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 드라마 `태조 왕건`중 백제 견훤왕의 군사들이 경애왕을 붙잡기 위해 포석정(사적 1호)에 들이닥친 장면이 지난달 13일 방영되자 최근 경주시민들이 "문화재를 이렇게 훼손해도 되느냐"며 항의하고 있다. 포석정은 현재 돌담으로 둘러쌓여 있고 내부 호석(護石)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금지돼 있다. 문화재 훼손을 우려해서다. 그런데도 지난 9월13일 방영된 드라마에서는 견훤왕의 군사들이 연회중인 경애왕을 잡기 위해 포석정위를 짓밟고 지나가고 더욱이 그 위에서 칼을 휘두르는 모습까지 방송됐다. 술자리가 난장판이 되고 양 군사들의 충돌 장면을 찍기 위해 포석정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같은 장면은 NG를 거듭하면서 수차례 반복됐지만 정작 문화재 관계자나 경주시측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앞서 사흘전인 9월 10일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각 방송사가 고궁 등 사적지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문화재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지만 결국 방송사는 이를 외면했다. 경북도가 이 드라마 촬영을 허가하면서 사전 문화재 훼손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통보했지만 KBS측은 이마저도 무시한 채 촬영을 강행했다. KBS측은 경주시가 담당 공무원을 보내 현장에서 촬영을 감시했고 당시 이 관계자가 포석정에 올라가 촬영해도 좋다고 허가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이 국보급 문화재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현장 훼손을 예상치 못했다는 사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시 공무원의 안이한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경우는 현재 공사중인 경주박물관 수장고 공사현장과 황룡사지 발굴현장, 지난날 박물관장 사택 신축공사 현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현상 가운데 일부라는 자조섞인 여론도 일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의 경우 통로로 건축됐지만 이후 석조유물 보호를 위해 통행이 제한됐다"고 밝히고 포석정의 경우도 이런 이유에서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면 타종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9년간 타종을 미뤄왔던 에밀레종이 지난 9일 박물관측의 신중한 검토끝에 다시 타종된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이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 타종을 이처럼 오랜기간 숙고끝에 조심스럽게 다시 타종한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드라마 촬영이 경주를 알리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훼손된 문화재는 두번 다시 복구가 어렵다는 소중한 진리를 관계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경주에는 이같은 역사 드라마를 촬영할 수 있는 수많은 장소와 조건들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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