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평생학습가족관은 지난 7일 2019년 경주시 평생학습대학 졸업식을 개최했다. 평생학습대학은 시민들에게 평생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개인의 자아실현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난 5월 7일 개설해 1년 과정으로 진행됐다. 올해는 평생배움반과 행복나눔반 등 2개반으로 편성해 역사·문화, 경제·금융, 건강·여가, 인문·교양, 생활정보 등 다양한 내용으로 매주 한 차례 2시간씩 운영됐다.
경주시는 내년 5월까지 미세먼지 3대 핵심현장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한다.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시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대기오염물질 배출사업장, 건설공사장 비산먼지, 불법 소각 등을 대상으로 점검한다. 특별점검을 통해 고농도 미세먼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겨울철과 봄철 미세먼지 다량배출 현장을 촘촘하게 점검·감시해 불법행위로 인한 미세먼지 발생을 사전 차단함으로써 시민건강 피해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경주시농업기술센터는 농촌진흥청 및 교통안전공단과 함께 농기계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농촌지역 교통안전 지원 사업을 지난 5일, 7일 양일간 진행했다. 5일 건천읍 화천리 뒤뜰마을에서 107가구 209명의 농가, 7일에는 산내면 일부리 심천마을에서 114가구 196명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실시했다. 이번 지원 사업은 농촌지역 고령화에 따른 운전미숙, 부주의 등으로 인한 지속적인 농기계 교통사고를 예방하고자 마련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7일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2019년도 행복더함 희망나래 차량 전달식을 진행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과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및 지역아동센터 관계자와 아동·청소년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에서 한수원은 승합차 85대를 전국 지역아동센터에 전달했다. 한수원의 행복더함 희망나래 사업은 전국 지역아동센터 학습환경 및 인프라 개선을 목적으로 통학용 승합차 제공, 맞춤형 도서관 설치, 문화체험 시행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전국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에게 보다 나은 배움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8년째 시행 중이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사장 차성수)은 생활방사선에 대한 이해 증진과 불안감 해소를 위해 중저준위방폐장 주변지역 4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생활방사선 측정 서비스를 실시했다. 측정 결과 방폐장 주변지역 생활방사선량은 일반적인 자연방사선량 수준으로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단은 지난달 30일부터 11월 7일까지 방폐장 주변지역 4개 초등학교를 방문해 자체 보유한 방사선 측정 장비를 활용, 학교 건물 내·외부 공간에 대한 생활 방사선량을 측정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사격부 남태윤 선수가 지난 5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14회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에서 공기소총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공기소총 단체전에 출전한 남태윤(스포츠과학 3) 선수는 628.9점으로 3명이 참가한 대표팀 선수 중 최고 기록을 세우며 중국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남태윤 선수는 개인전 본선 2위로 결선에 진출했지만 아쉽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남태윤 선수는 지난 9월에 열린 제52회 창원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 실업팀 선수들과 치열한 선발전을 걸쳐 대학 선수로 유일하게 남자공기소총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한 바 있으며 2019년 나폴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은메달 획득하는 등 국내 남자 공기소총 종목 최고 선수로 손꼽히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사장 정재훈)이 원전본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한수원의 사업을 보다 투명하고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운영 중인 국민신청실명제를 확대, ‘지역참여형 국민신청실명제’를 시행한다. 국민신청실명제는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사업 중 국민이 원하는 사업에 대해 사업 내용과 사업담당자의 실명을 공개하는 제도다.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가 11월 중순까지 ‘내가 발견한 매력적인 경북여행’, ‘사랑에 빠지는 경북여행’을 주제로 영상·사진 공모전을 진행한다. 경북의 관광홍보 강화 및 경북여행 이미지 제고를 위한 이번 공모전은 경북여행을 사랑하는 누구나 참가 가능하다. 경북여행을 테마로 모든 소재, 장르에 제한 없이 다양..
