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이 달고 맛있어 ‘감지(甘地)’해발 300m 고랭지채소 생산
감산은 산내면의 첫 마을이다. 경주에서 건천읍 송선리를 거쳐 땅고개를 넘어 산내로 들어가는 관문에 있는 마을이다.
그야말로 산 넘어 첫 마을인 감산은 해발 300m 이상의 높은 곳에 산들이 빽빽하게 둘러쳐진 협곡의 사이사이 골짜기에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대가 높고 산간지역인 감산은 일교차가 심해 과일의 당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단석산과 오봉산 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낙동강 수계에 해당한다. 이 마을 어머리와 장사에서 발원한 도랑물이 감존천을 이루고, 동창천에 합류하여 운문댐에 머물며 대구시민들의 식수원이 되기도 한다. 이 물은 다시 밀양으로 흘러 밀양강물이 되어 영남루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안개동할멈의 저주로서리 가장 먼저 내려
경주에서 서리가 가장 먼저 내린다는 감산은 옛날 안개동할멈이 아기를 낳고 먹을 것을 얻으러 다녔는데, 장사(長沙)에 가서 간장을 얻어 ‘장사’라 했고,
어머리에서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해 ‘어머리’라 했으며, 감지에서는 간장을 얻으러 갔으나 간장을 주지 않았으므로 화가 나 소금을 뿌리고 갔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서리가 제일 먼저 내린다고 한다.
‘감지’, ‘원골’, ‘어머리’, ‘저잣걸’, ‘탑거리’, ‘중마을’이 감산1리, ‘장사’, ‘방터’, ‘소모기’, ‘횟골’이 감산2리를 이루고 있다.경주 건천에서 20번 국도를 따라 건천나들목과 송선못을 지나 땅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을 내려서면서부터 감산1리이다. 경주시청 기점으로 25km, 30분 거리에 있다. 내리막길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 저잣걸이다.
이곳에서 대왕사(폐교된 감산분교)를 끼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울창한 나무들이 서 있는 감지가 보인다. 탑거리는 감지에서 골짜기로 더 들어가야 하고, 어머리는 다시 골짜기를 따라 3km 더 들어가야 한다. 저잣걸에서 어머리까지는 4km에 이른다. 원골은 저잣걸 동남쪽 골짜기에 있으며 중마을은 그 사이에 있다.
감산1리는 100가구에 212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밀양손씨(20호)와 경주이씨(10여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벼농사와 한우, 양봉, 고랭지채소, 곤달비, 고사리 등이 주 생산물이다. 한우 500두와 양봉 500군이 길러지고 있으며,
고랭지채소는 3만여평에 연간 2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최근 이 마을 이종우(47)씨가 1,200평에 차나무를 재배하고 있어 관심의 대상이다. 경주지역에서 차 재배가 성공하여 새로운 농가소득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옛날 장이 섰던 ‘저잣걸’
감지(甘地) 높은 산간지역으로 일교차가 심해 과일의 당도가 매우 높아‘감지(甘地)’, ‘감존(甘存)’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감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마을이름을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감산1리의 중심이 되는 큰 마을로 마을회관과 당목, 쉼터가 이 마을에 있다. (40가구)
어머리 마을의 지형이 마치 물고기의 머리같이 생겼다고 하여 ‘어머리’ 또는 ‘어두(魚頭)’라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신라 때 전란으로 왕자가 이 마을에 피난하였던 곳이라 하여, 옛날에는 ‘왕자동(王子洞)’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탑거리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20가구)
원골은 신라시대에 밀양, 청도에서 경주로 들어갈 때면 이 마을의 사시막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이 고개에 나그네들이 직접 밥을 해서 먹고 쉬어 갈 수 있는 원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이름을 ‘원골’ 또는 ‘원동(院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조선 순종(純宗) 때, 경주 고을 원이 이곳 지방을 순시할 때 쉬어 가도록 지은 집이 있었다고 하여, ‘원골’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저잣걸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10가구)
저잣걸은 조선시대에 이곳에 농산물을 사고파는 장이 섰다고 하여 ‘저자거리’, ‘제자거리’ 또는 ‘저잣길’이라 불렀다고 한다. (20가구)
탑거리는 감지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 신라시대에 이 마을에 작은 절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절은 없어지고 탑만 남아 있었다고하여 ‘탑거리’, ‘탑길’, ‘탑리(塔里)’, ‘탑동(塔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탑마저 무너지고 마을 뒷산에 파손된 탑돌과 주춧돌만이 일부가 남아 있다. (4가구)
중마을 저잣걸과 원골 사이에 있다고 하여 ‘중마을’, ‘중마실’이라고 부른다. (4가구)
대왕사 해마다 마을 경로잔치 베풀어
감천정(甘泉亭) 감지 마을회관 앞 납닥등 밑에 있는 정자로, 이 마을 입향조(入鄕組)인 손경찬(孫慶燦)을 추모하여 1979년에 그 후손들이 세웠다.
감산초등학교 터 감산초등학교는 1946년 11월에 개교하였으나 1998년 3월에 의곡초등학교에 통합되었다. 지금은 대왕사(주지 윤성철)라는 불교수련원이 들어서 있다. 대왕사 성철스님은 해마다 마을 경로잔치를 베풀어 마을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구장매기 중마실의 남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 장이 섰던 곳이라한다.
