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해일속(滄海一粟)
창해일속이란 말의 뜻은 “넓고 깊은 푸른 바다에 좁쌀 한 톨이라”함이니, 우주 가운데 인간의 존재가 지극히 미약하여 보잘 것 없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
중국 북쪽 송(宋)나라의 소동파(蘇東坡, 1036~1101, 본명:소식)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산문과 시에 뛰어났다. 그는 약관 22세 때 진사에 급제했다. 당시(唐詩)가 서정적인데 대하여 그의 문학은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새로운 시경을 개척했다. 그가 지은 천하의 명문 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애창되고 있다. 적벽부는 소동파가 황주(黃州)로 귀향갔을 때 지은 것으로 신선(神仙)에 기탁하여 말하고 있다.
전편에서는 바람과 달이 있어 즐거우므로 신선을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후편에서는 강산의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 또다시 신선을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천성이 자유인이었던 소동파는 기질적으로 왕안석(王安石)의 신법(神法)을 싫어하였으며 “독서가 만 권에 달해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고 하여 이 일에 재앙을 불러 사상초유의 필화사건으로 귀향살이를 하게 되었다. 소동파는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적벽으로 가서 유람을 하고 있었다. 마침 칠월 보름이라 날씨도 쾌청하고 물결도 잔잔했다. 교교한 달빛이 일렁거리는 물결에 비치는 모습은 선경(仙境)과 다를 바 없었다. 여기에 성찬을 차리고 시를 읊었다. 문득, 소동파는 조조(조맹덕)와 주유(주랑)가 한판 승부를 벌였던 적벽지전(赤壁之戰)이 떠올랐다.
“달이 밝고 별이 드문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은 조조의 시가 아닌가? 진실로 한때는 한 세상의 영웅이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와 그대는 강을 사이에 두고 고기 잡고 나무하면서 물고기와 새우들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들과 벗하고 있었다.
작은 배를 타고 강 아래위로 유람하면서 풍류를 즐기고 있으나 우리의 인생은 천지간에 기생하는 하루살이처럼 짧고, 우리의 몸은 푸른 바닷속에 있는 좁쌀 한 알과 같구나. 우리의 삶은 생로병사에 시달리다 가는 것이 너무 짧구나! 어찌 장강(양자강)처럼 다함이 없는가! 너무나 허무하고 보잘 것 없구나.”
적벽부 전편에서 ‘창해일속’이란 말이 나왔다. 여기에 일속(一粟)은 소동파 자신의 학식이나 덕망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겸손도 이 말 속에 숨겨져 있고, 인생의 무상함이그 이면에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1802년 7월에 지은 것을 전(前)적벽부라 하고 그 해 10월에 지은 것을 후(後)적벽부라 한다. 부(賦)란 운문의 하나인 문체의 명칭이다. 사물의 서술을 중심으로 한대(漢代)의 장려한 작품에서 당대(當代)의 형식적인 소형 작품으로 쇠퇴해있던 부(賦)의 장르를 생동감 있는 묘사로 서정과 사상을 겸비한 문장으로 부활, 완성시킨 작품이다.
옛 싸움터 적벽의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의 대비(對比)에다가 자연과 일체화하려는 소동파의 제물(齊物)의 철학이 결부되어, 유려한 표현과 함께 문학의 높은 경지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