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하루하루 다양한 법률관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법률관계라고 하니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려니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법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버스를 타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주택을 사고팔거나,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거나, 그리고 결혼을 하는 등 사소한 일에서부터 매우 특별한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생활 중 법률관계가 아닌 것은 거의 없다.
다행히 대부분의 법률관계에서 우리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긴 인생에서 반드시 한두 번쯤은 어려운 법률문제에 부딪힐 때가 있기 마련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운전사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내가 다쳤다면, 진료를 받던 중 의사의 과실로 내 몸이 더 나빠졌다면, 전세로 집을 빌렸는데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면, 직장에서의 과도한 스트레스로 몸에 이상이 생겼다면, 그리고 당신의 배우자와 헤어져야 하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간의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지만, 만약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법률전문가와 상담할 것을 권한다. 초기에 잘 대응하였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사소한 것이라고 방치하였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길 바란다는 변호사가 있다.
김태하 변호사는 경주시 배반에서 태어나 동방초등학교, 경주중학교,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물리학자의 꿈을 포기하고 장학금제도가 좋은 학교로 가기위해 건국대 법대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법대에 진학하였지만 고시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고, 장학제도의 틀에 묶여서 생활하다보니 회의도 많이 들어서 졸업 후 취직만을 생각하고 학점을 유지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졸업 후 몇몇 회사에 지원해보았지만 서류심사에서 학교차별을 당해 번번이 탈락을 하면서 차별 없이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것이 고시라고 판단해 3년간 공부한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8
7년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한 김 변호사는 검찰청의 활동적인 분위기와 스스로 부정을 파헤칠 수 있다는 것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으며, 법과 원칙을 무엇보다 중시했었던 시절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9년간의 검사 생활을 끝내고 95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으며, 현재는 서초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고되기도 하지만 워낙 다양하고 많은 사건을 접하게 되어 많은 상식을 알게 되고, 사회의 많은 부분에 대해서 관여할 수 있다는 것에서 검사시절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법은 한 사회를 유지해 가는 틀이고 지주이다. 그래서 법이 바로 지켜지면 그 사회도 잘 굴러가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수많은 법을 만들고 고치고 다시 만들어 왔지만 늘 어수선하고 억울한 사람이 많고 법 때문에 도리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조차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 세상을 법 없이는 살 수 없다. 이왕 그렇다면 법을 제대로 알고 잘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요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힘없고 사회에서 소외받거나 고통 받고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수임료를 합리적으로 받고 그 지역에 명성을 오래도록 유지시켜나가겠다는 김 변호사는 형편이 좋지 못한 분들께는 무료로 변호해주는 등 인간미가 넘치는 변호사, 성실하고 유능한 변호사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음 한쪽을 고향에 두고 있다고 할 만큼 경주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김 변호사는 “경주처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도시도 드물다. 조상들의 문화유산이 경주에 집중되어 있고, 그것을 잘 관리하며 경주의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서울=이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