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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2020 > 정체성 잃은 경주 공립미술관, 이제는 변화해야 할 때

미술관의 비전과 조직·프로그램 속에 경주만의 정체성 녹여내야

공립미술관, 도시경쟁력 제고 및 지역문화예술발전 구심점 될 수도
오선아 기자 / suna7024@hanmail.net1465호입력 : 2020년 11월 26일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면서 지자체의 문화정책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공공미술관 설립이 늘어나고 있다. 공공미술관은 공립미술관이라고도 불리며 지자체가 설립·운영하는 비영리 목적 미술관이다. 시민들에게 전시와 교육을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정부가 1991년 제정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하면 ‘미술관이란 문화, 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 향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 조각, 공예, 건축, 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하는 시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미술관은 크게 국립미술관, 공립미술관, 사립미술관, 대학미술관으로 구분되고 있으며, 이중 공립미술관은 전국 64개(경북도내 5개) 가운데 경주는 경주예술의전당 내 ‘알천미술관’과 경주엑스포 공원 내 ‘솔거미술관’ 두 곳이 존재한다.

현재 경주는 두 공립미술관 모두 전시, 교육, 체험, 연구 등 외형적으로는 신라천년의 고도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근시안적 정책에 따른 지역미술관의 정체성 모호함, 안일한 운영체계 등 공립미술관으로 공공성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한국근현대미술 중심지인 경주의 위상 제고를 기대하며 타지역 공립미술관 운영 사례들을 바탕으로 경주 공립미술관의 운영 현황을 살펴보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경주엑스포 솔거미술관 전경.

#경주 공립미술관, 제도적 문제점 및 개선방안

1980년대 중반 박물관법이 재정·공포되면서 박물관 시행규칙이 만들어지고 1990년대 지방자치제가 실시돼 지자체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공립미술관 설립이 늘어났다.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국고 지원을 받아 공립 박물관·미술관을 세웠지만 무분별한 난립과 부실한 운영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공립미술관의 질을 높이고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해 공립미술관 등록 3년이 경과한 64개관 공립미술관 가운데 55개관(2019년 기준)을 평가한다.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도 올해 평가 대상 기관이다.

문체부에 따르면 평가 기준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령에 따른 △설립 목적의 달성도 △조직·인력·시설 및 재정 관리의 적정성 △자료 수집 및 관리의 충실성 △전시 개최 및 교육 프로그램 실시 실적 △공적 책임 등 5개 항목이다.

문체부는 평가인증 결과를 바탕으로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기 위해 우수 기관 소속 공무원 포상, 우수 운영 사례집 발간, 대국민 홍보 지원 등 우수 기관 보상을 강화하고, 모범사례 공유 확산과 미인증기관 대상 상담, 평과 결과 연수회 등을 추진하게 된다.

-설립목적의 구체화 및 체계적인 소장품 관리 필요
많은 수의 미술관이 건립되고 운영되는 것은 문화 향유의 기회를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이미지 제고, 혹은 구색 갖추기 문화시설 정도의 계획으로 미술관 설립돼서는 안된다. 명확한 설립목적을 가지고 건립되어야 하며, 뚜렷한 성격 재정립과 차별적 운영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보다 구체화한 설립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은 공연장으로 만들어진 경주예술의전당의 숨은 공간을 찾아내 전시실로 꾸미고 공립미술관 등록조건을 갖춰 등록한 경주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다. 경주 한국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 화백의 작품 기증 의사로 건립이 추진된 솔거미술관 역시 공립미술관의 최소한의 조건에 맞춰 등록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같이 경주의 두 공립미술관의 경우 뚜렷한 정체성을 세우지 못한 채 운영이 시작된 것이다.

공립미술관의 공공성 부여는 미술관이 담는 내용으로 담보된다. 알천미술관 수장고에는 그동안 흩어져 있던 신라미술대전의 대상매입작품과 아트경주에서 매입한 작품, 경주작가릴레이전에 참여한 작가의 기증작 등 356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지만, 산발적인 방향의 즉흥적인 소장품 수집은 미술관 성격의 모호성을 드러내게 된다.

