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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꿈 키우는 전인식 시인, ‘모란 꽃 무늬 이불 속’에서 ‘검은 해를 보았네’

고교시절 원없이 읽었던 책, 다양한 사회경험 시 쓰는 원동력 돼
박근영 기자 / 1465호입력 : 2020년 11월 26일
시는 어려운 것이다. 혹은 시는 어설픈 것이다. 특히 요즘 나오는 많은 시들은 너무 어렵거나 너무 질 낮다. 기교들이 지나치게 동원되는 반면 문장력은 약하고 함축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등단 시인들은 차고 넘친다. 길거리, 발에 차이는 사람이 죄다 시인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 같다.

그렇게 가짜 시인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참다운 시인을 만나는 것은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전인식 시인의 시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들이 너무나 솔직하게 묘사되어 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일순간에 끌어당긴다. 2019년에 나온 ‘검은 해를 보았네’나 지난 달 나온 시집 ‘모란꽃 무늬 이불속’의 시들은 이제 곧 명예퇴임을 앞둘 만큼 연륜 쌓은 시인의 오래 묵은 감성들이 차곡차곡 쌓인 보물창고다.

“어릴 때 백일장이나 일기 같은 글 써서 상 받은 일이 많았고··· 월성 중학 시절 글을 써내면 주변에서 어디서 베껴오지 않았냐고 묻곤 했어요. 경주고 시절 백일장이나 무슨 효행 수기 같은 걸 써내서 상 받은 일도 있었지만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그보다 그보다 훨씬 뒤였습니다”

↑↑ 전인식 시인

-고교시절 다양한 사회적 경험이 시 쓰는 원동력

오히려 전인식 시인은 자신이 글과 가까워 진 것을 고교시절 도서관 책들을 원 없이 읽었던 저력에서 찾는다. 그 당시 한국문학전집이니 세계문학전집 같은 책들을 밤낮없이 읽으며 문장의 매력에 빠진 것과 남들이 해보지 못한 경험들이 나중에 시 쓰게 된 원동력으로 여긴다.

그의 시에 ‘파두(포르투갈 민속음악)’,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같은 뜻밖의 단어가 나온 것은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시어선택이다. 대학진학 때는 속으로는 국문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밥 먹기 좋은’ 경영학을 택한 것이 글과 잠시 멀어졌다.

“본격적으로 시를 쓴 것은 농협에 근무하면서 4급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그 이전에 몇 차례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번번히 최종 작품 심사과정에서 떨어지는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란 사람은 시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오히려 시와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전인식 시인의 말은 그 당시 신춘문예에 도전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린 난관이었을 것이다. 전국 단위 일간지나 문예를 다루는 잡지 서너 개를 다 해 봐야 20개 남짓인 신춘문예에 전국의 내로라하는 문학지망생들이 다 몰려서 고시보다 신춘문예 당선되기가 몇 십 배 어렵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던 시절이었다. 시를 써야겠다고 다짐한 이후,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김정환 시인이 운영하던 한국문학학교에서 고은 선생으로부터 ‘시의 정신’에 대해 지도 받았고 서시월 시인이 운영하던 대구시인학교에서도 공부했다. 경주에 근무하기 시작한 1997년부터 4년 정도가 전인식 시인에게 집중적으로 시인에 도전한 시기. 이러면서 1997년 대구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1998년 불교 문예로 등단하며 시인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얻었다. 그러나 전국 단위 일간지들의 신춘문예를 욕심 낸 호승심에서 번번이 최종심사단계에서 낙방하다보니 오히려 좌절감이 커졌다.

“2000년도 이후에는 시 쓰기를 포기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직장생활하면서 집중하기도 어려웠고 눈치도 보이고… 역시…, 글에만 집중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때부터 수석(壽石)에 취미를 들이게 되어 전국 명산대천을 돌았다는 전인식 시인은 지금도 수석 관련 인터넷 카페 중 가장 잘 운영되는 ‘무찰’카페의 결성 맴버로 활약하며 글 대신 돌을 택해 머리를 식혔다고. 어쩌면 이 시기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길을 얻은 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다시 시를 써야 하는 절대절명의 계기가 생긴다.

↑↑ 그의 시집 모란꽃 무늬 이불 속, 검은 해를 보았네.

-“시에도 나와 있듯이 2016년 3월 14일 꿈에 박목월 시인이 나오신 겁니다.”

시집의 가장 마지막 제목 ‘목월시인’에는 ‘허연 난닝구 차림’의 목월시인이 나타나 시를 쓰라고 야단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부터 시를 다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이 움텄고 불교문예에서 시집을 내자는 권유가 있어 30대 때 쓴 시들을 주로 모아 2019년 1월 시집 ‘검은 해를 보았네’를 펴냈다.

