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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와 전설 다양해 많은 이야깃거리 품고 있는 건천읍 오봉산(五峰山)

호방하고 장하다! 신라인의 예지와 기개 서린 오봉산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63호입력 : 2020년 11월 12일
↑↑ 마당바위는 산 정상부의 절벽에 형성된 너럭바위로 삼면이 칼로 자른 듯 수직의 모습이다. 호쾌한 조망으로 유명하고 오봉산 코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경주에는 남산, 토함산, 단석산 등 경주의 유명한 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산이 있다. 경주시 서면 천촌리 일대의 오봉산(五峰山)이다. 오봉산은 해발 730m로 여근곡(女根谷), 주사산(朱砂山)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오봉산은 남산이나 단석산 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여근곡 입구서부터 유학사, 옥문지, 부산성, 주사암, 마당바위 등 능선에서의 황홀한 조망이외에도 볼거리와 전설이 다양해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는 산이다. 오봉산에는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 여왕이 놀라운 예지로 백제 매복군을 섬멸했다는 역사적 장소이기도 한 여근곡이 있으며,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됐다고 전하는 천년 고찰 주사암이 있다.

신라 화랑들의 무예 연마터로 전해지는 마당바위가 우뚝한 곳이기도 하고 또 경주의 서쪽을 방어하는 요충지였던 부산성(富山城)이 있다.

득오가 화랑 죽지랑을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향가 ‘모죽지랑가’의 배경이 된 오봉산은 신라 화랑들의 우정이 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지난 6일, 여근곡 입구서부터 유학사, 옥문지, 부산성, 주사암, 마당바위에 이르는 오봉산 정상까지 다녀왔다.

↑↑ 주사암 가는 꼬부랑길

-구절양장 길은 계속되고 거의 수직으로 이어지는 꼬부랑길 한참 오르니 드디어 오봉산 정상

지난 6일은 바람이 몹시 부는, 늦가을과 초겨울의 냄새가 공존했던 다소 차가운 날이었다. 기자와 지인 일행은 초행길이라 오봉산 정상까지 차로 이동했다. 오르는 길인 임도의 대부분은 앞쪽 휘어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의 수직에 가까울만큼 가팔랐고 오른쪽으로는 낭떠러지길이어서 아슬아슬 꽉 쥔 손에 땀이 고일 정도였다. 아찔했다. 교행하기에는 매우 힘든 임도여서 마주 오는 차를 만나기라도 하면 상당히 힘들듯했다. 그러나 가을 단풍은 절정이었고 오봉산 정상에 오를수록 멀리 흐릿한 운무 속 건천 읍내가 아득하게 내려다보여 탄성도 함께 흘러 나왔다. 오르는 길가에는 작은 돌탑들이 도열해 있었는데 어디서나 소원들을 비는 정성들이 참 많아 보였다. 단풍이 절정인 시기여서인지 굴곡진 길을 따라 가는 내내 늦가을의 아름다운 색채는 온 산을 수놓고 있었다. 그렇게 구절양장 같은 길은 계속되고 거의 수직으로 이어지는 꼬부랑길을 한참 오르니 드디어 주사암 주차장이 나타났다. 주차장에서 조금 오르니 경주 부산성이라는 안내판을 만났다.

정상에 서니 건천, 경주 일대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였다. 오봉산 정상까지 도보로는 3~4시간 걸린다고 하니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할 듯 싶다. 다음에는 트레킹으로 다시 한 번 도전!!

↑↑ 오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건천읍 일대.

-‘오봉산은 건천읍 천포, 송선, 신평, 천촌리에 걸쳐 있고 산봉우리 다섯이 낙타의 등처럼 유연하게 보이는 산’

오봉산에 관한 더욱 상세한 이야기 한 대목이다. ‘단석산 아래 마을 이야기(황종찬 지음)’에서 ‘오봉산은 건천읍 천포, 송선, 신평, 천촌리에 걸쳐 있다. 산봉우리 다섯이 낙타의 등처럼 유연하게 보이는 산이다.

신라 서울 경주의 서북 요새라 할 부산성은 바로 이 다섯 봉우리를 따라 성곽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도성 경주를 지키는 요새 중 요새였다. 이 부산성이 있는 주사산은 단석산 버금가는 명산이다. 이 부산성 내에는 봉수대가 있었다고 하나 그 흔적은 찾을 길 없고 터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 오봉산 정상 가까이에는 주사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주사암은 주사산 바위 속에 둘러싸여있는 암자라 할 수 있다. 이 주사골 북서쪽에 ‘주암(朱巖)’이라 불리는 붉은 바위가 있다. 해가 떠 있는 낮 시간대에 보면 흡사 햇빛을 받아 바위가 온통 빨갛게 물든 것처럼 보여 이 바위를 가리켜 주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햇빛이 계곡 위 바위에 비쳐 붉게 타는듯해 오봉산 주암의 전설은 그러하다. 또 해질녘 이 바위는 잿빛으로 엷어지면서 점점 어두운 색으로 변할 때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처럼 고운 바위가 있다는 것에 이름 붙여 주사암이라고 했다고 한다’고 적고 있다.


-오봉산 입구 쪽 유학사와 두꺼비가 요란하게 울어 병란 막아냈다는 옥문지<사진↑>

오봉산 입구 쪽에 위치한 유학사는 해인사의 말사로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창건된 사찰이다. 신평리의 솔숲사이로 아담한 유학사 경내가 보이고 절 왼쪽으로 5분여 오르니 옥문지가 나타난다. 옥문지는 여근곡의 중앙부로 사서에 나오는 신비의 자그마한 연못을 지칭한다.

영묘사에 있던 못으로 선덕여왕때 두꺼비가 요란하게 울어 병란을 막아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현재 옥문지는 옛 흔적은 사라지고 상수도 호스가 설치돼있는 작은 샘터만 남아 전설의 맥을 잇고 있었다.