사회복지법인 예티쉼터 ‘예티주간보호센터’(경주시 용강동 소재)가 지난달 31일 경상북도의회 최병준, 배진석의원, 경주시의회 임활, 이락우 의원, 김석기국회의원 사무실, 경주시사회복지협의회 송미호 회장, 경주시장애인단체협의회 김헌덕 회장, 경주중앙로타리클럽, 유관 기관단체장 및 이용인, 보호자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소식을 가졌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경주부사선생안’이 보물 제2038호로 지정됐다. ‘경주부사선생안’은 고려 충렬왕 7년(1281)부터 1910까지 630년간 경북 경주에 부임한 호장을 지낸 명단을 적은 기록물이다. 1523년 경주부 호장 김다경이 편찬한 구안과 1741년 이정신 등이 작성한 신안으로 구성된다. 호장은 향리를 도와 행정 실무를 총괄한 지역 유지를 말한다. 구안은 고려시대 선생안 내용이 반영된 현존 최고 선생안이며 1281년 호장 김성비부터 1713년에 임명된 최준위까지 경주부 관리를 기재했다. 신안은 1628년 경주부에 온 이인부터 1910년 호장을 지낸 최병교까지 명단이 정리돼 있다. 선생안에는 호장마다 직함과 성명 아래에 작은 글씨로 4대조 성명, 관인을 받은 날짜, 대궐에 숙배한 사실, 관복하사와 관련된 기록 등이 부기돼 경주부의 행정, 인사, 인물사 연구에 더없이 귀중한 자료다. 게다가 지질, 규격, 장황, 수록내용의 수준도 중앙에서 파견된 관찰사의 명단이 ‘경상도영주제명기’와 비견될 정도로 손색이 없다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경주부사선생안’의 국가지정을 위한 과정에서 2차에 걸쳐 재조사 및 추가조사를 했다. 1차로 추가된 문화재는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의 ‘경상도영주제명기(당하제명기)’와 ‘호장선생안(부사선생안):구안’ ‘호장선생안(부사선생안):신안’ 등 3책과 경주시립도서관 소장의 ‘도선생안’ ‘부사선생안’ ‘호장선생안’ ‘상조문선생안’ ‘강무당선생안’의 5책 등 도합 9책이다. 제2차로 추가 조사된 문화재는 상주향교 소장의 ‘경상도영주제명기(도선생안)’ 1책이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도서관 소장의 ‘경상도영주제명기’ ‘부사선생안’ ‘호장선생안’ 의 3책에 대한 추가 조사의 필요성도 대두됐으나 경주시립도서관 소장본과 대동소이해 경주시립도서관 소장본의 조사로 대체됐다. 경주시립도서관 소장본은 지난 2003년 경주문화연구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조철제 선생에 의해 완역돼 학계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경주시립도서관 소장 ‘경주부사선생안’을 1971년에 발간된 경주시지 편찬 당시에도 참고가 됐을 만큼 경주지역 지방사는 물론 고려와 조선왕조의 지방통치 실상을 엿보게 하는 귀중한 자료였지만 보관 중 책이 빗물에 젖어 심하게 훼손돼 폐지로 버려질 위기에서 전 경주향교 故 임운식 전교에 의해 다시 발견됐다. 당시 임 전교는 빗물에 젖어 심하게 훼손된 ‘경주부사선생안’ 5책을 사이사이 신문지를 끼워가며 더 심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두 팔을 걷고 나섰다. 경주시립도서관 소장 ‘경주부사선생안’은 1859년 무렵에 전호장 손영모와 전호장 최영원을 비롯한 김택주·최영한·손면부·최영석·손치부·최영희·손양복·최영관·최재근·이상노 등이 경주의 ‘경상도영주제명기’ ‘부사선생안’ ‘호장선생안’ ‘상조문선생안’ ‘강무당선생안’ 등 각종 선생안들이 잘 수호되고 영원히 전해질 것을 염원하며 구안들을 그대로 전사한 뒤 별도의 신안을 작성해 기림사의 감실에 봉안할 때 함께 전사된 전사본이다. 후대에 전사된 판본인 만큼 원자료의 성격이 배제된 상태며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경주부사선생안(구안)은 원본에 가까운 자료라는 점과 ’경주부사선생안(신안)은 구안을 보완할 수 있는 연속되는 누가·수록본이라는 점에서 2종 모두 ‘경주부사선생안’이라는 명칭으로 보물 제2038호로 지정됐다. 역대 관리명단으로 보물 가치를 인정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수원(주) 월성원자력본부는 최근 노인장기요양시설 경주 민제의집에 생활하는 어르신들에게 효도관광을 제공하기 위해 언양 자수정동굴 및 보문단지 일대 관광 나들이를 지원했다. <사진> 이번 효도관광은 원내 생활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무료함을 덜어 주고 일상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기 위해 실시됐다. 어르신들은 언양 자수정동굴나라 내부를 둘러보고 서커스공연을 관람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또 경주보문관광단지에서 단풍이 곱게 물든 풍경을 보며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돌아 왔다. 어르신들은 “자수정동굴 안이 너무 넓고 자수정 빛도 너무 아름답다”면서 “좋은 추억을 남기게 해준 월성원자력본부 관계자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문화재청 승인을 받아 추진해온 동궁과 월지 복원, 정비 사업이 중단됐다. 사업 중단은 ‘세계유산협약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에 어긋난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의견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세계유산운영지침 제86조는 ‘복원은 완전하고 상세한 기록에 근거할 때만 수용될 수 있으며, 절대 추측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계유산운영지침을 준수할 경우 완전한 기록이 없는 탓에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과 정비 사업 실현은 불가능한 일이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 정비 사업 대상의 대부분은 2000년 등재된 경주역사지구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경주역사문화도시조성 사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과 정비 사업은 제18대 대통령 선거 지역공약 실행으로 가시화됐다. 2013년 10월 21일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이듬해 5월 ‘신라왕경사업추진단’출범으로 사업이 이행되는 듯했다. 사업추진단이 발족되면서 동궁과 월지를 포함한 신라왕경 복원, 정비 사업에 기대가 높았지만 세계유산운영지침에 의해 제동이 걸린 것이다. 