나한전에는 본존을 관음보살로 봉안하고 있어 놀라웠다.   전각의 각기 다른 성격에 상관없이 관음신앙의 성행을 확인하게 된다. 중생의 재난을 구제해주는 현세이익적인 성격을 지닌 관음보살은 민간생활의 일부가 되었음을 짐작할수 있다.   중국 사원벽화의 내용 중 우리나라와의 두드러진 차이점 중의 하나는 수륙화(水陸畵)의 발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륙재를 야외에서 괘불을 봉안하고 진행하였다면 중국에서는 법당 안에 불화를 걸어 도량을 마련하거나 혹은 벽화로 그려 진행하였음을 알수있다.   특히 직산 청룡사 요전(腰殿)의 수륙화는 전벽면에 유불도 삼교의 수많은 신들의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어 있다. 원말 1336년에 시작하여 명초 1406년에야 완성된 이 벽화는 송대 이후 불교가 유교 및 도교와 습합되는 현상을 단적으로 알려줌과 동시에 고려말 불화와 비교할수 있는 원대불화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많은 신들의 도상을 우리 불화에 등장하는 제신들과 비교 분석한다면 많은 연구 주제를 얻게될 것같다. 특히 주목할 것은 우리나라 삼장정화(三藏幀畵)와의 관계이다. 수륙화와 삼장탱은 같은 용도로 같은 전거에 의한 주제이지만 양국에서 달리 표현한 예라는 점에서 의례상의 문제와 함께 비교분석할수 있는 좋은 주제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우리나라 불화와 비교할수있는 주제들이 산서성의 사원 벽화에 담겨져 있어 다시금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맛있는 산서성의 요리를 맛볼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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