↑↑ 정상에 있는 천년 고찰 주사암.

-신라 고찰 주사암(朱砂庵)... 신라 의상대사가 주암사(朱巖寺)라는 이름으로 창건

오봉산 정상 바로 아래로는 신라때 창건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 말사인 주사암(주지 효웅 스님)이 있다. 오봉산 정상 바로 아래가 주사암이니 그만큼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이렇게도 높은 곳에 절이 있었으니 새삼 선조들의 노고와 지혜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주사암의 대웅전 뒤로는 중절모 모양의 바위가 둘러싸고 있는데, 그 바위 아래 절이 단정하게 있었다. 유독 큰 바위들이 많아 신라 고찰의 명성에 어울리는 모양새다. 주사암은 삼성각, 법당, 종각, 영산전, 요사체, 스님수행전각 등으로 단계별로 구성돼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주암사(朱巖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한다. 남쪽은 탁 트여 부산성(富山城)이 한눈에 들어오며 나머지 삼면은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형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주사암(朱砂庵)에 대한 전설이 기록되어 있는데 신화와 주술, 화랑의 역사가 어우러진 사찰로 추측한다.

건천에 사는 한 주민은 오래전부터 이곳 오봉산을 자주 산행하며 아껴왔다면서 “주사암은 원래 매우 작은 암자였습니다. 지금처럼 여러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 훨씬 고즈넉하고 운치있는 암자였습니다” “또 마당바위에는 드라마 촬영지 표지판들이 너무 크게 자리하고 있어 거슬려서 재고돼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오봉산 코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신라 화랑들의 무예 연마터 ‘마당바위’...수려한 산세와 바위 아래 풍광 감상할 수 있도록 잘 꾸민 무대 같기도
주사암에서 약 50여 미터 가면 그 유명한 ‘마당바위’가 나온다. 대략 해발 700m 높이에 있는 마당바위는 그날 특히 바람이 거세서 몸이 휘둘릴 정도였다. 마당바위는 산 정상부의 절벽에 형성된 너럭바위로 김유신과 화랑들이 호연지기 하던 곳으로 전해지며 호쾌한 조망으로 매우 유명하다.

이곳 마당바위는 오봉산 코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곳으로, 거대한 바위 절벽 위에 삼면이 칼로 정확하게 자른 듯 수직으로 형성돼있고 그 위로 반듯하고 너른 평석이 펼쳐져 있는 모양새였다. 마치 수려한 산세와 바위 아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잘 꾸민 무대 같기도 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마지막회 엔딩 씬이 촬영된 곳이기도 한 이곳에선 인증샷이 폭발한다. 사방이 묘연하리만치 아찔함의 연속이었지만 가슴속이 뻥 뚫리는 상쾌함을 선사해준다.

이 바위를 아직 다녀가지 않았으면 모를까 다녀왔다면 다시 찾고 싶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그 호방한 풍경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마당바위 바로 직전에 큰 두 그루의 소나무를 만나는데 이 사이로 마당바위를 바라보는 것 또한 일품이었다. 희뿌연 안개 속으로 발 아래 펼쳐지는 풍광을 바라보니 탄산수 같은 시원함이 연속해 터진다.

이 바위는 ‘지맥석(김유신 장군이 술을 빚기 위해 보리를 두고 술을 공급해 군사들을 대접하던 곳이라 하는 것에서 연유하고 곳곳에 패인 자국은 말발굽 흔적이라는 설이 있다)’이라고도 불린다. 마당 바위에 앉아 저물어 가는 노을을 바라봐도 한없이 아름다울듯하다. 과연 신라 화랑들의 연마장으로 활용했을만한 품이 넓은 바위였다.

고려 명종때 벼슬에 뜻이 없어 경주에 살면서 여러 문집을 남긴 김극기가 주사암에 올라 읊었다고 하는 싯구가 매우 적절해 인용한다.

‘멀고 먼 구름 끝에 절이 있으니/ 속진 떠난 경지가 거기 있구나/ 새나 날아오를까 굽어 오른 하늘가에/ 봉수대가 바위 위에 올라앉았네//’


-사적 제25호 ‘부산성(富山城)’...4면 모두 경사가 심하고 험준해 방어에 적합한 천혜의 요새, 향가 모죽지랑가 근원도 부산성에서 지어진 노래<사진↑>

주사암에서 정상 바로 밑 주차장까지 돌아나와 오른쪽 길로 내려서면 부산성 방향이 이어진다. 주사암에서 걸어서 15분여 걸린다. 부산성은 부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세 줄기의 골짜기를 따라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석축성이다. 부산은 경주의 서쪽으로 통하는 길목으로서 국방의 요충지였다.
부산은 주사산(朱砂山), 오봉산(五峯山), 오로봉산(五老峯山), 닭벼슬산이라고 하므로 주사산성(朱砂山城)이라고도 불린다. 부산은 경주에서 대구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산성은 663년(문무왕 3)에 쌓기 시작해 3년만에 완공한 석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약 9.47㎞에 이른다. 선덕여왕때는 백제군이 이 산 아래 숨어들었다가 신라군에게 섬멸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전기까지 백제군의 침입에 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현재 대부분 무너져 돌들이 산허리에 널려 있지만, 지금은 남문터, 군량미를 비축하였던 군창터, 주암사터 등의 건물터와 함께 군사 훈련을 시켰던 연병장터, 우물터 등이 남아 있다.

또 득오가 화랑 죽지랑을 그리워하며 지은 향가 ‘모죽지랑가’와 관련된 모죽지랑가의 근원 또한 이 부산성에서 지어진 노래라 한다.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63호입력 : 2020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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