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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식 시인의 경주인문학산책] 이성복의 시집 ‘래여애반다라’와 경주

‘來如哀反多羅’ 여섯 글자를 화두로 삼아 건져 올린 시편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586호입력 : 2023년 05월 18일

↑↑ 2006년 동국대학교 건학 100주년 기념 소조불 특별전 래여애반다라. (출처: 동국대학교 박물관)

이성복 시인을 두고 흔히 ‘시인들의 시인’이라고 말한다. 시를 쓰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시인, 가장 많이 영향을 주는 시인으로 해석이 된다.


↑↑ 이성복 시집 (2013 문학과지성사)
그의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 2013)는 좀 특이하다. 시집 제목 자체가 주는 이미지가 그렇듯 시집의 내용 또한 향가로 시작해서 향가로 마무리된다.
「죽지랑을 그리는 노래」로 시작해서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로 끝맺는다. 입구와 출구에 향가를 모티프로 하는 시를 배치한 것은 시인의 의도가 다분히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읽어내고, 또 다른 상징을 해독하는 일도 시 읽는 즐거움일 것이다. 총 82편의 시로 구성된 시집의 마지막 6부는 ‘오다, 서럽도다 1~4’, ‘來如哀反多羅 1~9’, 그리고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를 배치하여 이 시집이 신라 향가와 연관성을 확고히 한 것으로 보여진다.


시인은 시집 서문에서 밝혔듯이 2006년 여름 경주에서 신라시대 진흙으로 빚은 불상들의 전시회 표제인 ‘래여애반다라’를 관람하고 그대로 시집 제목으로 가져왔다고 밝혔다. 시인은 경주 동국대박물관 주최로 열린 소조불 특별전을 관람했다.


전시회에서 전율을 받아 리플릿에 적힌 ‘래여애반다라’만 오려내 코팅을 해서 부적처럼 책상 앞에 두고 매일 아침 친견했다고 시인은 술회했다. ‘來如哀反多羅’ 여섯 글자를 화두로 삼아 건져 올린 시편들이라 특별하다. 시 창작발생지가 경주라서 반갑다. 창작의 모티브를 제공함은 물론 창작의 배경이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 모두 경주라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여타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경주는 명작 탄생의 고향이기도 하고 모든 한국 사람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신장상 복원 (출처: 경주박물관 소장)

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 功德修叱如良來如(원문)
오다 오다 오다/오다, 서럽더라/서럽다, 우리들이여/공덕 닦으러 오다(양주동 역)


‘來如哀反多羅’는 신라 향가 「풍요(風謠)」(공덕가) 의 한 구절로 ‘오다, 서럽더라’로 해독할 수 있다. 공덕가는 천재조각가, 양지스님이 영묘사에 장육존상(丈六尊像) 불상을 만들 때, 일을 도와주려 모인 서라벌사람들이 진흙을 나르면서 그 공덕으로 세상살이의 고됨과 서러움을 위안하고자 불렀던 노래이다. 향가 중에서 민요적 성격과 노동요 성격이 강하다. 「풍요(風謠)」는 신라 시대 대표적 4구체 향가로,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풍요(風謠)」는 별개의 명칭이 아니라 민요라는 노래를 지칭한 것이다. 오구라 신페이는 삼국유사 나오는 그대로 「양지사석(良志使錫)」이라 하였고, 양주동(梁柱東)은 「풍요」, 김선기(金善琪)는 「바람결노래」라 불렀고, 홍기문(洪起文)는 「오라가」, 김사엽(金思燁)은 「오라노래」라 부른 것처럼 학자마다 다르다.


향가 「풍요(風謠)」의 배경이 된 영묘사는 신라 칠처가람의 하나로 두두리, 지귀, 여근곡,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수막새 등 관한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 곳이다. 영묘사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고 싶을 정도로 스토리텔링이 가득한 곳이다.


