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3년(선덕여왕 12년) 중국에서 귀국한 자장법사의 요청에 의해 지어진 황룡사지 9층목탑은 호국불탑으로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잘 보존되어 오다가 고려시대 몽고의 3차 침입 때인 1238년(고종 25년)에 불타 버렸다. 황룡사지 금당터에서 9층목탑터를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고 지나간 역사 즉 9층목탑을 불태운 몽고침입사를 회상해 본다.
통일신라를 뒤이은 고려왕조는 몽골의 간섭아래 무려 100년을 보냈다. 30년의 침략 기간을 포함하면 무려 130년간 징기스칸이 세운 몽고제국의 영향아래 있었던 것이다. 그 기간안에 황룡사지 9층목탑을 비롯하여 수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기도 했지만, 왕을 포함,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고려인의 원과의 인적·물적 교류가 빈번했다. 왕이 왕자시절부터 수행원과 함께 원에서 생활했던 만큼 몽골의 문화전파는 빠르고 광법위하게 퍼졌다. 반대로 원나라에도 고려의 풍습이 전래되어 ‘고려풍’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좋든 싫든 몽골문화는 현재까지도 우리 문화에 스며들어 우리 전통 문화의 일부분이 되었다.
우선 한국의 전통 술로 알려진 안동소주도 사실은 몽고에서 들여온 것이다. 소주는 페르시아에서 발생해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과 원나라에 들어온 술이다. 13세기말 원나라 병사들이 일본 침략을 위해 마산, 안동, 제주 등지에 주둔했는데, 이 때 소주를 좋아하는 몽고군 병사를 위해 안동에서 소주를 만들기 시작해 안동소주가 유명해진 것이다.
설렁탕도 몽골에서 유래된 것이고, 흔히 먹는 만두와 개고기 먹는 풍습도 몽고 유목민들의 생활문화가 전래된 것이다. 연지와 족두리, 여성의 귀걸이도 몽골침입 때부터 전해진 것이란다. 그리고 제주도의 조랑말도 삼별초의 난 이후 몽고군이 주둔하면서부터 말 사육이 시작되었다.
고려의 왕이 세자시절 원나라 조정에 볼모로 가서 원나라 황제의 사위가 되어 돌아와 고려왕이 되기도 했지만,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다 순제황제의 2황녀가 된 기황후는 원나라와 고려왕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에게 뒤를 이을 태자가 없어 고민할 때, 북두칠성의 명맥이 비친 삼첩칠봉에 불탑을 세워 불공을 드려야 한다는 한 승려의 비방책을 받아 천하를 살피다라 탐라국(현재 제주도) 동북 해변에 위치한 곳을 찾아 주봉(현재 원당봉)에 5층불탑을 건립하고 불공을 드린 후에 기황후가 태자를 얻었고 절을 세워 원당사라 하였단다.
며칠 전 세미나 참석차 제주도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이 조금 남아 제주시를 둘러보다 최근에 발굴을 완료하고 말끔하게 단장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삼양동 선사유적지를 답사하다가 문화유산해설사님의 안내로 동쪽에 보이는 산봉우리가 원나라 기황후의 기도처인 원당사 5층불탑이 있다는 설명을 듣고 찾아갔더니,
세 번 화재로 소실된 원당사터에는 현재 조계종 소속 불탑사가 건립되어있고, 경내 남쪽에 잘 가꾸어진 정원을 걸었더니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불탑사 5층석탑(보물 1187호)이 반겼다. 1층 탑신부 정면에 작은 감실이 만들어져 있고, 뭔가 좀 독특한 제주도에 있는 유일한 불탑 유적이 아닌가 싶어서 한참을 살펴보았다.
이 불탑에 불공을 드려 기황후가 낳았다는 황태자가 바로 ‘애유시리달라’ 로 1368년 주원장이 원을 멸망시키고 명나라를 세울 때, 북으로 도망쳐 ‘북원’이라는 나라를 세운 인물이다.
유목문화에서 농업화, 산업화, 정보화 시대를 거쳐 최근에 디지털 최첨단정보 기술시대에 ‘신유목민’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시대’에서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로 바뀌고,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닦는 자 흥하리라”는 징기스칸의 명언이 다시 주목을 받는 시대이다. 이런 급변하는 정보화시대에 세삼스레 770여년전 황룡사 9층목탑을 불태우고 100여 년간 한반도를 사실상 지배했던 아직까지도 우리 문화속에 깊숙이 남아있는 몽고제국의 흔적을 떠 올려 보았다.
연속극에 늘 나오는 ‘마마(殿下)’라는 말도 왕세자를 칭하는 몽고말이고, ‘마누라(邸下)’라는 말도 왕세자의 부인을 부르는 몽고말이라니 참 신기하다. 무심코 부르는 마누라가 몽고말로는 왕세자비를 칭하는 높힘말인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집사람을 낮추어서 말하는 언어로 변질이 되었다는 사연이다. 황룡사지 금당터에서 9층목탑, 불탑사 5층탑, 기황후, 마누라 등 몽고제국의 흔적을 회상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신유목민 시대를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