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냇가에 물먹는 형상-내면부-냄비 천년 넘은 느티나무 아직도 몸짱!   지극한 효성으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다는 효자 최포의 정효각이 있는 효자마을, 수령 천년이 넘는 큰 느티나무가 버티고 서 있는 곳, 8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내남초등학교, ‘냄비’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더 널리 알려진 부지1리.   경주에서 삼릉을 거쳐 경주교도소를 지나면 언양방면으로 새로 뚫린 국도 35호선을 만난다. 이 길을 따라 약 2km정도 가면 경덕왕릉 이정표가 있고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경부속도로 굴다리 지나면 냄비다. 경주시청에서 약 12km,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약 20분정도 소요된다.   경덕왕릉은 이 마을 서편 갈밭산기슭에 있다. 이곳 냄비를 거쳐 외말(부지2리)에서 올라가면 산 어귀까지 차가 들어간다.   냄비는 마을 북서쪽의 산 모양이 마치 오리가 앞에 흐르는 내(川)를 굽어보고 있는 형상이라, ‘내면부’, ‘천면부(川面鳧)’, ‘내면부락’, ‘내면’, ‘천면(川面)’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한 마을이 거랑을 마주하고 있으므로 ‘내면’, ‘천면(川面)’ 등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부지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마을을 통합하면서 내면부의 오리 부(鳧)자와 와지(臥旨)의 지(旨)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내남초등학교를 포함해 그 북쪽은 부지1리인 ‘냄비’이고, 남쪽은 부지2리인 ‘와지’이다. 경주최씨 관가정공파의 집성촌   냄비는 경주최씨 관가정공파의 집성촌으로 총 75가구 가운데 경주최씨가 45가구에 이른다. 200여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고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여천(麗川)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서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냄비는 동쪽으로 기린내를 사이에 두고 경주남산의 최고봉인 수리산 정상이 바라보이고, 서쪽에는 경덕왕릉이 있는 갈밭산과 갓뫼가 자리하고 있고, 갓뫼 어깨너머로 멀리 성부산 꼭대기가 보인다. 북으로는 오리형상을 하고 있다는 해지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남쪽에는 봉긋하게 홀로 솟아있는 젯당산이 자리하고 있다. 산간들치고는 꽤나 넓은 금점들이 마을 서편으로 산기슭까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야무지게 알곡 머금은 벼이삭들이 농부들의 손길을 기다리며 펼치는 황금빛 춤사위는 보는 이의 가슴마저 넉넉하게 한다. 금점들 안 골짜기에는 화곡저수지가 있고, 그 안쪽은 화곡리가 된다. 큰 저수지가 있어서 그런지 이 마을은 밭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벼농사 외에는 특별한 소득원이 없다고 한다. 급제했다는 소식에 눈 번쩍   당수나무 마을 가운데 있는 1,000여년 된 느티나무로 둘레가 약 5.5m, 높이가 20여m에 이른다. 1982년에 도 보호수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나무 등걸위에는 쥐똥나무가 자라고 있고, 아주 건강한 상태로 온전한 모습이다. 이 나무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5세손 공순공(恭順公) 제안(齊顔)이 심었다고 알려지고 있어 수령이 1,0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제는 본래 정월 보름날 지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정효각(旌孝閣) 효자 최포(崔包 1526~?)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중종 때 세웠으나 낡고 허물어져 1966년에 다시 지었다. 최치원의 15세손인 최포는 눈병에 걸려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시중을 극진히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원에 따라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돌아와 아버지가 "네가 급제했느냐?"하고 묻자 "예, 급제했습니다" 대답하자, 크게 감격한 부친이 갑자기 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영사정(永思亭) 조선 중종 때의 효자 경주인 우천(愚川) 최포(崔包)를 추모하여, 그의 후손들이 1924년에 세운 정자이다.     정면 6칸에 측면 2칸의 목조 팔작지붕으로 지은 이 정자는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놓고, 양쪽에 1칸씩의 방을 만들고, 다시 그 바깥은 누마루를 놓은 형식으로 지었다. 보기 드문 건축구조를 지닌 이 정자는 전체적으로 조형미가 빼어나고, 목재의 뒤틀림이나 균열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지어졌다. 사용된 나무들을 철저히 엄선하고 구워서 지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문화재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화계서당(化溪書堂) 조선 영조 때 진사 화계 유의건(柳宜建)이 영조 11년(1735년)에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서당으로 오래되어 허물어진 것을 그의 7세손 인선(寅鮮)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화곡저수지 아래 지중산(芝重山) 기슭에 자리한 화계서당은 맞배지붕에 앞면 4칸, 측면 2칸의 목조건물로 골기와 지붕이 낡고 허물어져 시멘트로 발라 놓았다. 