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무성하게 자라 ‘용장(茸長)’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탑
용장은 경주남산의 서쪽 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용장사(茸長寺)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용장’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형상강 상류인 기린내가 흐르는 이곳에 옛날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 풀용(茸)자와 긴장(長)자 ‘용장’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용장사지 일대에 시느리대(이대)가 많아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용장은 경주에서 35번 국도로 언양방면으로 가다가 삼릉가 내남교도소를 지나면서부터 금오산 기슭에 펼쳐진 마을이다.
경주남산의 정상부인 수리산과 용장사지에 이르는 용장계곡, 천룡사에 이르는 천룡계곡 등으로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이 마을은 삼릉계곡과 함께 경주남산 서쪽 기슭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용장, 배양골이 용장1리, 냄비(부지) 일부와 머소, 강정, 등알이 용장2리, 틈수골 , 천룡이 용장3리, 비파(앞비파, 뒷비파)가 용장4리를 이루고 있다.
연중 관광객 발길 끊이지 않아
용장1리는 용장계곡으로 오르는 어귀 일대에 있는 마을로 계곡과 도로변에 위치한 마을이 ‘용장’이고, 그 북쪽 산기슭에 위치한 마을이 ‘배양골’이다. 용장1리는 남자 221명, 여자 206명으로 총 427명이 170가구를 이루고 생활하고 있다.
경주이씨 집성촌으로 지금도 3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 마을은 벼농사 외에 토마토, 미나리, 정구지, 한우 등이 주 소득원이다. 토마토는 6가구가 7천여평에서 2억4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정구지도 6가구에서 4천2백 평으로 2억2천만 원, 미나리는 3가구가 1천200여평에서 연간 3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한우도 300마리 정도 기른다. 화강암반인 용장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상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마을은 맑은 물과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살기 좋은 마을이다. 그래서 연중 내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때문에 일부 몰지각한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몸살을 앓기도 한다.
청주양씨 백집 살았다는 백양골
용장은 신라 때의 사찰인 용장사(茸長寺) 터가 있는 마을이다. 용장사는 조선 단종 때 생육신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기거하면서 ‘금오신화(金熬新話)’와 ‘매월당집(梅月堂集)’을 집필하였다는 절로 지금도 3층 석탑과 삼륜대좌불, 마애불 등이 남아 있다. 이 마을은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당목은 도로 서쪽 개울가에 서 있는 팽나무로 수령은 약 100년에 이른다.
백양골은 옛날 이 마을에 청주 양씨(楊氏)들이 백여집이나 모여 살았다고 하여 ‘백양골’, ‘배양골’이라고 부른다. 용장 동북쪽에 있다. 이 마을에서도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은 수령 80년 된 느티나무다.
김시습이 금오신화 지은 곳
용장사(茸長寺)터 용장리 산1-1번지에 있는 신라시대에 지은 용장사의 터, 매월당 김시습이 중이 되어 이곳에 은거하며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썼다고 한다. 지금 이곳에는 건물지에 돌로 짠 축대가 남아 있고,
자연석 기단위에 쌓아올려 산봉우리 전체를 탑으로 승화시킨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인 용장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86호)과 아름답고도 특이한 구조로 쌓은 삼륜대좌불(보물 제187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등이 남아 옛 자취를 더듬게 하고 있다.
용장계 제17사지 삼층석탑 용장계곡 상류에 있는 금오지 옆에 있는 삼층석탑. 돌탑이지만 벽돌탑의 형태를 한 모전탑(模塼搭)이다. 9세기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몸돌과 지붕돌이 흩어져 있던 것을 2002년에 복원하여 세웠다. 이 외에도 용장계에는 많은 절터가 산재해 있고, 탑재와 불상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대연화대(大蓮花臺) 용장사 터의 동쪽 등성이에 있는 연화대좌이다. 본래 이곳에는 깨진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1960년대 순환도로 공사를 하면서 없어져 버렸다.
금강산에 버금가는 ‘남산만물상’
열반골과 관음사(涅槃谷과 觀音寺) 용장계곡을 오르다가 그 오른쪽 골짜기를 열반골이라고 한다. 현재 관음사가 있는 골짜기다. 각종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이곳이 마치 금강산의 만물상과 같다고 하여 남산의 ‘만물상(萬物相)’이라고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때 각간(角干)의 딸이 부처님의 세계를 찾아 이곳에 와서 열반에 들었다고 하여 열반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처녀가 이곳에 왔을 때 온갖 짐승들이 길을 막고 으르렁거렸다고 하는데 그 짐승들이 모두 바위로 변하여 이곳에 있다.
계곡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처녀가 먹물옷으로 갈아입었다는 ‘갱의암(更衣岩)’이 있고, 그 위로 짐승들이 차례대로 바위가 되어 있다. 등을 구부린 채 바위를 타고 오는 고양이바위, 꼬리를 흔들며 달려드는 개바위, 표독스런 여우바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머리만 내민 쥐바위, 관음사 뒤에는 높이 15m에 이르는 큰 사자바위가 있다. 곰으로 보이기도 하므로 ‘대웅암(大熊岩)’이라고도 한다.
