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없는 미륵 있는 마을 ‘밀구’ 서면체육대회 3연승 우승기 영구보관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들녘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콤바인을 앞세운 숨가쁜 질주가 이어지고, 콩이며 팥, 들깨, 참깨를 거두어들이느라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밀구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도 타작을 마친 벼들이 가을햇살에 몸을 맡긴 채 널어서 있었다.     용명은 구미산 서쪽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다. 여근곡으로 유명한 신평리와 국도 4호선을 경계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구미산으로 용이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는 ‘용암(龍岩)’과 깊은 산골이라 산나물이 많아 이름이 났다고 하여 ‘명장(明莊)’이라고 불렀다는 마을이름에 연유하여 ‘용명(龍明)’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밀구와 명장을 병합하여 용명리가 되었다. 용명은 본래 경주군 서면에 속해 있었으나 1973년에 건천읍으로 편입되었다. 장승·신기가 용명1리, 밀구가 용명2리, 명장·탑골·새마을이 용명3리를 이루고 있다.     주민단결로 각종 체육대회 휩쓸어     밀구는 귀 없는 미륵불이 있었다 하여 ‘밀이촌(密耳村)’, ‘미이촌(彌耳村)’ 또는 ‘밀귀’라고 부르다가 ‘밀구’로 불러졌다고 한다. 마을 어귀에 돌미륵이 있었는데 섭들(건천읍 신평리)의 장사들과 미륵불을 서로 차지하려고 했는데 하루는 섭들에 가 있고, 자고나면 밀구에 와 있었다고 한다. 최근까지 섭들에 있던 미륵불이 본래 이 마을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섭들 부처못 둑에 있던 이 불상은 10년 전에 도둑맞아 그 행방을 알 길이 없다.   경주에서 국도 4호선을 따라 아화방면으로 가다가 오봉산 여근곡과 마주보고 있는 동쪽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바깥에서는 밀구못 둑에 우거진 느티나무와 회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만 보일뿐 이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밀구는 밀구못 북쪽 산기슭에서 남쪽으로 밀구못을 내려다보고 앉아 있다.   이 마을은 서쪽을 제외한 삼면이 산으로 오막하게 둘러쳐진 형국이다. 서쪽마저 밀구못 둑에 형성된 숲으로 인해 사방이 안온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마을을 드나드는 통로가 하나밖에 없고 들어오는 곳으로만 나갈 수 있어 마치 벌통과 같은 형국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마을 전체가 한 마을을 이루며 가족처럼 생활하고 있다. 그러니 예로부터 주민화합과 단결이 잘 된다고 한다. 서면에 소속되어 있을 때 서면체육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하여 ‘우승기’를 영구보관하고 있다.   마을회관에는 각종 대회 우승기를 비롯한 우승트로피 30여개가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다. 옛날부터 부촌으로 알려진 이 마을은 밀구못 아래에 펼쳐진 밀구앞들에 의지해 주로 벼농사를 짓고 있고, 찰보리와 마늘, 정구지 등도 생산하고 있다.   찰보리는 9만여 평에서 연간 2억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고, 마늘은 2만여 평에서 1억5천만 원, 정구지는 4만5천 평에서 10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마을은 현재 113가구에 남자 143명, 여자 144명으로 총 287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달성서씨(17호), 오천정씨(17호), 파평윤씨(15호), 단양우씨(10호) 등 4개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남편 살리고 자결한 아내     용명리효열각(龍明里孝烈閣) 조선 고종 때 윤두환(尹斗煥)의 아내였던 광주노씨(光州盧氏)의 효열(孝烈)을 기리기 위해, 1968년에 그 자손들이 세웠다. 노씨는 가난한 살림에도 홀어머니와 남편을 극진히 모셨으며 병든 남편을 위해 추운 겨울에 얼음을 깨고 병에 좋다는 고기를 잡아 봉양했으며, 남편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기도 했다. 그 후 남편의 병이 낫자 “나는 자식을 못 낳으니 새 장가 들어 후대를 이어라”는 말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용명리 1761-2번지에 있다. 조선백자 가마터 구미산(龜尾山) 서쪽 줄기를 ‘가마골’ 또는 ‘옥수골’이라 부르는데, 지금도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회백색(灰白色)의 유약(釉藥)을 바른 백자 조각이 이 일대에 흩어져 있다고 한다. 옛날부터 이곳에 가마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주민들은 이곳을 ‘사기전삐알’이라고 부른다.     용구데이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웅덩이가 있는 곳으로 외골과 밀구못 동남쪽 골짜기 등 2곳에 있다. 계곡의 물웅덩이와는 다르다. 산의 지형이 움푹하게 길게 파여 웅덩이를 이룬 곳이다.   원고개 용명1리로 넘어가는 고개, 고을원이 당수골에 있는 대감묘에 참배하러 넘어 다닌 고개라고도 한다.     여근곡 가다가 잘린 남근산     불멧등 큰오갱이 남쪽에 있는 불알처럼 생긴 등성이로 여근곡에 마주하고 있어 ‘남근산’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의 남근산이 여근곡을 향해 가는데 등굼쟁이(소금장수)가 지게작대기로 쳐서 남근 끝부분이 떨어져 작은 산이 되었다고 한다. 섭들 가운데 있는 오미산(독산)이 그 산이라고 한다.   황샛등 지형이 황새 모양으로 생긴 등성이로, 밀구 북쪽에 있다. 또 황새가 많이 날아와 앉았다고도 한다.   막자골 밀구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서낭당이 있었던 곳으로 시집갈 때는 이곳을 돌아갔다고 한다. 마지못해 넘어갈 때는 귀신이 붙는다고 침을 뱉고 넘어 다녔다고 한다.   당숫골 당수나무가 있었던 골짜기로, 밀구 서쪽에 있다.   문동골 장승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욋골 적은오갱이 남쪽에 있는 골짜기다. 군시방 밀구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구수방(九水方)’이라고도 부른다.   구수방못 옛날에 막은 구수방에 있는 못으로 ‘구수방제(九水方堤)’라고도 한다.   막자골못 막자골에 있는 못. 1960년경에 막았다고 한다.   문동골못 문동골에 있는 못   밀구못 밀구 남쪽에 있는 못으로 ‘밀이제(密耳堤)’, ‘미이촌제(彌耳村堤)’라고도 한다.   밀구앞들 밀구 앞에 있는 들. 밀구 못 밑에 있는 들이다.   부댕이들 오갱이 남쪽에 있는 들로 ‘부당들’이라고도 한다.     부당들 봇도랑 정비와 밀구못 준설     이 마을 주민들은 부당들 봇도랑 도수로 정비를 가장 시급한 마을 사업으로 꼽았다. 또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밀구못이 메워져 그 수심이 얕고 여름이 되면 못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못 준설사업을 바라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올해 98살의 김남분(국당댁)할머니로 혼자 밥해 잡숫고, 생활하실 정도로 아주 건강하시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정경동(69·예비역 육군대령), 정환동(61·동광주식회사 대표), 정강주(57·한국요가문화협회 회장), 우병구(56·해양대학교 교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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