본래 ㄱ자 건물이었는데 보수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줄였다고 한다.   부지리 절터 금점들 한가운데에 있는 고인돌 부근 일대의 옛 절터로 지금은 논으로 변하여 그 흔적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이곳에 있던 돌우물의 개석(蓋石)을 마을 당수나무 아래로 옮겨 두었는데 10여년전에 이것마저 도난당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이 절터가 ‘모지사’ 터라고 믿고 있다. 삼국유사의 ‘경덕왕이 죽자 모지사 서쪽 언덕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에 근거해서다. 그러나 경덕왕릉도 모지사도 아직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80년 전통의 명문 내남초등학교   지석묘(支石墓) 금점들 가운데에는 지석묘로 알려진 바위 2기(基)가 나란히 서 있다. 논둑을 사이에 두고 한 기는 제 모습을 거의 다 드러내고 있고, 한 기는 묻힌 채 일부만 드러나 있다.   갓뫼[관산(冠山)] 큰각단 서쪽에 있는 산으로, 마치 갓처럼 생겨 ‘갓뫼’라고 부르며 ‘관산’이라고도 한다.   금점들(金店) 일제 때에 금을 캐었던 들로, 큰각단 서쪽에 있다. 최근까지도 사금이 난다고 한다.   숫메산 젯당산 동쪽에 있는 산으로, 시산(匙山)이라고도 한다.   젯당산 경덕왕릉의 동쪽에 있는 산으로, 제당이 있었다고 하며, 혹은 저산(箸山)이라고도 한다.   호숫골 갈밭산과 갓뫼 사이에 있는 골짜기   내남초등학교 1927년에 4년제 2학급의 내남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1930년에 제1회 졸업생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제77회 5천516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내남초등학교(교장 이정옥 60)는 8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있는 학교이다. 현재는 박달, 노월, 명계, 광석 등 폐교된 인근지역 학교들을 병합하여 초등 8학급 209명, 유치원 1학급 15명 등 내남 일대 어린이들의 배움의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효자마을 어른공경 여전히   냄비는 예전부터 내남면의 중심지역으로 내남면사무소가 처음에는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용장을 거쳐 이조로 옮겨갔다.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서 마을로 들어서면서 정면에 보이는 곳이 옛날 면사무소 자리다.   이 마을은 꽤 부자 마을이다. 동답이 600여평, 대형창고 2개, 마을 공동정미소까지 마을 자산이 엄청 많다. 특히 정미소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설립한 것으로 마을회관 옆 100여평의 부지에 건립하였으며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요즘은 벼를 수매하기 때문에 정미소가 별로 소용이 없지만 옛날에는 농사 50마지기보다 더 소득이 높았다고 한다.   이 마을의 천면경로당은 회장님의 탁월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회원 60여명이 화합하고 늘 공부하는 모범 경로당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한기에는 경로당에서 점심을 해서 모두 같이 먹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단결이 더 잘 될 수밖에.... 정미소에서 주민들이 방아 찧으면 쌀을 1,2말씩 경로당에 가져다주어 이듬해 봄까지 노인들이 점심을 해 먹고도 남는다고 한다.  2005년 경상북도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냄비는 예로부터 효자마을로 알려져 왔으며 지금도 젊은 청년들의 마을어른 섬기기가 남다르다. 청년회원들이 해마다 4월 둘째 주 일요일에 경로잔치를 열어 마을어른들을 대접한다. 출향인들이 참여하는 청년회원은 70여명에 이른다. 부지-화곡간 도로 확포장해야   부지에서 화곡으로 가는 마을간 연결도로가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흙길이라 이용하는 차량들이 자주 논에 빠진다고 한다. 특히 울산, 대구 등지에서 화곡저수지로 낚시하러 오는 외지 차량들이 많은데 이들이 논에 자주 빠지는 바람에 농작물 피해도 크고, 통행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이 마을 주민들의 주요 농로로도 이용되는 이 도로의 확포장을 바라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올해 아흔한살의 오경연(안곡댁)할머니로 경로당에 늘 놀러 나오실 정도로 아직 건강하시다.   이 마을출신으로는 최병환(77·전 구룡포초등학교 교장), 최창록(72·전 대구대 사범대학장), 최일주(71·전 부산진구 부구청장), 최응봉(57·전 하나은행 지점장), 최창윤(56·서라벌초등학교 교장), 최혁(55·법무사), 최재영(51·경주대 대학원장), 최진영(51·서울 공인회계사), 양우철(43·경찰대학 교수), 최주익(43·울산 세무사) 등이 있다.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마을 안내를 자상하게 해주신 최해춘 노인회장님과 최두찬 이장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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