솔거미술관의 경우 소산 박대성 화백의 기증 작품인 그림 436점, 글씨 182점, 도자기 11점, 부채 12점, 벼루 73점, 먹 117점 등 831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공립미술관은 공공의 기관으로 소장품의 확충, 보관 및 보존, 정보나 자료 제공의 의무 등을 다해야 하는 반면 알천미술관과 솔거미술관은 아직 소장품 구매 예산편성이 되지 않고 있다. 또 경주의 공립미술관 출범이 만 5년이 지났지만, 전문 인력 확충이 미비한 상황이다. 두 기관 모두 학예사가 1명 이상 상시 근무해야 하는 요건에만 겨우 맞춘 채 미술관 전담 학예팀도 없이 운영하다 보니 구조적으로 미술관 업무와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미술관은 소장품을 수집, 관리, 연구 등 소장품 자체의 중요성보다는 그 소장품을 매개로 활발한 소통을 중요시하고 있다. 따라서 소통을 매개로 활용하기 위한 소장품 수집은 미술관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북미술의 진원지 경주
경주미술은 1930년대를 시작으로 9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라 천년의 찬란한 문화가 융성했던 고대문화의 유적지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근·현대미술에서도 뚜렷한 활기를 보여 왔다. 일제강점기로 얼룩진 근대미술에 대한 다방면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근대미술 도입 이래 유수한 미술인을 배출한 경주는 그 저력을 바탕으로 해방 직후 ‘경주예술학교’가 설립돼 전국의 유명화가들이 모여들었으며 이곳에서 활약한 상당수의 작가는 한국미술사에 기록돼 있다.

특히 경북 내에서 가장 일찍 서양미술을 정착시키면서 지역미술의 자생과 토착의 과정이 선행됐던 경주미술은 경북미술의 진원지라 해도 이견이 없다. 90여년의 경주미술문화의 전통성과 역사성은 문화예술분야에 있어 지속가능한 경주의 미래를 담보하는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관람자에게 더 체계적이고 다양화된 미술관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제공될 것이며,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중복된 문화공간에 대한 투자를 방지해 재정적 손실을 막을 수 있다. 또 미술관 고유 성격의 확립으로 미술관 존립의 이유를 확고히 할 수 있다.

이처럼 경주의 근·현대 미술을 관리·연구하고, 전시기획에 반영하고 중심을 잡아나간다면 역사와 문화예술이 함께 숨 쉬는 경주만의 특별한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지역문화예술 이끌어갈 작가 발굴
21세기 한국미술을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 신진작가 발굴 및 지원은 앞으로 한국미술에 불러일으킬 새로운 미술과 지역의 역량 있는 미술인 배출을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최근 지방 미술에 대해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지역 작가존재 여부에 대해 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이는 한국미술계가 이미 지나치게 중앙집권화한 현 상황에서 지역작가는 중앙화단에 입문해야만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탈 수 있는 탈 지방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모든 미술 문화는 거의 전적으로 서울에 의존하고 있음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위한 방편으로 알천미술관에서는 2013년 경주작가릴레이전을 기획해 공모 선정을 통해 작가들에게 개인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솔거미술관에서도 지난해부터 경북미술인 지원사업을 통해 개인전을 마련 등 신진작가들을 발굴하는 형식의 공모전이나 기획 초대전을 개최하며 지역미술 자체의 경쟁력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지역미술의 인프라를 넓혀 나가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지역 미술의 미래를 꾸준히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레지던시 공간 제공, 작품 구매, 아트마켓 마련 등 다방면으로 작가를 지원할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전문성과 대중성 있는 전시기획
미술관은 차별화한 대중을 위해 작품을 수집, 보존함으로써 찬양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미술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사람들도 그런 대중 속으로 끌어들이라는 요청을 받는다. 전시기획에 있어 공공성과 전문성이라는 것은 결국 미술관의 전시가 얼마나 일반 대중들과 소통이 잘 이루어지며 동시에 문화기관으로 공유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느냐는 것을 말한다. 미술관의 전시는 일반 대중에게 작가나 미술사의 중요한 흐름을 접할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현대미술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역할도 염두해야 한다. 하지만 경주의 공립미술관의 경우 두 기관 모두 경주시와 경북도의 출연기관으로 인력과 예산 문제로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다. 현재 최소한의 조건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필요로 하는 블록버스터형 전시 유치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현실이다.

