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마당
소노베 선생과의 동행
신 평
지난 며칠간 필자는 아주 뜻 깊은 여행을 하였다. 부산에서 대구로 다시 서울로 갔다가 집인 경주로 돌아오는 여행이었다.
재작년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 행정법 학술대회에 참석한 소노베(園部) 선생과 만나 헤어질 때 내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저 분을 이제 헤어지면 과연 다시 뵈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 목이 메었다.
1989년에 필자는 해방 후 한국 법관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그때 그 분을 처음 뵈었다. 원래 일제강점기 시대 때 경성법률전문학교 교수로 부친이 재직하다 결혼하여 선생을 낳았으니 선생은 서울 출생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서울에서 보낸다. 한국에서 처음 온 법관이라고 하여 유난히 챙겨주셨다. 선생은 오랜 기간 대학 강단에 섰으나, 법관으로서도 오래 재직하였고 또 최고재판소 근무 경험도 있어 일본 사회에서 발치가 무척 넓었다. 필자가 일본에 체류한지 몇 달이 지났을 무렵 선생은 최고재판소 판사(우리의 대법관에 상당함)로 발탁되었다. 그러니 더욱 선생의 덕을 입어 일본 생활이 편해졌다.
이런 외형적인 보살핌이야 사실 그닥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선생의 한국과 한국인에 관한 따뜻한 시선, 애정을 접촉의 과정에서 언제나 느낄 수 있었던 점에 좋았다. 선생은 그 자신 백제계의 사람임을 숨기지 않으시고, 대륙의 후손답게 일본인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활달한 풍모를 보였다. 선생의 성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겨울 언 날을 녹이는 봄바람과 같았다. 선생이 계시면 그렇게 하여 주위는 언제나 활기를 띠었다.
그처럼 아쉽게 헤어졌다가 이번에 필자가 봉직하는 경북대학의 초청으로 내한하여 부산대, 경북대를 거쳐 사법연수원에서 강연을 하고, 또 유수의 신문에 특별대담을 하는 스케줄이 잡힌 것이다.
선생을 다시 뵌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했다. 거기에다 선생과 함께 한 3박 4일간은 바쁜 일정이면서도 한편의 찬란한 축복이었다. 때로는 거리에서 선생이 좋아하는 소주를 한잔 마시며 우리는 이야기에 몰두했고, 전해져오는 선생의 기품과 인격 그리고 식견에 빨려들었다.
선생은 나를 사람들에게 18년간 긴밀한 우정을 쌓아온 친구로 표현해주었다. 연령으로 한 세대 위이고, 거쳐 온 직책으로도 감히 비교할 수 없으나 선생은 우리 둘 간의 따뜻한 마음의 교류에 만족하시며 그런 말을 자랑스럽게 했다. 아! 다시 그 분을 뵈올 날이 오리라 믿으며 기다린다.
● 약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대학원 법학과 졸업
서울, 인천, 대구, 경주에서 법관 역임. 변호사
일본 최고재판소 외국재판관 연수원, 일본 게이오(慶應) 대학, 히토쯔바시(一橋)대학 및 미국 클리블랜드 주립대학 수학, 중국 정법(政法)대학 객원교수
저서 및 논문 : 「일본 땅, 일본 바람」「명예훼손법」등 8권의 저서와 40여 편의 법학논문
현재 : 변호사. 경북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법학박사
사법연수원 외래교수. 엠네스티 법률가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