최근에는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던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안’조차 국회 법사위에서 발목이 잡혀 지속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마련도 불확실해진 상태다. 지역발전 대안으로 주민들이 염원했던 문화유산 복원과 정비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경주는 최초로 삼국을 통일해 한국문화 원류를 이룬 신라 왕도였지만 지역주민들은 왕도를 상징하는 궁궐하나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런 까닭으로 신라왕경 사업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이다. 심지어 문화유산 복원과 정비에 대한 열망은 방폐장 유치 지원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조차 수용하는 계기가 됐다. 지역경제 상황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라 왕도에 대한 자긍심과 염원이 방폐장 유치 지원 사업으로 문화유산 복원과 정비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신라왕경 사업에 적지 않은 시간과 예산이 소진된 상태에서 동궁과 월성 복원, 정비 사업이 중단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신라왕경 법안 통과가 어렵다는 소식이 지역주민들에게 또다시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혐오시설까지 유치한 대가로 정부가 약속한 문화유산 복원과 정비 사업의 실현이 지지부진한 원인과 이유를 꼼꼼하게 따져볼 일이다. 그중에 세계유산운영지침 제86조가 정말로 동궁과 월지의 복원과 정비를 중단시킬 수 있는 근거인지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세계유산운영지침 제86조 앞부분에는 ‘진정성과 관련해 고고학적 유구나 역사적 건물 또는 지구의 복원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라고 기술돼있다. 또한 완전성 및 진정성에 대해 제81조 ‘문화유산에 속한 가치에 대한 판단은 문화마다 다를 수 있으며 모든 문화를 존중하려면 문화유산을 주로 그것이 속한 문화적 맥락에서 고려하고 판단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동궁과 월지의 복원과 정비를 중단시킨 근거가 과연 세계유산운영지침에서 언급한 ‘예외적 상황’과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의미도 반영된 것인가를 탐색하고 논의해 봐야한다. 세계유산운영지침에서 언급하고 있는 완전성 및 진정성, 보호와 관리에 대한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공론화하여 복원과 정비를 위한 대응 논리를 찾아야한다. 세계유산운영지침에 의해 복원과 정비를 중단했다면 세계유산 등재 이전에 월지에서 출토된 건축부재를 근거로 재현한 동궁과 월지의 3동 건물은 완전성, 진정성에 대한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논리적 모순을 보여주는 조치다. 아울러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 복원하거나 재현한 중국의 대명궁(大明宮)과 일본의 평성궁(平城宮) 사례를 면밀하게 조사해 동궁과 월지 복원, 정비 사업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한다. 세계유산운영지침을 근거로 동궁과 월지 복원, 정비 사업을 중단했다고 하니, 운영지침을 면밀히 검토해 복원과 정비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해야한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 복원과 재현한 사례와 세계유산운영지침을 분석해 중단된 동궁과 월지 복원, 정비 사업이 진행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문화관련 세미나나 심포지엄 등에서 ‘모든 공급자는 먼저 수요자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라는 문안이 화두인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퇴색되고 거의 없어지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유효한 ‘손님은 왕이다!’가 가장 대표적인 행동사례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경주사람들은 공급자의 입장에서 수요자를 얼마나 배려하고 만나고 있는가? 혹시 구호에만 그치고 있지는 않는가? 우선 지금의 경주를 현존하는 최고의 경영 사상가이자 작가인 짐 콜린스의 ‘위대한 기업의 몰락 5가지’로 대입해서 냉정하게 들여다보기로 한다. 필자는 그중 1단계인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를 지금 경주의 단계로 조심스럽게 진단하고 싶다. 해서 ‘지금의 위기를 혹여나 오만해서 부정한다면 그야말로 헤어날 수 없는 처참한 몰락이 기다릴 것이다’라는 나름의 우려를 해본다. 이해를 돕기 위해 경주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한 제인 오스틴 소설의 ‘오만과 편견’이라는 제목을 잠시 차용하기로 하고. 물론 책의 내용과 과정 등은 전혀 무관하다. 단지 제목에서 주는 느낌이 너무나 경주를 닮아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한다. ‘편견’과 ‘오만’은 공급자인 경주와 경주를 찾는 모든 사람, 즉 수요자에게 함께 해당 된다. 수요자의 입장에서 경주라는 도시는 조경이 잘 조성된 정원이 넓은, 큰, 경관 좋은 곳이란다. 아프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미 봤고, 새삼 볼 것도 없고, 먹을 것도 그렇고, 즐길 것도 없는 곳이라는 ‘편견’의 결정체다. 그런가하면 대한민국 전체가 ‘여기로 오세요!’를 외쳐대며 빌릴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나 환경, 심지어 채소·가축에 이르기까지 무기 삼아서 호객 행위를 해댄다. 기상천외한 방법과 행위를 총동원하여 관과 민이 합심해 조금의 경제적 이득이 생긴다면 할 수 있는 서비스는 다하고 있는 작금을 만난다. 그러기에 수많은 수요자는 ‘오만’이 가지는 자긍심보다는 ‘교만’에 가까운 모습을 연출하곤 한다. 과장하면 그 옛날 ‘손님은 왕이십니다!’라고 목 놓아 외쳐대던 시절의 ‘왕’이고자 하는 정서에 까지 이른다. 