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잔디가 융단처럼 깔린 골목길을 따라 들어선 마당에는 안주인의 성품이 오롯이 담긴 풍경이 찾는 이를 반겨 주었다. 밟기조차 미안하도록 잡초하나 없는 푸른 마당은 동갑내기 내외의 부지런함과 섬세함이 느껴졌다.
올해 일흔다섯인 두 내외의 양지바른 채마밭에는 대처로 나간 자식들의 소박한 밥상을 위해 남새들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고향의 포근함과 따뜻한 정을 나누고 싶어서 하루하루를 부지런하게 살면서도 아내 최해선(75)씨는 예순셋이 되던 해 주위의 권유로 붓을 들었고, 남편 이종옥씨는 2년여전에 아내의 채근에 붓을 들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육이오 동란을 겪은 역사의 산 증인으로 살아왔고, 5남1녀의 어머니로 교사의 아내로 살면서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여유같은 것은 없었다고 했다.
한꺼번에 세 아이들이 대학에 다니게 되었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 했을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고. 어떻게 감당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으로 남는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힘들게 자녀를 키웠지만 큰 아들은 대구시 부교육감으로 재직중인 이걸우씨이고, 둘째 아들은 서울에서 사업을, 셋째와 넷째 아들은 학교에서 교사로, 다섯째 아들은 학원을 운영하며 자신의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입가에 뿌듯한 웃음이 피어났다..
이웃사람들도 모르게 조용히 오가며 배운 서예는 우연 한종환 선생님의 열정적인 지도로 열심히 하다 보니 제18회 신라미술대전 한글부문에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그 후 22개의 전국규모 공모전에서 상을 획득하였다.
2008년 그간의 노고와 인내로 제28회 신라미술 초대작가에 이르렀고, 제16회 포항시 서예대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붓을 놓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녀는 일흔다섯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곱고 여성스러웠다
나이가 많아 활동하기가 부끄럽다 부끄럽다 하시는 모습에서 따뜻하고 겸손한 이웃의 어머니를 느낄 수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편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9년전 39년간의 교직 생활에서 퇴임을 하고 구정동 고향집에 터전을 마련한 지금 왼쪽 방에서는 아내가 붓으로 한글을 쓰고, 오른쪽 방에서는 남편이 붓으로 한문을 쓰고 계신다. 남편은 아내가 좀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고, 아내는 남편이 늦게 시작했지만 실력은 자신보다 더 좋다며 추켜 세우셨다.
동시대를 거슬러 함께 해 오신 부부가 늦게나마 한 곳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석양보다 더 눈부시다.
곳곳에 걸린 서예 작품들은 푸른마당과 더불어 내외분과 잘 어울렸다. 잡념도 없애고 마음이 맑아지는 좋은 점 때문에 매일 붓을 들게 된다는 석화 최해선씨의 손끝에서 황혼에 영그는 결실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