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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출향인의 버팀목 (법)청운 김종필 변호사

간사, 총무, 국장··· 봉사직함 가장 많은 진정한 일등향우
박근영 기자 / 1499호입력 : 2021년 07월 29일
↑↑ 김종필 변호사.

“제가 200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로 저희 고려대에 경주출신 고시 합격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나중에 후배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종필형이 합격했는데, 우리도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후배들 사이에 있있다’고 하더군요”

어지간하면 무언가 그럴싸한 치장을 할 법 한데 김종필 변호사는 전혀 그런 게 없다. 고등학교 때 술 마시고 담배 피운 이른바 ‘농띠’였다는 이야기와 3수해서 대학에 갔고 친한 친구의 억지 강요(?)로 처음 치른 1999년 사법시험 1차 시험에서 평균 50점도 못 맞아 자신에게 엄청나게 실망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2차 시험을 코앞에 두고 벌어진 2002년 월드컵에서 차마 생방송 중계는 못 봐도 호프집에서 하이라이트는 꼭 봤다며 그 덕분에 2차 시험을 치고도 합격에 자신이 없어 다시 1차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고도 회고한다.

김종필 변호사는 이렇게 소탈한 사람이다. 그를 아는 대부분 사람들은 큰 체격과 무덤덤한 표정을 보며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를 떠올리면서도 그 속에 감추어진 푸근한 인간미와 은근한 열정, 꾸준한 봉사심에 매료된다.

-부지런한 변호사, 인간미 넘치는 변호사, 삶을 즐기는 변호사
김 변호사는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법무법인 청운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2005년 변호사로 출발했다.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부모님의 바람이기도 했지만 어떤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직장인들에 비해 자유롭고 그때만 해도 선망의 대상 같았지요”

역시 거창한 소명의식이나 사명감 등에 대한 말은 하지 않는다. 생활인으로서 느끼는 공동의 삶이 존재할 뿐이고 변호사 업무는 그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직장일 뿐인 듯하다. 그러나 그의 이런 꾸밈없음이 변호사 업무에서는 훨씬 큰 장점으로 드러난다. 특히 김 변호사에게는 다른 변호사들에게 느낄 수 없는 여유가 느껴진다. 열린 마음으로 사건을 대하다보면 사안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다는데, 사안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승소를 목표로 하는 변호사에게는 더 없이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변호경험은 오히려 수임료라는 측면에서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노숙자들 사이에도 위계질서란 것이 있더라고요.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인데 다수의 노숙자들이 한 노숙자를 죽인 폭행치사사건이었습니다”

피해자의 어머니 등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유족들을 위해 수임료도 없이 장기간 사건을 맡아 승소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것. 이일로 김종필 변호사가 한 일간지에 소개된 적도 있는데, 노숙인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싱가포르에 있는 컴퓨터 부품 수출회사를 대리해서 신용장 개설은행인 국민은행을 상대로 한 신용장대금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사건도 손꼽는다. 거대 기업으로 여겨지던 국민은행과 그 소송대리인에 맞서, 여러 건의 관련 소송을 함께 진행하면서 대법원까지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한 끝에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사건이라 머릿속에 뚜렷이 남았다.

특히 김 변호사는 고려대 법무대학원 지적재산권법학과를 수료해 이 방면 소송에 깊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며 같은 경주출신 패트라 특허법률사무소 대표 황병도 변리사와 오랜 기간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황병도 변리사님은 인품도 훌륭하시지만, 지적재산 분야 이론과 실무에 탁월하셔서 제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또 채무가 많으면서 재산을 빼돌린 채 빚을 갚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떼인 돈을 찾아주는 ‘사해행위소송’에 실력을 발휘한다. 대전에 있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 7년간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학교가 당사자가 된 여러 건의 소송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재경 경주출향인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재경경주향우회 총무로도 다년간 활동해 주요 행사장에서 봉사에 임하는 그를 보는 것이 익숙하다. 2008년부터 경주고 39회 서울동기회 회장으로, 경주중고등학교서울동창회(이하 동창회)에서 간사로 각 활동해왔으며 현 제29대 동창회에서는 동호회 국장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산을 좋아해 2014년부터 역시 동창산악회 총무를 맡아 지금까지 봉사하고 있다. 2016년과 2017년에는 경주발전포럼의 사무국장으로, 2020년에는 동창회 골프 동호회인 옥돌회의 총무로도 활약했다. 골프모임 서라벌회, 축구 모임인 ‘FC화랑’ 등 동호회 회원이기도 하고, 지역 모임인 (서울)남동부모임의 사무국장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또한 김 변호사는 틈틈이 사회 봉사활동도 해오고 있는데, 구성원 다수가 경주사람들인 서울대성라이온스클럽 회장을, 그 상급단체인 국제라이온스협회354-A지구 지대위원장을 각 역임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눔의 정신을 실천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구수한 입담으로 유튜브 ‘경주중고등학교서울동창회TV’에서 3년 선배인 손원락 MC와 함께 진행을 맡고 있다. 여기서 김 변호사는 특유의 여유 있는 경주말과 어눌한 농담으로 시청자들을 고향으로 이끈다. 이제 세 번째 방송이 나갔을 뿐인데 진행자들의 진행 솜씨가 화제로 떠올랐다.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제가 방송과 영 인연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래 전 TBS교통방송 PD로 근무하고 있던 경주고 한 해 후배인 정경훈 후배로부터 가수 김흥국 씨가 진행하는 코너에서 5분쯤 법률상담을 해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비록 라디오 방송이지만 방송출연이 처음이던 김 변호사는 정경훈 PD에게 방송일 전에 미리 김흥국 씨를 만나 소주라도 한잔하면서 낯선 긴장감이라도 누그러뜨린 다음 방송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하였으나 김흥국 씨의 바쁜 일정관계로 사전 만남 없이 생짜로 방송에 나가게 되었다고.