더 보태어 인터넷을 주무기로 공급자를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궁지로 몰아놓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많은 우리 경주시민은 아직도 ‘신라천년고도 경주’를 외치며 ‘가만 놔 나라! 지들이 여 말고 어디 갈 데 있겠노? 결국은 여 오게 돼있다! 걱정하지 마라!’에 빠져있다. 그야말로 ‘여 말고···’라는 편견과 ‘어디 갈 데 있겠노? 결국은 여 오게 돼있다’라는 오만이 팽배해져 있다는 얘기다. 시대가 변했다. 대한민국 전체가 뛰고 있고 전 세계가 관광산업을 최고의 산업으로 여기고 국력을 집중하는 시대이다. 그야말로 전 세계는 관광 전쟁터로 변했고 어느 국가 어느 도시도 물러설 수없는 초긴장의 장이 펼쳐져 있다. 다시 짚어보자. ‘왕이신 손님’을 위해 경주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제야 말로 오직 무기가 ‘신라천년고도’인 우리의 경주는 열일을 제치고 새롭게 무장하고 집중해서 세일즈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눈을 돌려 세계로 향해 관과 민이 머리를 맞대고 눈에 불을 켜야 할 때다. 정치나 행정은 안성맞춤형의 글로벌 한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고 시민들은 교육과 계몽을 통해 글로벌한 마인드로 무장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전에도 정책과 교육, 계몽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주는 여느 다른 도시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 다름이 무기이고 다름의 극대화가 곧 경쟁력일 것이다. 그리고 다름의 극대화가 곧 정책일 것이다. 정책을 위한 정책이 아닌 정확한 실질적인 정책이 절실한 시대라는 것이다. 감히 경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새겨본다. ‘이 위기를 오만해서 부정한다면 그야말로 헤어날 수 없는 처참한 몰락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인데···’늘 그렇듯 몇몇 행정가, 공무원과 특정인 교수, 몇몇이 만든 정책으로 전문가의 견해를 무시하고 행정가, 공무원이 결정해서 최상의 안(案) 인양 발표하고 시행하는 착오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절대로 행정이 현실을 주도하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할 것이다. 공급자의 입장이 아닌 수요자의 입장으로, 특정 국가가 아닌 전 세계인을 향해 우리를 팔아야 할 때다. 그러기위해선 볼 것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또 즐길 것도 경주만의 것으로 차별화해서 국내외의 어떤 도시도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내국인을 넘어서 전 세계인의 오감을 만족 시키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론니 플래닛(Lonely Planet)이 추천하는 해외여행지 순위 10에 들어가는 경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분명 변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변해야 경주가 변하고 경주가 변해야 우리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경주시가 경북도 3대 문화권 사업 중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사업으로 추진돼 지난해 10월 24일 개원한 화랑마을이 1년 만에 자리매김 했다고 자평을 했다. 경주시 석장동에 들어선 화랑마을은 화랑정신과 문화, 가치를 구현하는 전시관, 교육관, 명상관 등 메인시설과 화랑무예체험장, 자연학습장, 국궁장, 야영장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대형 교육관과 숙박시설 등도 갖추고 있어 연수교육시설로도 활용도가 높은 곳이다. 특히 최근에는 각종 교육, 학술행사 등도 잇따라 열릴 만큼 이용이 다양화되고 있는 추세다. 화랑마을은 글로벌 신화랑 육성과 민족정신 및 화랑문화의 세계화, 문화·관광산업의 활성화라는 건립목적에 따라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바라봄(도의상마), 어울림(가악상열), 나아감(산수유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특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해 차별성이 돋보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또 신라의 관리 선발제도를 화랑마을의 특화 프로그램으로 구성한 독서삼품과는 이용자들이 신라와 화랑도에 대한 역사를 배우고 퀴즈를 통해 재밌는 게임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경주시는 화랑마을 개관 당시 지역사회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았다는 점을 항상 주지해야 한다고 본다. 첫 삽을 뜬지 5년 만에 완공돼 기반시설에 대한 활용도가 높지 않다는 지적도 받았다. 또 화랑마을이 청소년시설로서 영리 목적이나 복지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논리지만 적자운영이 계속된다면 애물덩어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특히 외지 이용자들이 화랑마을만 이용하고 밀물처럼 빠져나간다면 화랑마을이 오히려 지역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화랑마을 측도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난 1년 동안 지역 숙박업소와 상생을 위해 수련활동이나 대관 등을 이용하지 않는 일반 수학여행이나 단순 숙박일 경우 인근 불국사 또는 보문 숙박단지 등으로 안내하고 있으며 대학 등 교육기관과 청소년 관련기관 등과 업무협약을 통해 화랑마을의 활용과 역할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화랑마을은 자체의 운영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역할을 할 때 존재가치가 상승한다는 점을 경주시는 항상 주지해야 한다. 화랑마을이 운영 1년이 지난 만큼 그동안 성과가 과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주었는지 면밀히 살펴볼 때라 사료된다.