검은 해를 보았네는 90년대 30대이던 시인의 다소 패기 넘치는 감성이 그 시절을 박제한 채 20여년을 관통해 2019년에 다시 태어난 수작(秀作)들이다. 특히 사회나 종교에 대한 은근히 날 선 비판도 엿보여 완숙과 관록으로 따듯해진 ‘모란꽃 무늬 이불속’과 조금은 다른 읽을 맛을 준다. 특히 30대 시인이 바라본 경주의 모습과 경주에 내재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경주로 잠깐 돌아간 듯 한 환영을 안겨준다. 옛것을 드러내고 새것을 억지로 덧칠하던 멋모르던 시절의 반추가 조금은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에 비해 ‘모란꽃 무늬 이불속’은 이제야말로 자기 자신을 되찾은 시인 전인식의 작품을 온전히 만나는 곳이다. 무엇보다 소재 선택이 훨씬 풍부하고 자유롭게 보인다. ‘나이트 클럽 제우스’, ‘야묘도추’, ‘봄감기’ 등 다양하고 과감해 친근함을 불러일으킨다. 한편으로는 ‘삼호베어’처럼 점차로 사라져버린 우리 시대의 역사를 기술해 놓고 있어서 반갑다. 스스로 똥물을 뒤집어써도 좋아 할 만큼의 여유도 인상적이다. ‘선인장 마흔 근처’ 같은 인생을 홀연히 되돌아보게 하는 시들은 숙연함마저 자아내고 ‘MRI속에서의 명상’은 시인 또래 연령의 사람이라면 적나라한 공감을 느끼게 되고 ‘고슴도치’는 중년 혹은 초로의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아내에 대한 속마음을 낱낱이 드러낸다. 이런 시들을 읽을라치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입언저리에 걸린다. 4부로 나뉜 시집은 굳이 부를 따지지 않고 시인의 인생과 시인의 문학. 시인이 느낀 경주와 시인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편안한 운율로 펼쳐져 있다.

-“40년 전, 필막못에서 물에 빠진 아이 구한 분, 연락주세요···” 시인의 때늦은 부탁도 시적…
여기서 잠깐, 인터뷰 도중 시인이 ‘익사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문에 이 이야기를 꼭 실어 달라 부탁한 게 있다. 익사의 추억은 시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고향인 보문 호수 근처 이웃마을에 ‘필막못’이란 곳에서 빠져죽을 뻔한 사건을 노래한 시. 그때 허우적거리며 다 죽어가던 소년을 낚시하던 30대 어름의 아저씨가 건져 주었는데 총망중에 그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단다. 이 인터뷰 기사에 그때 필망못에서 물에 빠진 아이 건져준 아저씨가 살아계시면 꼭 연락 달라 부탁했다고 써달라는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모자라는 부분이 더러 있겠지만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대신 다양한 사회 경험을 살려 시를 쓴다는 전인식 시인은 은퇴 후 글로 이루고 싶은 또 다른 소원이 있다.

“앞으로 시작 생활을 영위하면서 경주에 대한 인문학적 이야기들을 써보고 싶습니다. 아직도 경주는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경주에 사는 사람들이 경주에서 살지 않은 사람들보다 이런 책들을 써내지 못한다는 것이 좀 아쉽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몇 개는 이미 소재를 찾아 글로 써놓았다고 귀띔하기도 한다. 시인의 감성으로 쓰는 경주의 숨겨진 이야기는 어떨지 기대된다.

“글쎄요…. 경주는 삶 그 자체지요. 제 모든 시들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정적으로 저는 아들이 멀리 가지 않고 경주에 살았으면 싶을 만큼 경주가 좋은 곳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물론 아들의 의향대로 살기 바라면서도 그 만큼 경주에서의 삶이 소담스럽게 여겨진다는 뜻이다. 다만 경주에 살다보니 지나치게 층층시하, 원로들 중심으로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어 젊은이들이 활개 펴고 살기에는 어려운 점이 더러 있다며 의사결정이나 행사 등 사회전반에서 현장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 중심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다.

“시를 쓰는 만큼 기왕이면 경주를 대표하는 시인이라는 소리쯤은 듣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다채로운 시를 써야겠지요?”

전인식 시인은 현재 농협중앙회 경주시 지부장 역할을 맡고 있지만 곧 명예퇴직하고 문학의 길에 매진할 계획이다. 분명히 하고자 하는 은퇴이후의 계획이 있는 만큼 그의 내일이 더 활기찰 전망이다. 앞으로 또 어떤 시들이 우리를 즐겁게 할지 기대된다.
박근영 기자 / 1465호입력 : 2020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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