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아있는 그 곳을 가다… 이 경 희-경주대 문화재 연구원     중국 최대의 도교사원인 영락궁(永樂宮)은 원나라때 지어진 것으로 지금은 중국의 산서성 예성현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도교의 유명한 신선 여동빈의 고향인 영락현에 있었기 때문에 영락궁으로 불리웠던 것을 삼문협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하자 지금의 예성으로 옮겨 온 것이다.   영락궁은 그 건축과 벽화 등 원대(元代)의 산 자료로 매우 중요시되고 있지만 중국 산서성의 다른 유적지에 비해 조금은 외진 곳에 위치한 탓에 큰맘 먹지 않고서는 들를 수 없는 곳이다. 또 영락궁 벽화는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신선도와 많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주목되어 왔다.   영원한(永) 즐거움(樂)을 누릴 수 있는 곳, 영락궁… 이름부터 왠지 그곳엔 신선이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마침내 영락궁 앞에 도착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영락궁 벽화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가장 먼저 바쁜 걸음으로 궁문에 들어서자마자 앞에는 원대에 지어졌다는 삼청전이 그 위용을 뽐내며 모습을 나타냈다.   조심스레 전당 안으로 들어서니 밖과는 달리 어두운 실내에 잠시 두 눈만 껌뻑일 뿐... 두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서서히 드러나는 벽을 가득 채운 수많은 도교 인물들의 행렬은 화려하다, 웅장하다, 한마디만으로는 표현하지 못할 감동 그 자체였다.   삼청전 안을 가득 메운 인물들은 남극(南極), 북극(北極), 동극(東極), 옥황(玉皇), 광진(광진), 목공(木公), 후토(后土), 금모(金母) 등 8명의 도교의 주신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군신들로, 8명의 주신들은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왕과 같이 위엄있는 모습으로 좌우에 여러 명의 군신과 역사, 옥녀 등을 거느리고 서있거나 앉아있다.   이들 신들은 모두 매우 실감나게 묘사돼, 어떤 이는 앞으로 나아가는 듯 정면을 향하거나 혹은 돌아보는 모습, 대화를 나누고 귀 기울여 듣는 모습,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모습, 조심스럽게 시중을 드는 모습, 검을 휘두르는 위풍당당한 모습 등 제각각 다른 표정과 자태로 자연스럽게 표현돼 있다.   신선들의 옷깃은 가볍게 부는 바람에 나부낀다. 옥화금정(玉華金鼎), 칠보향로(七寶香爐)는 두드리면 소리가 날 것만 같고, 모란과 연꽃 등은 금방이라도 피어날 것 같다. 힘차고 유려한 필선은 화려한 채색과 어우러져 벽화의 인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의관, 보개, 궁선, 상번, 옥화금정, 칠보향로는 금분을 반죽해 도드라지게 바름으로써 그 화려함을 더하고 입체감이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각각의 주요신 앞에 쟁반을 다소곳이 받쳐든 옥녀상들이었다. 입가에는 살짝 미소를 머금고 수줍은 듯 옆으로 비켜선 자세로 서 있는 그녀들은 아마도 원대 최고의 미인을 모델로 했으리라...   한동안 삼청전의 벽화에 넋을 놓았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또다른 벽화가 있는 순양전으로 향했다. 순양전은 도교의 팔선 중의 하나인 여동빈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그곳 벽화의 대부분은 여동빈의 일대기를 고사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가장 유명한 벽화가 바로 감실뒤쪽 벽에 그려져 있다는 <종리권도여암도(鐘離權度呂  圖)>와 북문 문액에 그려진 <팔선과해도(八仙過海圖)>이다.   특히 순양전의 북문 문액에 그려진 <팔선과해도>는 서왕모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8명의 신선들이 서왕모의 처소가 있는 곤륜산 밑의 선경으로 바다를 건너가는 장면이 표현된 것으로 그림으로는 영락궁벽화가 가장 이른 예라고 알려져 있다. 영락궁 벽화의 <팔선과해도>는 몇 백 년의 세월과 공간을 넘어 우리나라 조선후기 회화의 주제로 다시 나타나 <해상군선도>, <파상군선도>, <팔선도해도> 등의 이름으로 널리 유행하게 되는데 유명한 풍속화가인 김홍도도 이 주제를 즐겨 그렸다.   조선후기 늙지 않고 오래 살고자 장수기복을 기원하는 신선사상이 유행하면서 신선도가 많이 제작되었고, <팔선과해도>와 같은 주제의 신선도가 생일이나 결혼 또는 어떤 특별한 계기에 수복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선물로 빈번하게 이용됐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늙지 않고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는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는 변함없는 세상이치인가 보다... 지난 여름 뜨겁던 여행의 기억이 선선해지는 가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기전에 혼자서 다시 한번 돌아본 영락궁의 벽화는 여전히 생동감 넘치고 화려하게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