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내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선도산. 석양노을이 선도산을 붉게 물들일 무렵의 그 아름다운 전경은 경주를 찾는 문화재 답사객들에게 진한 인상을 남겨준다.   황룡사 터에서, 안압지에서, 첨성대에서, 낭산 독서당에서 바라 보이는 선도산 노을은 각기 다른 향기를 준다. 특히 오곡백과 풍성한 이 계절에 미탄사지 삼층석탑에서 바라보이는 선도산 노을의 그 아름다움이란 이루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그런데 난 선도산을 볼 때마다 복숭아에 얽힌 이야기가 떠 오른다. 선도산의 선도(仙桃)는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를 의미한다. 복숭아는 원래 중국에서 전래되었다. 실크로드를 여행 할 때 곤륜산이 바라다 보이는 호텐 부근에서 사 먹었던 반도복숭아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서왕모를 비롯한 신선들만이 먹는다는, 1개를 먹으면 수명이 천년 연장된다는 선도(仙桃)를 세 개나 훔쳐먹은 삼천갑자 동박삭의 이야기처럼 무병장수를 바라는 마음에서 중국, 한국, 일본사람들은 예부터 복숭아를 많이 좋아했다고 한다. 도연명이 지은 무릉도원은 바로 복숭아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신선들이 사는 심산유곡을 뜻한다.   요즈음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성도 국제화 물결을 타서 중국식당이나 일식당도 한식당 못지않게 찾는다. 그런데 간혹 유명호텔의 일식당 중에는 ‘모모야마’라는 간판을 내건 곳도 있는데 처음에는 ‘모모야마’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으나 문화재공부를 하면서 ‘모모야마’란 일본식으로 말하면 화려하고 고급스런 풍의 일본문화를 의미함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 모모야마시대하면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엽까지를 의미하는데, 이 때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에 의해 천하통일이 이루어졌고, 서양으로부터 기독교와 조총의 전래라는 문화적 충격으로 예전에 없던 예술과 회화도 발생하였다.   전쟁에서 칼로 싸울 때는 높은 산위에 성을 쌓는 것이 유리했으나, 조총이 나옴으로써 굳이 산성의 의미가 약해져서, 평지에 웅장한 성벽을 쌓고 그 위에 더 높은 천수각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건축양식이 생겨났다.   오사카성이나 히메지성이 바로 이 시대에 만들어진 모모야마문화의 대표격이다. 그리고 장군들이 거주하는 천수각이나 침전 내부의 벽에는 금빛 찬란한 벽화나 병풍그림이 유행하였는데, 가노 이에토쿠를 비롯한 화가들이 그린 ‘금벽장벽화’가 유명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에도에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교토 거주지인 ‘이조성’도 모모야마시대의 건축이다.   호화스럽고, 웅대하고, 활기차며, 불교의 영향이 약화되는 대신 서양의 문화가 가미된 모모야마 문화는 아직도 일본 나라.교토.오사카지역을 답사할 때 그 흔적을 많이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하통일을 전후한 시대의 일본문화를 ‘모모야마문화’라고 했을까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일본역사문화 서적을 뒤져보니 바로 복숭아 때문이었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두 장군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대망’이라는 장편소설의 주인공 오다 노부나가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였는데, 두 장군은 각각 아즈치(安土)와 후시미(伏見)란 곳에 성을 쌓았는데, 히데요시가 쌓은 교토의 후시미 성에는 유난히 복숭아(桃)나무가 많아 이곳을 ‘모모야마성(桃山城)’이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이 시대를 ‘아즈치-모모야마시대’ 혹은 줄여서 ‘모모야마시대’라고 하며, 이 시대의 문화를 ‘모모야마문화’라고 했단다.   오사카성, 히메지성을 비롯하여 아직도 일본문화유산을 대표하는 모모야마문화의 흔적들 속에는 불로장생을 염원하던 마음에서 많이 재배했던 복숭아밭의 아름다운 꽃처럼 화려함이 베어있다.   천년문화도시 경주를 지켜온 ‘선도산(仙桃山)’과 중세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모모야마(桃山)문화’의 공통점은 바로 신선들이 즐겨먹었다는 ‘복숭아(桃)이야기’가 아닌가 싶어 적어보았다. 선도산 자락에 ‘신선들만이 먹는 복숭아’의 상표를 내걸고 탐스런 복숭아 나무를 심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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