-미술관 주인은 관람자, 전시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 모색
미술관은 전시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관람자와의 소통을 모색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그 결과 전시활동과 소장품이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의 근본은 전시로부터 이뤄지며, 그 전시는 소장품으로부터 시작돼 미술관 교육은 관람자들이 소장품 혹은 전시를 보다 잘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일환이다.

따라서 전시나 소장품을 매개로 한 다양한 관람자층을 위한 연령별, 계층별,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관람자 연구 프로그램도 함께 개발되고 체계적으로 연구돼야 한다. 미술관이 존립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전시와 소장품 수집, 보관, 연구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공공이라는 관람자에게 문화적 체험을 제공하기 위함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미술관의 주인은 관람자이다.

#오랜 숙원, 경주시립미술관 건립 구체화
지난 24일 제50회 기념 (사)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 정기회원전이 경주예술의전당 알천갤러리 갤러리 해에서 펼쳐졌다. 이날 주낙영 경주시장은 오프닝 축사에서 경주시립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주낙영 시장은 “인구가 26만명도 채 되지 않는 중소도시에서 운영비가 엄청나게 드는 미술관 건립은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경주예술의전당을 보자. 지금도 적자로 운영되고 있지만 다양한 사업운영과 활동에 따른 성과를 내고있다. 게다가 경주예술의전당 운영으로 인해 수준 높은 공연과 전시,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시립미술관 건립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한다”면서 “경주는 신라천년고도이기 때문에 역사문화도시라는 DNA를 바꿀 수는 없다. 그것이 우리 정체성이다. 시립미술관과 기존의 공립미술관을 활용해 기획전시와 경주 예술인들의 대관전시 등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작품을 선사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래서 경주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이 경주의 전통문화예술을 찬양하고, 또 시민들에게는 문화예술적 소양을 향상시키고 정서적 힐링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경주시립미술관 건립 추진을 구체화했다.

현재 경주시는 시립미술관 추진을 위해 추진위원회 구성에 나섰다. 당초 지난 4월 천북면 물천분교 터를 시립미술관 후보지로 제시한 적 있지만, 시의회의 반발로 현재 경주엑스포공원 내 솔거미술관 부근과 보문단지 내 경상북도 문화관광공사 사옥 등 두 곳을 다시 시립미술관 후보지로 내세웠다.

시립미술관 건립이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소통시키는 상징으로 경주의 도시경쟁력을 제고시키고 지역문화예술발전의 구심점이 될 수도 있지만, 뚜렷한 정체성을 세우지 못한 채 지방자치단체의 이미지 제고, 구색 갖추기 문화시설 정도의 계획으로 미술관이 설립된다면 머지않아 지역민들의 비판은 거세질 것이다.

미술관 건립은 막대한 예산과 인력, 시간이 투여되기 때문에 보다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계획수립이 필요하다. 오늘날 미술관은 미술품의 수집과 보존이라는 전통적인 역할은 물론 시민의 문화기관으로 새롭게 변화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정체성 잃은 경주공립미술관 두 곳 역시 순서는 바뀌었지만, 경주만의 특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경주만의 정체성을 미술관의 비전과 조직, 프로그램 속에 녹아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오선아 기자 / suna7024@hanmail.net1465호입력 : 2020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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