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렬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가을은 산행을 즐기는 사람에게 회상의 계절이다. 낙엽 밝는 소리에 지나간 세월의 추억을 되뇌고 살아온 인생의 여정을 사색하는 계절이다.   빛바래 가는 가랑잎이 바람에 흔들리다 하나둘씩 떨어져 수북하게 쌓인 낙엽 위를 무심하게 걸어가는 사람은 없으리라, 어린아이는 행복해 하며 놀이하고 나이든 이들은 푹신한 낙엽 길을 거닐다 보면 하늘의 섭리대로 대자연에 귀의해 가는 편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오랜만에 산행을 하였다. 늘어난 뱃살을 염려해서도 아니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도 아니었다. 단지 타지에서 고향사람들과 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에 단걸음에 달려간 것이다. 올해로 12년을 맞고 있는 경주신문·경주방송 초청등반대회는 해거름도 한번 없이 매년 출향인들을 위한 잔치를 베풀어 주고 있는 것이다.   단풍이 붉게 물들어 가는 청계산에서 청명한 하늘과 맑은 계곡 소리, 그리고 정말 반가운 고향 사람들, 동문선·후배, 동네 친구들이 시끌벅적 어우러진 가운데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산행을 마쳤다.   바쁜 사정이 있거나 연로하시어 등반을 못하시고 인사만 나누고 돌아가시는 분, 등산은 뒷전이고 반가운 친구들과 막걸리 한 사발에 흥겨운 회포부터 푸시는 분들, 아예 이참에 계중이나 소모임, 동창회까지 해버리시는 분들, 아이들 손잡고 온 가족들 등 참으로 다양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였다.   경주라는 이름 하나로 700여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장사진을 이룬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아직 고향사랑과 출향인들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았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자리였던 것 같다. 특히 오랜만에 보는 여자동창들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과 가슴 설레어 하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경주신문 17년, 경주방송 3년, 등반대회 12년을 맞이하면서 이젠 습작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서울에 있는 수많은 모임을 혈연, 학연, 지연을 초월해서 하나로 모이게 하며, 선배들은 자리잡아가는 후배들의 모습에 대견해 하고, 후배들은 건강하시고 모범적으로 생활하시는 선배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으리라 본다.   경주라는 말 하나로 한자리에 어울리고 인사를 나누며, 헤어짐에 아쉬워서 연거푸 인사하고 잡은 손을 놓지 못하는 모습에 고향의 끈끈함, 그리고 나도 경주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저 친구를 다시 만날 때 좀 더 좋은 모습으로 있을 수 있도록 다짐하며 손을 흔든다.   옛말에 ‘모기도 모이면 천둥소리를 낼 수 있다’고 했는데 경주신문·방송이 고향 소식을 천둥소리처럼 발전하기 바랄 뿐이다. 천둥소리처럼 출향인들에게 고향 소식을 잘 들을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부탁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이 행사를 위해서 애써 주신 경주신문·방송 관계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여러분, 그리고 참여해 주신 고향 선·후배님, 동문선·후배님들, 동네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내년행사에는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줄 것이라 다짐한다.   소주 몇 잔에 취기가 올라 얼굴은 청계산 단풍처럼 붉게 물들지만 마음만은 이 모든 것을 담아두고 싶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