현재 관음사(觀音寺)는 원래 신라 때 절이 있던 곳에 70년 전에 새로 지었다. 관음사의 뒤쪽에 호랑이 형상을 한 맹호암(猛虎岩), 이무기바위, 들소바위, 거북바위 등이 있다.
은적골(隱寂谷)절터 용장사 터 맞은편에 있는 절터로 지금도 탑재가 흩어져 있다. 매월당 김시습이 여기에 들어와 숨어 있었다고 하여 ‘은적골’이라고 한다.
용장리열행비(茸長里烈行碑) 경주김씨(慶州金氏)의 열행을 기리는 비다. 1968년 신안주씨(新安朱氏) 문중에서 세웠다. 경주김씨는 효자 김수만(金壽萬)의 7세손으로, 남편 주영구(朱永龜)가 병들어 자리에 눕자, 20여년간 지성으로 간호하고 가계를 구려, 온 고을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경상북도 유도회(儒道會)에서 표창했고, 면(面)에서도 표창하였다.
용장리지석묘(茸長里支石墓) 용장리 논 가운데 있는 남방식 지석묘로 고인돌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내남중학교 터 용장리에 있던 내남중학교의 터. 지금의 삼성생활예술고등학교 전신인 이 학교는 1948년에 개교하였으나 뒤에 이조로 옮겼고 1998년에 폐교되었다. 최근 백수근씨 집이 들어선 곳에서부터 그 뒤쪽이 이 터에 해당한다.
모든 산은 줄봉산으로 향해
줄봉산(고위산 高位山) 경주남산의 최고봉으로 수리봉, 천황산, 천룡산, 하누재라고도 한다. 높이 494m이다. 경주남산의 모든 봉우리가 이곳으로 줄을 잇고 있다는 뜻에서 ‘줄봉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위산봉수(高位山烽燧)터 줄봉산(고위산) 정상부의 봉화대로 ‘봉화재만디’라고도 부른다.
금오지(金鰲池) 오산골 남쪽. 즉 용장계곡 윗 골짜기에 있는 못이다. 본래 있던 못을 1960년대에 확장했다고 한다.
넙덕바우 용장계를 오르다가 최근에 용장사지로 오르는 구름다리를 설치한 바로 아래 등산로에서 계곡으로 고개를 내민 길쭉한 바위를 말한다. 7~8명이 둘러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적한 바위이다.
노리미기 오산골에서 천룡으로 넘어가는 아주 가파른 고개로 노루가 많이 다니던 길목이라 ‘노리미기’라고 했다. 등산객들은 흔히 ‘깔딱재’라고도 한다.
오산산밖골 이곳은 땅이 좋아 삼밭이 있었다.
봉웃골 봉우산에 있는 골짜기. 금오지 못이 있는 안 골짜기이다.
삼밭골 배양골 남쪽의 삼밭이 있던 골짜기를 말한다.
새롱골 매월당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샘물이 나는 곳이라 ‘수렁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는 지금도 샘물이 나온다.
수문산골 월성김씨가 시묘(侍墓)살이를 했던 골짜기라 ‘시묘산골’이 변하여 ‘수문산골’로 된 것으로 보인다.
상상의 동물 기린의 ‘기린내’
이영재 오산골의 동북쪽에서 남산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기린내 덕천천(德泉川 ; 마도랑)과 화곡천(花谷川)이 이조천(伊助川)에 합수하여 이루는 형산강의 상류로 ‘기린내’, ‘인천(麟川)’이라고 한다.
장판골 용장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바닥의 돌들이 마치 장판을 깔아 놓은 듯 반듯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현재 민간 주차장이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큰태봉 은적골 동쪽에 있는 큰 봉우리.
탑산골 용장사터 삼층석탑이 있는 골짜기로, 매월당 터 위쪽에 있다. ‘매월당골’이라고도 한다.
하누재 금오산 정상을 말한다. ‘하늘재’라고도 한다.
개전들 근래에 새로 개간한 들로, 새번답 서쪽에 있다.
개전보 개전들에 있는 보.
배양골제실 월성이씨들이 묘사, 벌초 등 조상을 기리는 행사에 사용하고자 80여 년 전에 지은 제실로 2004년에 전기누전으로 불타고 그 터만 남아 있다.
대형주차장건립 추진 중
경주남산의 40여 골짜기 가운데서도 그 경관이 빼어나기로 소문난 용장계곡을 보유한 이 마을은 용장계곡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주차문제가 심각하다. 그래서 대형주차장을 확보해 주차문제를 해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농림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촌마을가꾸기사업’의 일환으로 이조리와 같이 주차장건립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주차장이 건립되면 농산물 직판장을 개설해 주민소득을 올릴 계획이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올해 97살의 손진언(선호어른)할아버지로 다리가 좀 불편하지만 전동휠체어를 타고 경로당에 출입하신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김상환(73·전 내남면장), 이춘우(67·전 경주시 산업환경국장), 이칠근(64·재경내남향우회장), 최진근(61·경원대 교수), 주기현(56·(주)동신), 이찬우(54·경주시 재난안전관리과장), 박중환(52·대덕연구단지), 이종수(49·길록건축사), 주형돈(32·포철연구소)씨 등이 있다. 바쁘신 중에도 마을 안내에 애써주신 김석수 이장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