“5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고 방송이 끝났는데 시쳇말로 ‘폭망’ 그 자체였습니다. 딱 한 번 방송이 나가고 법률상담 코너 자체가 폐지돼 버렸습니다”

김 변호사는 지금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은 모두 익숙하고 든든한 동창회 임원 선후배들이 함께 진행을 맞고 있는데다 보는 사람들도 대부분 친근한 동문들이고 경주 사람들이라서 아주 편하게 방송할 수 있다고. 실수해도 용납되고 서툴러도 무한대의 격려를 해주니 인기 방송인 부럽지 않다며 만족감을 표시한다.

↑↑ 경주중고등학교 서울동창회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는 김종필 변호사(오른쪽)와 손원락 씨.

-향우회, 동창회 등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부정적 인식 버려야. 밑천이자 사회의 일부!

김 변호사는 그런 한편 역시 경주고 동창회건 향우회건 연령대가 낮을수록 행사에 후배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며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한다.

“동창회나 향우회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이나 부정적 인식으로 참석하지 않는 분들이 가끔 동창회나 향우회 특정 인사들의 연락처를 묻거나 해당 인사들과의 자리를 부탁하면 그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합니다. 동창회와 향우회도 사회의 일부고 우리 삶의 밑천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자신 동창회나 향우회에 참여하면서 사건을 의뢰하는 동문과 향우들이 꽤 늘어났다는 김 변호사. 그런 보답을 기대하고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만남 그 자체에서 느끼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안도감과 행복감 이외에도 덤으로 업무상 도움까지 생기니 보람이 더 크다.

또 한편 김 변호사는 후배들이 의외로 모임에 대해 잘못 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며 오해를 바로 잡을 필요도 역설한다.

“많은 후배들이 모임에 나오면 선배들 때문에 불편하다거나 궂은일을 도맡아 고생만 하고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고 여깁니다. 젊은 회원이라면 단 한 사람이라도 귀한 요즘 그럴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향우회나 동창회 차원에서도 가능한 많은 구성원들이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행사 진행이나 구성을 과감히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청도가 고향인 김종필 변호사는 2007년 아버님께서 작고하신 이래 홀로 남아 오래된 과수원을 가꾸어 오시다가 최근에는 과수들을 정리하고 새로이 샤인머스켓 포도농사를 시작하신 어머니를 도와드리기 위해 고향에 가곤 하지만 생각만큼 자주 가지질 않는다며 숙연해한다. 가능한 자주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하는 것이 또 하나의 꿈이라며 이런 꿈을 꿀 수 있도록 내조해준 아내 손미영에게 이 지면을 빌어 인사하고 싶다고도 했다.

청도가 유년의 추억을 품은 요람기라면 김종필 변호사에게 경주는 ‘인생에 눈을 뜨기 시작한 곳’이다.
“경주고로 진학하면서 넓은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많은 친구와 선후배들이 경주사람입니다. 지금도 경주를 벗어난 인생은 생각하기 어렵지요. 이 인터뷰에 등장한 경주고 동문만 해도 몇 명입니까?”

‘열정, 자유 그리고 낭만’을 삶의 모토로 정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말을 되뇌며 삶에 대한 애정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긍정적이고 즐겁게 살아가고자 한다는 김종필 변호사, 그의 우직하면서도 선해 보이는 웃음 속에 삶의 지혜가 역시 은근히 흐른다.
박근영 기자 / 1499호입력 : 2021년 0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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