경주시가 내년 5월 15일까지를 산불방지 중점기간으로 정하고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시는 산불 발생 제로화를 위한 산불방지종합대책도 수립했으며 산불방지대책본부를 중심으로 소중한 산림자원을 보호하고 산불발생 및 피해 최소화를 위해 본청 및 20개 읍·면·동행정복지센터에 산불방지대책본부를 설치했다. 그리고 산불감시원 251명과 산불무인감시카메라 10개소를 활용해 산불예방 및 감시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 산불 진화차량 8대를 취약지역에 배치하고 산불진화용 헬기와 전문진화대를 신속히 투입해 산불발생 시 초동진화 태세를 갖추는 한편 유관기관과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지역에서 산불방지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은 매번 경주에서 발생했던 산불이 항상 경주의 소중한 자연문화유산에 큰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경주지역은 국립공원지역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과거 대형 산불이 난 곳도 대부분 국립공원지역이었다. 22년 전에 났던 경주남산 산불은 아직도 흔적이 남았다. 10년 전에 난 국립공원 선도산 산불과 소금강산 산불은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경주는 국립공원지역이 많을 뿐만 아니라 농촌지역도 많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항상 산불위험에 노출돼 있는 곳이다. 또한 각 지역마다 오래된 목조문화재가 많은 곳이다. 국립공원 남산을 비롯한 국립공원지역에 경주의 아름다운 자연문화유산을 보기 위해 등산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봄철에는 넘쳐나는 등산객뿐만 아니라 농촌에서는 각종 농산폐기물 소각행위를 많이 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동안 지역 각 기관단체들이 경주의 경주의 자연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휴일마다 산불예방 캠페인을 벌이는 등 적잖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경주에서의 산불은 큰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산불방지는 관계기관의 노력과 시민의식, 입산자들의 반불방지 인식이 함께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산불예방요원을 배치하더라도 소중한 자연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다면 언제든지 산불이 발생할 수 있다. 산불방지는 철저한 감시활동과 꾸준한 예방홍보가 가장 중요하다. 시민들도 산불은 예방만이 최선의 길이란 점을 직시하고 우리지역 소중한 자연문화유산을 지키는데 함께 하길 바란다.
어제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밤잠을 설쳤다. 밤새 뒤척이게 했던 일이 다음날 보니 별것 아니었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몸은 이삼일은 족히 흐느적대야 할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마음이 저지르고 몸이 뒤처리하는’ 일이다. ‘아, 그때 그렇게 했었어야 했는데...’하는 가정법에서 우울증이 시작되기도 한다. 지우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일을 애써 부정하는, 그래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은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식의 가정은 불행히도 침대에 누운 사람을 이리 메치고 저리 내동댕이친다. 부정적 생각을 끝없이 계속하는 소위 ‘반추사고(rumination)’는 우울증에 불면증을 부른다. 끝없이 반복되는 생각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지만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지니 그 부조화로 밤을 홀랑 새우는 건 당연하다.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가령 1살짜리 아기는 반경 1m에만 관심을 두고 3살짜리는 3m 정도까지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뭔가 온전히 집중하는 게 어려워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른이 되면 고려할 게 그만큼 많아지고 마음속 고민하던 게 나이 수만큼 많아지기에 눈앞에 본 것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방금 들은 것도 잘 까먹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분산된 마음을 ‘지금 바로 여기(right here and now)’로 끌어다 놓는 연습을 해야 할 이유다. 애들은 보통 눈앞의 것에 온 주의를 기울인다. 모든 게 신선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땅 속 지렁이는 하나둘 기어 나온다. 커다란 학교 가방을 메고 우산을 든 채 쪼그리고 앉아 그 생경한 생명을 살피는 아이들 눈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김새는 타이밍이지만 그 아이들은 사실 우리였다.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던 내 어린 눈을 지금 여기서 다시 찾아야 할 절실함은 그래서 충분하다. 몸은 한 방향으로 쓰다 보면 금방 뻣뻣해진다. 어르신들을 뒤에서 보면 한쪽 어깨가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본다. 익숙한 데로만 움직여온 습관이 몸에 남아서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몸이 부드러워진다. 유연한 아이들이랑 달리 굳이 시간을 내어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마음도 몸과 똑같다. 마음도 여태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으로만 작동한다. 그것이 바로 잡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지금 그리고 여기를 채우고 있다. 잡념으로 머리가 복잡한 이런 상태를 몽키 마인드(monkey mind)라고 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원숭이의 특성을 포착해 만든 개념이다. 그 원숭이가 밤새 내 마음속을 헤집고 다니니 시뻘건 눈을 한 채 홀로 괴로운 것이다. 그럼 여기서 그 원숭이를 길들이는 팁 두어 가지. 먼저 원숭이에게 무관심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잡념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와 잡념을 동일시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괴롭다. 나는 나고 잡념은 잡념일 뿐이다. 비유하자면, 나는 그저 산이고 잡념은 내 주위를 오고 가는 구름일 뿐이다. 이제 잡념에 대한 방관자 또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아, 지금 이런 생각 때문에 내가 화가 나 있었네’하고 나에게서 원숭이를 분리시키는 거다. 원숭이를 하나의 키워드 안에 집어넣는 방법도 있다. 잡념이라는 이름의 인지왜곡에 이름표를 붙이다 보면 그 해결책이 쉬이 떠오른다. 나를 괴롭히는 잡념은 의외로 한정적이다. 한평생 나를 괴롭히는 다양한 콤플렉스를 하나하나 찬찬히 역추적하다 보면 ‘아, 통통한 내 얼굴이 맘에 안 드는구나’하는, 단일의 근원에 도달하게 된다. 결코 충족될 수 없었던 내 마음 그 깊숙한 욕구(deep needs)에 이름표를 하나씩 붙여나가다 보면 어느새 해결책이 떠오르게 된다. 접근 방식을 바꾸어보는 것도 좋다. 만약 불면증으로 고생한다면 ‘오늘은 꼭 세 시간은 자고야 말겠어’ 하는 생각보다는 조용한 음악을 들어본다거나 방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두 시간 넘게 걸리는 마라톤도 결국 한 발자국으로 시작되고 끝나듯, 문제 전체를 보지 말고 삼킬 수 있는 한 모금씩 한 숟가락에만 집중해 보는 방식으로 말이다.
