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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커피도 마셨지... 50년 훌쩍 넘은 ‘백록(白鹿)다방’

아날로그 감성 진한 ‘백록다방’에선 오랜 시간의 관록 느껴져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99호입력 : 2021년 07월 29일
↑↑ 백록다방의 2대 주인으로 20년간 충실하게 다방을 꾸려온 김경희 대표.

‘그때는 그랬지,/멋스럽게 기대앉아 종일을 몸을 비비고 차를 마셨지/오가는 농담으로 마담과 함께/희망곡도 보내고 모닝커피도 마셨지./ -정민호 시 ‘귀로 다방’ 중에서.


일명 다방 커피와 쌍화차가 여전한 풍미를 유지하며 팔리는 곳. 경주 중앙시장을 마주하고 있는 금성로 대로변에 위치한 ‘백록(白鹿)다방’이다. 이 다방이 문을 연지 50년이 훌쩍 넘었다고 하니 적어도 1970년대 초나 1960년대 말에 생긴 다방이다.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거로의 회귀는 디지털 시대에 느끼는 불안감과 피로감을 아날로그 감성이 전하는 푸근함과 안정감으로 위안 한다는 것이다.

↑↑ 아날로그 감성이 전하는 푸근함이 느껴지는 백록다방 내부.

이 다방도 그런 감성을 간직한 50년 넘은 노포다. 백록다방은 경주의 원도심 중 한 곳인 중앙시장 금성로(노서동) 대로변에 고정돼있는 듯하다. 길다랗고 오래된 건물 1층에 붙박이처럼 나지막하게 자리한다. 가로수인 은행나무 사이로 엇비슷하게 보이는 백록다방은 그림엽서의 한 장면처럼 낭만적인 풍광이다. 뉴트로를 표방하면서 새로 생긴 힙한 카페들처럼 은근슬쩍 아날로그적 요소에 편승하는 카페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백록다방은 존재 자체가 레트로(Retro, 복고주의)로 기능하며 아날로그의 바로미터로 보였다. 옛 모습처럼 꾸며 재현한 공간이 아니라, 50년 넘게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백록다방의 관록이 느껴지는 것이다. 다방을 구성하고 있는 다소 빛이 바래고 오랜 인테리어 소품들과 장식들에선 우리들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진한 냄새와 온기가 전해지는 듯했다. 1970~1980년대 다방은 문화사가 한 공간에 응축된 장소였을 테고 경주 신사들의 핫플레이스 중 한 곳이었을 것이다.

이 다방의 2대 주인으로 20년간 충실하게 다방을 꾸려온 김경희(68) 대표는 음전하고 말할때의 입매가 특히 매력적이었다. 당시의 일상이 지금에 반영돼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던 백록다방에서의 쌍화차엔 지난 시절의 감성이 가득했다.


-금성로 대로변에 위치한 ‘백록(白鹿)다방’...문 연지 50년 훌쩍 넘어

지난 26일 백록다방을 찾았다. 한여름의 전형적인 날씨였다. 경주시내에서 ‘다방’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는 곳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청기와 다방 고려다방, 이외에 백록다방이 그 명맥을 잇는 정도다. 백록다방은 원래 주인이 영업 하던 중에 화재가 나서 인테리어를 다시 했고 지금의 주인인 김경희 대표가 2000년에 인수를 해 이 다방의 2대 주인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 주인이 30년 넘게 영업을 했고 제가 맡아 경영 한 지가 20년이니 시간이 많이 흘렀죠. 3년 전 백록다방에서 백록커피로 상호가 바뀐 것 빼고는 거의 예전 그대로입니다”

에어컨과 함께 선풍기 두 대를 틀어놓은 다방의 실내는 시원했다. 주문한 쌍화차에는 예의 날계란 노른자가 동동 띄워져 있었고 계피향이 진했다. 대추, 참깨, 각종 견과류 등이 찰지게 씹혀 식감을 높였고 풍미를 더했다. 계란노른자는 티스푼으로 휘휘 잘저어 풀어서 마시면 무난하게 마실 수 있다고 했다.

다방 한 켠에는 흡연자들을 위한 흡연실이 따로 마련돼 있었고 커다란 안마의자가 자리한 것만 봐도 이곳을 자주 찾는 손님들의 연령층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방’ 하면 연상되는 어항 속 열대어들은 한가롭게 노닐고 중앙일간지 두어 종이 의자에 툭 걸쳐져 있었다. 여러 서화들이 다방 벽에 걸려있었는데 그 중에는 부용당 조인좌 선생의 난(蘭) 그림도 한 점 걸려 있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곳 주인의 고상한 취향를 읽을 수 있었다.

다방의 커다란 유리창에는 ‘복사, 팩스, 스캔 있는 다방’, ‘커피전문점 백록’, ‘커피하우스 백록’, ‘추억의 맛’ 쌍화차, 대추차, 생강차, 유자차, 보이차, ‘백록 커피’ 라는 문구들이 적절하게 배치돼 있어 이 다방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복사나 팩스 사용가능’이라는 안내문구를 보고 들어와 일을 처리하고 가는 손님도 더러 있다고 한다.


-주인장의 손맛과 손수 만들어 정성을 듬뿍 넣어 달여 내는 추억의 쌍화차 // 가장 잘 팔리는 메뉴는 따뜻한 커피

“대추차도 직접 끓여서 내요. 생강차도 김장철에 준비해 모두 깎아서 절여놓았다가 끓여 내요. 유자차도 생유자를 꿀에 절여 기존 제품과 섞어 내야 더 맛이 나요. 이들 추억의 차들은 많이 찾지를 않아서 사실 계산이 맞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추억의 맛(쌍화차, 대추차, 생강차 등)’에 신경을 많이 써요. 저걸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이들 차도 주인장의 손맛과 손수 만들어 정성을 듬뿍 넣어 달여 내는 맛이다.

