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콜은 여섯시이건만 지난밤 후속연회(?)가 없었던 탓일까, 오히려 일찍 눈을 뜬다.   후다닥 씻고는 식당으로 행장을 꾸려지고 내려간다. ‘적게 먹으리라. 죽만 한 그릇 먹고 말아야지’라고 결심을 하며 내려간다. 이유야 간단하다.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무슨 강박관념이 있는지 마구 먹어대니 몸무게가 불어난다.   줄이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만 실천 난망이다. 다들 고추장에 김이다, 짱아찌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없으니 사람들은 농담으로 나보고 중국사람이 조상인지 묻는다.   나야 말로 토종 박(朴)이 아닌가, 잘 먹는 것도 복이라 하는데 그 복이 다 어디로 갔는지. 일찌감치 길을 나서 산서성 박물관을 찾았다. 고대 진나라의 본거지라 중국의 국보급 문화재가 가장 많은 성(省)이라고 한다. 하기야 이 산서성이야말로 요. 순. 우 시대를 거쳐 춘추전국시대에 뿌리를 둔 중원이 시작된 곳이 아닌가. 말대로 성의 박물관이라 하지만 우리나라 박물관을 떠올리면 역사의 유구함이나 그 웅장 심오한 문화의 족적이 경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료의 사진기에 영상기록을 부탁하고 좀 더 자세히 보고자 눈을 대지만 바탕이 뚝눈인지라 보이는 것이 별로다. 옆에서 곁들이는 해설이 그나마 하나씩 보이게 하기에 다행이다.   그러나 그것마저 진득하지 못하기에 그 지루함을 참지 못하여 슬그머니 빠지기가 일쑤이니 공부꾼들에게는 눈에 가시일게 안보아도 알 일이다. 박물관을 나와 민속음식점에서 거한 점심을 먹고 ‘진사’라는 도교 사원으로 향한다. 해설자는 진사는 도교 사원이지만 유불선을 다 싸안은 문화유적이라고 한다.   과연 그랬다. 고색창연함이야 유구한 역사를 갖는 중국에서 늘 그러하다고 하겠지만,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다르다. 흔히 그러듯 사람이 있는 종교라 할까, 그런 느낌이 편하게 한다. 각종 건물의 현관들이나 추녀 하나가 신비하기도 하고 인간답기도 하다. 옆에 함께 걷던 동료가 묻는다.     “유교와 도교중 어느 것이 마음에 드냐”고 말할 것도 없이 도교라고 했다. 나같이 격이 허수룩한 사람에게는 왠지 엄격한 유교가 남의 것 같은 생각에서이다. 최소한 신선은 되지 못해도 입문만하면 ‘도사’는 따 놓은 당상이니 수지로 따지자면 까딱하다가는 사문에 난적으로 몰려 패가망신할 유교보다야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어 약 한 시간을 달려서 중국의 최대 민속촌격인 ‘평요고성’을 돌아본다. 낙안읍성이나 양동민속마을을 연상시키는 고성 속에서 명. 청의 흔적이 공존하는 중국인들의 삶의 현장이다. 먼지에 찌든 평요고성 울타리속의 거대한 인간군상은 모두 우리들 자신의 삶과 무엇이 다르랴.     저녁에는 일찍 호텔로 돌아와 밥을 먹는데 사람이 왜 끼니를 맞추는지 알겠다. 시장함에 먹는 기쁨이 더해 끼니는 필요와 즐거움이 함께한다.   저녁 후에도 다시 그 현장으로 인력거를 몰고서 가서 맥주한잔을 하고야 돌아온다. 밤이란, 특히 이국에서의 밤이란 언제나 그러하지 않은가. 약간은 갈지라도 걷고 싶고 약간의 객기마저 고개를 드는 순간이 아닌가. 여행이란 낯선 고장에서 익명의 편안함과 흐트러진 게으름을 즐기는 맛. 물귀신처럼 집적대는 동료화상이 있기에 고달픈 학술답사 여행도 낙이 있다. 한국시간, 자정으로 가는 시각에 남의 전통(電通)으로 서울에 있는 아이들의 안녕을 묻고는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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