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인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과 천년제국 신라의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마련된 ‘앙코르-경주 세계문화엑스포’가 지난 11월 21일 캄보디아 시엠리업 에서 개막되었다. 동남아시아 최대의 관광지로 알려진 앙코르유적은 똔레샵에서 프놈 꿀렌에 걸친 300평방킬로미터 이상의 방대한 지역에 분포해 있는 크메르 제국의 사원들을 말한다.   이번 엑스포를 계기로 우리에게 한층 다가선 캄보디아의 역사는 첫째 푸난과 첸라왕국(1~8세기), 둘째 앙코르 시기(9~15세기), 셋째 프랑스 식민지화와 독립으로 나뉘어지고, 크메르 루즈 집권의 암흑기를 거쳐 지금은 지구상의 가장 못사는 나라의 하나지만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문화유적은 다른 어떤 나라 못지 않아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자야바르만2세가 자신을 우주의 군주로 임명한 때부터 태국의 아유타야 왕조의 공격을 막지못해 수도 앙코르 톰을 포기하고 프놈펜으로 이전한 서기 802년에서 1432년에 이르는 약 700여년간의 화려했던 역사의 유적을 앙코르 유적이라고 한다.    앙코르의 수 많은 유적 중 ‘와트(Wat)’는 사원을 의미하고, ‘프놈(Phnom)’은 언덕을 의미하고, 바라이(Baray)는 인공호수를 의미한다는 것만 알아도, 앙코르 와트, 프놈 바켕, 프놈 펜, 서바라이, 동바라이 등의 유적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다.   약 200미터 폭에 5.5킬로미터 길의 해자, 1,500여명이 넘는 아름다운 천상의 무희인 압사라의 끝없는 등장, 인도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의 주요장면 묘사 부조조각들, 랑카의 전투장면, 우유의 바다 휘젓기등 너무나 복잡난해한 조각 상 앞에 앙코르 와트 한 유적만 둘러 보아도 질려서 안내가이드의 이야기가 더 이상 들리지가 않고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십 여년 전에 처음 가보았던 앙코르 유적은 지금까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오를 만큼 규모에 질리고, 너무나 많은 그러나 동일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세세한 조각상들에 질려 솔직히 그냥 사진첩이나 뒤적거리지 더 이상 상세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나 길고 복잡한 유적 설명이 어디부터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꾸며낸 이야기인지 구별조차 하기 힘든 내용이다.   그러나 박물관대학을 통해 문화재에 대한 접근방법을 조금 터득한 다음에 다시 앙코르 유적을 가보았더니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다.   우선 앙코르 유적은 크게 힌두교 유적과 불교 유적으로 구분하여 보면 이해가 빠르다. 수리야바르만 2세(1112년~1152년) 때 세워진 앙코르 와트로 대표되는 힌두사원과 자야바르만 7세(1181년-1201년)때 세운 앙코르 톰과 바욘사원 등으로 대표되는 불교유적으로 구분하여 답사하면 앙코르의 매력은 배가된다.   그리고 자야바르만 2세가 강력한 앙코르 제국을 세우기 이전의 고대유적과 역사 또한 놓칠 수 없는 캄보디아의 보배이다.   이번에 10년 만에 두 번째 찾은 앙코르 유적 답사를 통해서 결코 신라에 뒤지지 않는 앙코르제국의 위대함과 치밀한 기록문화에 다시 한 번 더 놀랐다. 자야바르만1세가 죽고 그의 양자인 사위인 느리파디챠가 잠시 집권하다,   그의 아내이자 자야바르만1세의 딸인 자야데비가 크메르 역사의 유일한 여왕이 되었는데, 이는 712년이라는 고고학적인 절대연대를 가진 자야데비의 비문에서 알 수가 있다. 712년이면 신라는 성덕왕 13년째이자 당나라 현종의 ‘개원의 치’ 원년에 해당한다.   경주박물관에 있는 문무왕비와 김인문비석과 거의 동시대로 볼 수 있는 자야데비 여왕의 비석을 보면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인류세계에 길이 남을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앙코르제국과 신라왕조를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언인가 생각해보면서 이번 앙코르-경주 세계문화엑스포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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