석굴암이 751년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석불사로 창건된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기록이 빈곤하여 변천과정을 알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석굴암과 관련해 현존하는 기록으로는 『불국사고금창기』와 정시한의 『산중일기』 등이 있다. 18세기에 들어서 쓰인 『불국사 고금창기』에 의하면 1703년(숙종29년)에 종열이 석굴암을 중수하고 굴 앞에 돌계단을 쌓았으며, 1758년(영조 34)에 대겸이 중수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중수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가 없다. 또 숙종 때 정시한의 기행문 『산중일기』에는 중수와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당시 석굴암의 현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1688년 5월 15일 정시한이 이곳을 찾았을 때 석굴의 전실과 후실의 석상들이 완전한 형태로 건재할 뿐 아니라 입구의 홍예, 본존상과 좌대, 주변의 여러 조각, 천개석들이 모두 질서 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하였으므로 이때까지는 석굴의 상태에 이상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승려·시인·신도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남긴 시가 있다. 영조 때 사람인 남경희는 ‘우중숙석굴(雨中宿石窟)’과 ‘석굴’이라는 시를 남겼으며, 이관오는 ‘석굴암’을 최천익은 ‘유석굴증등여상인(遊石窟贈登如上人)’이라는 한시로 석굴암의 존재와 그 종교적 의의를 표현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2~300년 전만 해도 석굴암이 잘 보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말기에 석굴은 울산병사 조순상에 의해 크게 중수되었는데 이것이 조선시대 마지막 중수로 보인다. 1962년에 시작된 수리 때에 석굴암 부근의 노인들은 이 석굴을 가리켜 ‘조가절’로 불렀고, 그들의 어린 시절에 향화와 공양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 바가 있다. 일본인들이 집배원에 의해 굴이 처음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다. 일제는 1907년 경 집배원이 우연한 기회에 이 석굴을 처음 발견하였다고 과장하여 선전함으로 우리 민족이 문화재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 열등한 민족으로 폄하하였던 것이다. 그 뒤 일본인들에 의해 적지 않은 반출 및 파손행위까지 있었으며, 나아가 석굴 자체를 해체하여 이전하려는 계획까지 세우게 된다. 그러나 한일합방으로 굳이 석굴을 이전할 필요가 없어지고 현지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이 계획은 좌절되었다. 1912년 초대 총독 데라우찌가 이곳을 방문한 뒤 총독부는 석굴암 중수를 위한 대책을 세웠다. 이 시기의 중수는 전후 세 차례에 걸쳐 행해졌는데, 1차는 1913년-1915년, 2차는 1917년, 3차는 1920-1923년에 이루어졌다. 1차 중수는 거의 완전 해체한 후 복원하는 공사였다. 1912년 6월 25일자 현황조사 복명서에 의하면 석굴암은 황폐화되어 절박한 상황에 있었다고 한다. 이때 보수에 사용한 시멘트로 인해 오늘날까지 석굴암 보존상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후 2년이 채 되지 않아 석굴 내에 누수현상이 나타났다. 누수의 양이 점차로 많아져 1917년 7월 이를 보완하는 2차 공사를 하였으나 누수 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중수 과정에서 불상이 손상되고 주위 경관을 파괴했다는 비판으로 다시 3년 만에 대규모 중수공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3차 중수는 1920년 9월 3일 기공해 1923년까지 4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러나 석굴 내부 및 외부적으로 대규모 보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로와 침수가 계속되 어 수시로 부분적인 보수를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보수를 하지 못한 채 광복을 맞이하게 됐다. 1961년 각계각층의 관심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누수 등의 현상과 불상의 풍화에 대한 조사를 비롯하여 일제 강점기에 잘못된 중수로 인한 굴 자체의 구조와 불상들의 위치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라 1962-1964년에 걸쳐 석굴암의 전면적인 보수공사가 시작됐다. 