“저 혼자 지금껏 꾸려왔고 차도 저만의 방식으로 맛있게 내는 방법을 생각해서 끓여 내죠. 커피도 핸드드립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요”

쌍화차에 이어 주인이 직접 갈아 내려준 아이스커피를 연이어 주문했다. 여느 카페 커피보다 맛이 있었다. 가장 잘 팔리는 메뉴는 따뜻한 커피라고 한다.


김 대표는 “다방식 커피는 예전엔 무조건 설탕을 넣은 달달한 커피였는데 지금은 손님들께 일일이 여쭤봅니다. 각자의 기호가 달라서 설탕, 프리마의 유무를 체크해서 선택하게 합니다”라며 손님들 입맛에 따라 달리 내놓는 추세를 이야기했다. 커피 다음으로 쌍화차. 대추차 등의 순으로 팔린다고 한다. 쌍화차만 마시러 따로 오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이 집 쌍화차가 아주 잘 나와요. 소문 나 있어요. 차 한 잔을 내더라도 정성스럽게 내려고 하고 좋은 재료를 제공하려고 노력하지요” 단골손님의 자랑이다.

커피 2500원, 추억의 쌍화차 5000원, 아이스커피 4000원 등으로 가장 비싼 메뉴는 쌍화차다.
“쌍화차는 어르신들보다는 오히려 옛 추억을 상기하는 중년이나 젊은 층에서 호기심으로 즐겨 찾는 메뉴예요. 어르신들은 가격도 센 편이고 달아서 당뇨 등이 있는 분들은 피하시는 메뉴입니다”

↑↑ 서화작들이 여럿 걸려있다

-“커피도 커피지만 쉴려고 오시고 이야기 하려고 오시죠. 다방은 그저 중신애비예요”

“주로 점잖으신 분들이 단골로 오십니다. 나이 드셔서 편찮으셔서 못 나오시면 얼마 뒤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리지요. 전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사무실이 이 근처 있었을때는 참전 용사 분들이 많이 오셨죠. 또 미술하시는 조희수 화백 등 화가분들도 많이 오셨어요. 코로나 이후에는 좀 뜸해지셨지만요”

김 대표가 이 다방을 인수할 당시에는 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경주가 고향인 소위 ‘엘리트’ 손님들이 주로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경주 사회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분들이 많이 오셨죠. 소위 잘나가는 영향력 있는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점잖은 어르신들께서 많이 다녀가셨는데 신문만 조용히 보고 가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부동산 하시는 분들은 팩스 등으로 업무 처리를 하면서 커피를 드시지요. 국회의원이나 경주시장 후보자들이 선거 시즌이면 이곳 중앙시장에 홍보하러 와서 우리 다방에 자주 들르곤 했었어요. 요즘엔 가끔씩 여행자들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 커피나 쌍화차를 마시고는 우리 다방 구석구석을 사진 찍어 가기도 하고요”

↑↑ ‘다방’ 하면 연상되는 어항도 있다.

- “손님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그렇게 이 다방을 지킬 거예요”

김경희 대표는 경주 토박이다.
“다방일은 처음이어서 초기에는 손님들과 이야기도 하지 못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입담도 없는 편이고요. 제가 말이 별로 없어서인지 손님들도 점잖으신 분들이 주로 오셨어요”

출향인들이 추석이나 설날이면 고향 경주를 찾아 이곳을 찾아온다고 한다. 예전 시절을 추억하는 장소로서 이곳을 찾는다는 것.

“사라지지 않고 있어줘서 다들 고맙다고 해요. 반가워하죠. 출세해서 오신 분들 보면 저도 덩달아 정말 좋아요”

“점심 사 주시는 분도 있어요. 혹은 점심 드시고 제 것 챙겨다 주시는 분도 계시구요. 간식 거리도 사주시지요(웃음). 그래서 이 일이 힘들어도 계속 운영할 수 있는 힘이 된답니다. 어떤 분은 점심 드시고 또 오셔서 커피를 드시고 가시기도 해요. 감사한 일이 많아요”

↑↑ 나란히 정리돼 있는 카세트 테입들이 정겹다.

20여 년간 단골손님으로 이곳을 찾고 있다는 어르신 한 분은 “이곳 주인장이 워낙 얌전해요. 다방 하는 사람 같지 않고 아주 현숙한 주부 스타일이지요. 분위기도 차분하고 좋고요. 경주시내서 여기만큼 분위기 좋은 다방이 없어요. 백번 물어 볼일이 있어도 한 번 짜증내는 일이 없어요. 우리들 해결사입니다”라며 맘씨 따뜻한 주인장을 치켜세운다.

“제 힘 닿는데 까지는 이 일을 해야지요. 그간 배운 일이기도 하고 소일거리 삼아 편하게 일할 겁니다. 유행을 쫓아 바꾸기도 싫고요. 저만의 레시피와 정성으로 추억의 맛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손님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그렇게 이 공간을 지킬 거예요”

오래된 집기들, 백록다방의 불을 밝히던 조명들, 나란히 정리돼 꽂혀져있는 카세트 테입들, 어르신들의 손때 묻어 반질해진 의자와 뭉툭해진 테이블 모서리, 재떨이, 주인장이 오래 사용한 계산대 등에서 백록다방의 시간은 오늘도 쌓여간다. 아침 여덟시에 문을 열고 저녁 여덟시에 문을 닫는 백록다방에서 다시 쌍화차 한 잔 마주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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