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도 경주에서 `유적과 사적지`란 말을 제외하곤 더 이상 떠올릴 수 있는 단어는 없다. 국내 모든 사람들이 경주를 상상하는 순간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첨성대, 석굴암, 안압지 등을 떠올리곤 한다.
그만큼 경주는 온통 신라 천년의 각종 유산과 불교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우리에게 문화재의 의미는 남 다르다. 고속철도 경주경유여부로 논란을 빚었던 것도, 경주경마장 불발도 역시 경주가 유적도시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경주에 현존하는 석조 유물들이 인근 울산과 포항 등지의 공해와 산성비로 인해 서서히 눈에 띄지 않게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산재한 석조 유물만도 석가탑과 다보탑 등 국보급 문화재가 15점에다 보물 37점 등 모두 1백10여점에 달한다. 여기다 노천 박물관으로 불리는 경주 남산에도 13점의 보물과 86기의 불상, 70기에 달하는 석탑이 산재해 있다. 이 모두가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공업화 시대에 조성된 포항과 울산의 공단, 여기다 경주도 자동차부품 회사 등 중공업 산업이 들어서면서 이처럼 화학적 변질에 따른 문화재 훼손 가능성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한번 파괴되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문화재다.
그나마 최근 경주환경운동연합이 세미나를 열고 이같은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접근한 것은 비록 늦었지만 다행이다.
경주에는 국립경주박물관과 문화재연구소 등 문화재 관련 2개소의 정부기관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매장문화재 발굴과 왕경도시 복구 등 눈에 띄는 작업외 이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번 세미나로 인해 앞으로 문화계 인사들은 경주지역 각종 문화재에 대한 보존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일은 정부와 문화계가 앞장서 지속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이 지역 산업화 정책을 수정해서라도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
경주경실련이 고도보존특별법 제정을 앞장서 추진중인 사실은 그런 의미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연도별 예산이 수립돼 서서히 숨을 죽여가는 경주의 찬란한 석조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고도보존특별법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시민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정부는 이제라도 문화재보호법이 경주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데다 시민과 문화재를 함께 죽이는 악법이라는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