목조건물을 지어 외부의 변화 및 영향을 배제하였고, 지하수가 굴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게 배수구를 설치했다. 이 밖에도 석굴에 영향을 주는 자연조건을 일일이 제거하는 등 일본인들의 잘못을 바로잡았다. 굴 내 조각의 위치에 관하여는 팔부신중 가운데 가장 앞에 있던 좌우 각 한 상이 금강역사와 마주 서게 굴곡 배치하였던 것을 다른 신중상과 일직선으로 병렬시켰다. 또 수광전·삼층석탑·요사 등의 부속 건물 등도 보수했다. 그러나 이 60년대의 개보수공사는 아직까지도 석굴암의 원형을 보존하려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특히 겸재 정선이 1733년 그린 ‘교남명승첩’에는 석굴암 그림에 목조건물이 그려진 것을 근거로 목조 전실을 새로이 추가하였다. 그런데 그 뒤 규장각 지도를 정리하던 중 토함산 지도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지도에서 목조 전실이 있는 사찰이 석굴암이 아니라 기림사 입구에 있는 골굴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법화경에 ‘변독위약(變毒爲藥)’이란 말이 나온다. 독이 변해 약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동안의 보수공사가 지금까지는 석굴암 보존에는 독이 되었으나 이제는 그 독이 변해 약이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향가(思鄕歌) 박목월 밤차를 타면 아침에 내린다. 아아 경주역. 이처럼 막막한 지역에서 하룻밤을 가면 그 안존하고 잔잔한 영혼의 나라에 이르는 것을. 천년을 한가락 미소로 풀어버리고 이슬 자욱한 풀밭으로 맨발로 다니는 그 나라 백성. 고향 사람들. 땅 위와 땅 아래를 분간하지 않고 연꽃하늘 햇살 속에 그렁저렁 사는 그들의 항렬을, 성(姓)받이를. 이제라도 갈까 보다. 무거운 머리를 차창에 기대이고 이승과 저승의 강을 건너듯 하룻밤 새까만 밤을 달릴까 보다. 무슨 소리를. 발에는 족가(足枷). 손에는 쇠고랑이. 귀양 온 영혼의 무서운 형벌을. 이 자리에 앉아서 돌로 화하는 돌결마다 구릿빛 시뻘건 그 무늬를. -마음 속에 존재하는 두 개의 고향 박목월에게 고향 경주는 어떤 곳인가? “밤차를 타면/아침에 내”리는 곳(1연), “막막한 지역” 건너편, 다다르고 싶은 “영혼의 나라”(2연)이다. “천년을/한가락 미소로 풀어버리고”(3연), “땅 위와 땅 아래를 분간하지 않고 그렁저렁 성받이가 살고 있는 곳”(4연)이다. 천년 고도로, 무수한 산 자와 죽은 자가 땅 위와 땅 아래를 분간하지 않고 사는 지역이다. 그런데도 화자는 왜 “이승과/저승의 강”(5연)이라는 공간적 거리를 넘을 수 없으리라는 체념에 잠기는 걸까? 여기에 이 시의 문제의식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시인이 고향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적인 고향과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본향 말이다. 하룻밤 사이에 도달하는 경주라는 지역은 비근한 현실적인 고향에 불과한 것이고, 생명의 근원인 본향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강기슭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을 “귀양 혼 영혼”(6연)으로, “발에는 족가, 손에는 쇠고랑”을 찬 사람이라 명명한다. 이는 가장과 직업인으로서의 의무를 넘어선다. 7연의 “구릿빛 시뻘건 무늬”는 그래서 영원한 고향을 그리는 그리움의 무늬이다. 그것은 스스로 고향을 부정하는 심리적 기제가 아니라, 끝내 고향에 닿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 발원한다. 결국 이 시의 근저에는 이상적 고향은 경주에 직접 가더라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시인은 『박목월자선집4』(삼중당, 1974, 24-25쪽)에서 고향을 “마음의 안식을 갈구하는 그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본향(本鄕)을 동경하는 우리의 사모와 동경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 했나 보다.