양지 스님은 신라의 미켈란젤로로 부를 만큼 최고의 예술가로 꼽는다. 『삼국유사』 의해 ‘양지사석(良志使錫)’ 편에는 신통력과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양지 스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양지가 석장을 부리다’는 뜻의 「양지사석」 편을 인용하자면, 지팡이에 포대 하나를 걸어 놓으면 지팡이가 저절로 마을의 집으로 날아가서 소리를 내면 그 집에서 알아서 제에 쓸 비용을 집어넣어 주었고 자루가 차면 날아서 되돌아 왔다. 신통을 부리는 스님으로 묘사되어 있을 정도로 양지 스님은 보통의 사람, 보통의 스님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은 기묘하고 치밀한 수법을 자유자재로 표현하고 있다. 근육이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게,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표현했다.


↑↑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신장상 복원 (출처: 경주박물관 소장)

 출생과 고향 등 생몰에 관한 기록이 없고 그의 작품이 기존의 작품과 표현 양식이 다르다 보니, 서역이나 인도 사람이거나 최소한 유학을 다녀온 사람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 전하고 있는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사천왕사지에서 출토된 녹유신장상과 그가 주석했던 석장사지 출토된 불상전(佛像塼)과 팔부신장등을 들 수 있다. 이외 감은사지 출토 사리함 등을 그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 석장사지 출토 탑상문전 (출처: 경주박물관 소장)

양지 스님이 주석했던 석장사지는 동국대 WISE 캠퍼스 뒤 산속에 위치하고 있다. 석장동이라는 지명도 석장사 절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석장이란 머리 부분에 보통 여섯 개의 고리가 달린 지팡이를 뜻한다. 걸어 다닐 때 딸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동물이나 곤충들이 물러가도록 해서 살생을 막기 위한 역할을 한다. 석장사지에서 발견된 유물 중에는 붓다의 갈비뼈가 드러나 있는 고행상(苦行像)이 출토되었는데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연기법송명탑상문전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세로로 음각되어 있다.

↑↑ 석장사지 출토 탑상문전 고행상 (출처: 경주박물관 소장)

諸法從緣起(제법종연기):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일어나는 것.
如來設是因(여래설시인): 여래께서는 그 인연을 말씀하셨네.
彼法因緣盡(피법인연진):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소멸한다.
是大沙門說(시대사문설): 이것이 부처님께서 가르친 바라네.


이성복 시인이 경주에 와서 반해버렸던 전시 유물들은 바로 석장사지에서 출토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흙이 뜨거운 불을 만나 완성된, 어느 곳 하나 성한데 없는 조각들이지만, 시인의 가슴을 찌르며 파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픔들을 그대로 시로 게워낸 것이 「래여애반다라」 시편들이었을까

기억의 생매장이 있었겠구나
저 나무가 저리도 푸르른 것은,
지금 저 나무의 푸른 잎이
게거품처럼 흘러내리는 것은
추억의 아가리도 울컥울컥
게워 올릴 때가 있다는 것!
-시 ‘來如哀反多羅 1’ 일부


시인의 시론이 떠오른다. 시라는 것은 검은 보자기 속 어둠으로 들어가 스위치를 누르는 사진사처럼 한순간 불가능을 기록하는 행위라고 했던가.

헤아릴 수 없는 곳에서
무엇을 헤아리는지 모르면서
끓는 납물 같은 웃음을
눈 속에 감추고서
한낮 땡볕 아스팔트 위를
뿔 없는 소처럼 걸으며
-시 ‘來如哀反多羅 6’ 일부


시인은 ‘래여애반다라’ 여섯 자를 분리하여 해석한다. 래(이곳에 와서)·여(같아지려 하다가)·애(슬픔을 맛보고)·반(맞서고 대들다가)·다(많은 일을 겪고)·라(비단처럼 펼쳐지다)’를 시집 맨 앞 ‘시인의 말’에 포함시켰다. 이 세상에 와서 누구나 겪는 삶의 수레바퀴를 끝없이 굴리어야 하는 운명적인 존재라는 것은 양지 스님이 살던 그 시절 풍요를 부르던 사람이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21세기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시인은 시공을 넘어 노래하고 있다.


향가 속 사람과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이 주고받는 대화를 엿듣기 좋은 경주이다. 바람 좋고, 햇빛 좋은 날을 골라 영묘사지, 석장사지, 사천왕사지 폐사지 속으로 걸어 들면 운 좋게 노래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래여애반다라 래여애반다라 래여애반다라 래여애반다라……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586호입력 : 2023년 0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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