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가 지은 신당사가 있던 곳 ‘신당’ 수백년간 이어온 설총제사 3년째 안 지내   올해도 벼농사가 풍년이라고 했던가. 풍요와 넉넉함으로 맞이하는 한가위는 그 기쁨이 배가되기 마련이다. 신당은 천북 물천에서 솟아나 덕산과 동산을 거쳐 형산강으로 흘러드는 신당천과 함께 넓은 들판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왔다. 신당마을 앞 이조들녘의 금빛 일렁임에는 이미 풍년의 노래와 춤이 베어나고 있었으며, 신당천변 거랑바닥에는 갖가지 빛깔로 피어난 가냘픈 자태의 코스모스가 맑은 하늘을 더 높게 바라보고 있었다.   천북 신당은 용강동과 경계를 이룬 마을로 경주에서 국도 7호선을 따라 포항방면으로 가다가 용강동 지나자마자 펼쳐진 마을이다. 현재 제일자동차학원(구 영남자동차학원)이 있는 지점에서부터 하수종말처리장과 신라공고가 있는 곳까지가 신당2리인 ‘대밑마을’이고, 신당 안쪽의 ‘능골’에 들어선 희망촌이 신당3리에 해당한다. 신당1리는 본동에 해당하는 ‘신당(神堂)’과 ‘보떵지(보띠)’를 이른다. 부추 연간 2억4천만원   신당1리는 7번 국도에서 하수종말처리장을 지나 다리를 건너자마자 주유소 있는 쪽으로 우회전하여 고개를 넘어가면 된다. 또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천북방면으로 우회전하여 2km 정도 들어가다가 왼쪽 들판 건너편에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 좌회전하여 들어가도 된다.   이 마을은 벼농사를 주로하고 있고, 특산물로 부추를 생산하고 있다. 부추의 경우 4농가에서 1만6천여 평을 경작하여 연간 2억4천만 원의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전체 132가구(천북면사무소 157세대)에 남자 206명, 여자 185명으로 총 391명이 생활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고, 현재 입주한 업체만도 20개사가 넘는다고 한다. 마을곳곳에 탑재 등 사찰 흔적   신당(神堂)은 신라 무열왕 때 원효대사가 이곳에 신당사(神堂寺)라는 절을 지었다고 하는데, 거기에 연유하여 마을이름을 ‘신당’이라 하였다고 한다. 신라 때에는 많은 승려들이 이 절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한다. 비구가 거주하던 남쪽 마을을 남리(南里), 비구니가 거주하던 북쪽 마을을 북리(北里)라 불렀다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신당사 터조차도 알 길이 없고, 마을 가운데 언덕배기에 해당하는 당수만디를 중심으로 그 남쪽에는 신당천이 흐르고, 그 동쪽과 북쪽, 서쪽은 삥 둘러가며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다.   다만 마을 곳곳에 탑재를 비롯한 사찰에 쓰였을 법한 석재들이 널려있어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음을 짐작케 할 따름이다.   보떵지는 신당 동쪽 산기슭에 있는 마을로 현재 원효사와 민가, 공장이 들어서 있고, 최근 새집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물막이 보의 위에 있으므로 ‘보띠’, ‘보떵지’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설총의 비석과 제사   당목 및 동제 본래 당산 정상부에 오랜 소나무가 있었으나 고사하고 없고, 지금은 그 인근에 후계목을 당목으로 지정해 동제를 올린다. 이 소나무도 약 100년정도 되었다고 한다.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옛날 당산 정상부에는 설총의 비석이 있었다고 하며 최근까지도 그 비적이 이곳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약 10년 전 그 비적마저 잃어버리고 지금은 그 자리에 주민들이 블록을 쌓아 만들어 놓은 제단만 있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에 설총의 비가 있었으며, 이 일대 사방 10리가 설총의 땅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땅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 비를 어딘가에 묻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동제를 지낼 때에도 설총에 대한 제사를 먼저 올리고 나서 당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3년 전부터 설총에 대한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마을주민들은 수 백년이상 제를 지내오고 있지만 설씨 후손들이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고, 참석도 하지 않는다는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져 3년 전부터 설총에 대한 제사는 지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소가 엎드린 모양의 우복산   소미기내 천북면 물천리 용락마을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흘러 덕산리와 동산리를 거쳐, 서쪽으로 신당리를 감돌아 형산강에 이르는 내, ‘소항천(小項川)’, ‘신당천(神堂川)’이라고도 한다.   소미기 신당에서 신당천을 건너 동산으로 넘어가는 다리거리를 말한다. 덕산과 동산, 신당의 경계지점으로 이곳으로 산등성이들이 흘러내려 잘록하게 협곡을 이루고 있어, ‘소미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웃보 이조들의 위에 있는 보로, 상보(上洑)라고도 한다.   아랫보 이조들의 아래에 있는 보로, 하보(下洑)라고도 한다.   이반제(利盤堤) 일제강점기에 막은 신당 북쪽에 있는 못으로, ‘이반못’이라고도 한다.   이조보(伊助洑) ‘이시미보’라고도 하며, 신당 앞에 있는 봇도랑을 막은 보로 소미기에 있는 보를 말한다.   우복산(牛伏山) 신당마을을 남서쪽에서 감싸고 있는 산으로 마치 소가 엎드린 형국이라고 하여 ‘우복산’이라고 부른다. 신라공고 뒷산으로 봉우리 3개가 나란히 솟아 있다. 새마을 다리 신축을   천북으로 가는 길에서 이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에는 지난 70년대에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주민들이 부역을 통해 놓은 낡은 다리가 있다. 장비도 없이 거의 인력으로 공사를 했던 그 당시는 엄청난 대 역사였겠지만, 지금은 초라하고 공단으로 수시로 출입하는 큰 차들이 다니기에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다리가 낮아 비가 많이 오면 침수가 잦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 다리를 새로 건설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올해 99세의 최복란(화곡댁)할머니로 무엇이든 다 잘 자신다한다. 뜨개질을 하여 당신의 모자를 손수 만들어 쓸 정도로 건강하시다. 자식이 몇이냐고 물으니 “아들 서이(셋), 딸 서이(셋) 낳아 서이 남 주고, 서이 데려 왔다”며 이를 두고 질녀들이 ‘고모는 참 경우 바르다’고 한단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김진권(70·전 경주시청 국장), 손영창(66·전 천북면장), 김병훈(61·예비역 육군중령), 김호대(54·행정고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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