조래봉 원골 남쪽에 높이 솟은 3개의 봉우리로 마치 조래(조리) 같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디미산 원골의 북쪽에 있는 산. 옛날 홍수 때 산이 물에 잠기고 두지만큼만 남았다고 하여 ‘두디미’라고 부른다고 한다.
생지목(生地目) 감산리에 있는 고개로. 옛날 문헌에는 ‘행지목(行之目)’이라는 기록이 보인다고 한다. 이곳이 경주를 드나드는 길목이었던 관계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행지목이라고 하던 것이 훗날 생지목으로 변천된게 아닌가 싶다.
땅고개(당고개) 산내에서 건천읍 송선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 이곳에 당집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땅고개’라고 부른다. 사시매기 중마실에서 내일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사시미기, 사심매기라고도 한다.
납딱등(廓登) 감존 동편에 있는 등성이로 나지막한 등성이라 납작 엎드린 형국이라 ‘납딱등’이라고 부른다.
선바우 선바우재에 있는 바위로 높이가 20여미터에 이르는 우뚝선 바위다. 탑거리에서 어머리로 가다가 왼쪽 산등성이 정상부에 바위가 보인다.
선바우재 탑거리에서 어머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선바위가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오리재 탑거리에서 건천읍 송선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길이가 오리(2km)에 이른다고 ‘오리재’라고 부른다.
용솟으미 용이 하늘로 등천했다고 전하는 산으로, 단석 서쪽에 있다.
부처 묻은 골짜기 ‘불뭇골’
불뭇골 감지의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부처를 묻은 골짜기라는 뜻이다. 옛날 난리 때 탑거리에 있던 불상을 스님이 이 골짜기에 묻었다고 전한다.
천만네집골 천만이라는 사람이 살던 골짜기로, 탑거리 남쪽에 있다. 옛날 상조계를 만들어 상여를 마련해 두었는데 천만이라는 상놈이 밤에 몰래 상여를 사용하여 상놈이 썼던 상여를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골짜기를 ‘천만네집골’이라고 부른다.
서당집골 원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서당집이 있었다고 한다. ‘서당골’이라고도 한다.
석석골 반탕골의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돌이 많아 ‘석석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돌이 많다고 한다.청두들재 원골에서 내남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모자리들 둔들의 아래쪽에 있는 들로 항상 샘물이 나와 모자리에 적합한 곳이다. 당숫골들 탑거리 남쪽의 골짜기에 있는 들. 옛날에 이곳에 당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둔들 감지 남쪽에 있는 들로 옛날에 둔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딧들 감지의 뒤에 있는 들.
추자남들 추자(호두)나무가 있던 들로, 당숫골 옆에 있다.
어머리못 어머리 마을 어귀에 있는 못으로, 어두지(魚頭池)라고도 한다.
동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당목은 감지마을 중앙인 마을회관 앞에 있는 수령 150년의 느티나무 2그루와 포구나무 1그루이다.
20년째 어른들의 무병장수 기원 복들이
산골마을 감산은 천혜의 산세와 항상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지닌 살기 좋은 마을이다. 맑은 공기와 넉넉한 인심으로 주민간의 화합도 남다르다. 20년 전부터 마을에는 주민 80% 이상이 참여한 상조회가 운영되고 있다.
본동주민은 물론 출향인들도 참여하고 있고, 상례 시에는 90%이상이 참석하여 어려움을 같이한다고 한다. 점점 초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농촌현실을 생각할 때 부조정신으로 그 어려움을 나누어 가는 이 마을 상조회는 좋은 본보기가 될법하다.
그리고 이 마을은 청년회와 부녀회원들이 마을어른들을 공경하고 잘 모시는 효성있는 마을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매년 초복날 국수와 과일 등 음식을 마련하여 어른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복들이를 20여 년째 해 오고 있다고 한다.
특히 부녀회에서는 2000년부터 떡방앗간(농산물가공공장)을 운영해 얻은 수익금 전액을 경로잔치 등 마을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회관 앞에 건립된 떡방앗간에는 고추가루, 쌀가루, 콩가루 등을 갈 수 있고, 참기름, 들기름도 짤 수 있는 시설들이 완비되어 있다.
본동에서 어머리까지 연결로 확포장
이 마을 주민들은 본동(감지)에서 어머리까지 연결하는 마을 진입로가 좁아 통행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마을의 주 통로인 이 도로의 확포장이 숙원이다.
이 마을의 최고령자는 손작수(91·원동어른) 할아버지로 지금도 손수 지게지고 농사를 짓고, 반주로 소주를 서너잔씩 마실 정도로 건강를 유지하고 계신다. 할아버지댁을 찾아갔을 때가 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할머니와 점심상을 마주한 할아버지는 플라스틱 대병을 기우리시며 ‘한잔 하겠냐’고 권했다.
또 제2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휠체어 펜싱 단체전에 출전해 동메달 3개를 딴 손영보(41)씨는 마을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과 후원을 아끼지 않아 주민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다.
손영식(64·조양화학 대표), 손영태(61·전 성남시의회 의장), 손원호(60·산내농협 조합장), 손상규(59·경주시 중부동장), 이종우(47·산내농협 감사)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