세월에 묻혀버려 갈 수 없는 유년의 뜨락처럼, 사천왕사지 빈터 앞 서성이는 길목엔 저녁 어스름만 흥건하다. 고(故)이근직교수님 생존해 있다면 삼국사기 삼국유사 유적답사팀들과 숱하게 찾아 헤매다 기어이 점지 했을 것 같은 삼국유사 설화 속 월명리, 또 고인이 된 시인 김기문선생님과도 병문안 갔을 때 몇몇 시인들과 빙 둘러 앉아 월명리 옛길 찾아보자 언약했는데, 시간은 허락하지 않고 다시금 설화 속으로 묻혀 버렸다. 월명사(月明師)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14편 향가(鄕歌) 중 도솔가(兜率歌) 제망매가(祭亡妹歌) 두편을 지은 예인(藝人)이다. 【삼국유사】제4편 의해(義解)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 <월명사(月明師), 도솔가(兜率歌)> 경덕왕 19년 경자(庚子: 760) 4월 초하룻날 해가 둘 나란히 나타나서 열흘 동안 사라지지 않자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인연 있는 스님을 청하여 산화공덕(散花功德: 불교의식에 꽃을 뿌리는 절차)을 드리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조원전(朝元殿)에 단(壇)을 정결히 쌓고 왕이 청양루(靑陽樓)에 행차하여 인연 있는 스님을 기다렸다. 마침 월명사가 긴 밭둑길을 가고 있었는데 사람을 시켜 그를 불러 단을 열고 기도하는 글을 짓게 하니 월명사가 아뢰기를 “저는 다만 국선(國仙)의 무리에 속해 있기 때문에 향가만 알 뿐이고 범성(梵(聲: 불교의 경(經)이나 노래)에는 서투릅니다.” 왕이 말하기를 “이미 인연 있는 스님으로 점지됐으니 향가를 지어도 좋습니다.” 월명사가 지어 바친 그 가사는 이러하다. 도솔가(兜率歌) 오늘 여기 산화가(散花歌) 불러 뿌린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명령을 따라 미륵좌주(彌勒座主) 모셔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대궐에서 오늘 산화가 불러 청운(靑雲)에 한 송이 꽃 뿌려 보내옵니다‘ 지극하고 곧은 마음 정성 다하여 멀리 도솔천의 미륵부처님 맞이하리라 나라의 평화를 기원한 노래였을 도솔가를 부른 후에, 두 개의 해가 나타나 열흘 동안 사라지지 않던 변괴가 사라졌다. 월명사의 지극한 덕과 정성이 부처님을 크게 감동시켜 재앙을 물리쳤기에 조정이나 민간에서 소문이 퍼졌으며, 왕은 더욱 월명사를 공경하여 비단 100필을 주어 정성을 표했다는 기록이다. 월명사 지은 향가 도솔가는 도솔천에 계시는 미륵세존의 원력을 얻어 나라의 평온과 백성의 태평성대를 구하려 기원한 간절하고 절박한 시송(詩頌)이다.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은 신라사람들은 향가를 오랫동안 숭상하였는데, 이것은 대개 시송(詩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따금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예찬한 시에 이르기를, 바람은 지전(紙錢)을 날려 죽은 누이의 노자 돈으로 쓰게 하고 피리소리는 달을 흔들어 하늘의 선녀 걸음 멈추게 했네. 도솔천이 멀다고 말하지 말라 만덕화(萬德花) 한 곡조로 즐겨 맞이하네.
경주시가 야심차게 준비한 웹 드라마 ‘해피(Happy) 경주’가 에피소드 4까지 진행되고 있다. 경주의 한 한옥 홈스테이에 숙박하는 외국인 관광객 약혼 커플과 경주의 이모댁을 찾은 주인공 김경주 양을 비롯한 그녀의 친구들이 경주에 머물면서 일어나는 경주체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줄거리다. ‘에피소드 1’부터 항공 촬영한 경주의 모습과 황리단길의 주야간 모습 등을 보여주며 이 드라마가 경주를 보여주기 위한 드라마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에피소드 2’에서는 대릉원과 천마총 전경, 중앙시장 야시장의 풍요로움 보여준다. ‘에피소드 3’은 경주월드의 놀이기구 체험과 엑스포 공원 솔거 미술관, 엑스포 공원의 비경, 월정교와 안압지의 야경을 보여주면서 경주가 기분 좋은 힐링 도시임을 강조한다. ‘에피소드 4’에서는 외국인 커플이 월정교에 취한 모습과 감포 주상절리를 보여주며 경주를 신비한 도시로 묘사한다. 경주의 최근 관광지를 알리는데 매우 충실한 콘텐츠다. 그러나 몇 가지 어색함이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출연진들의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연기야 이유가 있고 대놓고 억지스러운 관광지 밀착형 멘트들도 보인다. 여기저기 관광지를 다 넣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스토리 전개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관광지가 더 관심을 끈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창작은 어렵고 비판은 너무나 쉽기에 ‘에피소드 4’가 겨우 나온 지금 시점에서는 절대 단정할 수 없다. 시도 자체만으로 손바닥 아프게 박수치고 싶다. 기대되는 점도 있다. 주인공들이 티격태격 하는 모습에서 러브라인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이고 홈스테이 주인부부의 어리버리하지만 인심 좋은 모습이 경주사람들을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앞서 몇 가지 아쉬움에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언급했다. 이 드라마에 아주 놀라운 사실이 하나 숨어 있다.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출연자들의 면면이 바로 그것, 여기에 나온 경주, 도준, 인영은 모두 관광컨벤션과 직원들이고 심지어 홈스테이 주인장 남편은 관광컨벤션과 장상택 과장이다. 카메오로 경주시 이영석 부시장도 출연했다. 군계일학으로 연기 좀 된다 싶은 홈스테이 주인장 역은 경주시립예술단의 서은경 씨가 맡았다. 역시 선수가 다르다. 일단 ‘에피소드 4’에서 See you again~ 이란 제목으로 끝맺었는데 이 신기한 주인공들이 더 보고 싶어서라도 반드시 See again해야겠다는 다짐이다. 우선 경주사람들, 경주 출향인들부터 이 드라마 막 퍼 나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