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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의 현대적 조우 ‘남리 최영조 5500’전… 대향연 펼치다

전통과 현대성이 조화로운 통합 이루며 ‘정신’ 담긴 문인화의 지평 넓혀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88호입력 : 2021년 05월 13일

경주예술의전당 대전시실에서 다시 한 번, 먹 향기 머금은 매화와 전통과 현대적 선율의 대향연이 소용돌이 칠 예정이다.

남리 최영조 화백이 2018년 개인전에 이은 새 전시인 15회 개인전 ‘남리 최영조 5500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와 서울에서 두 차례 연이어 펼쳐질 이번 전시는 먼저 경주에서 그 첫 선을 보인다.
오는 18일부터 23일까지는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갤러리 해에서, 26일부터 31일까지는 서울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다. 이번 전시는 그가 매년 해오던 정기전의 일환으로 지난해도 예정됐으나 코로나로 불발된 전시의 확장이다.

‘5500전’이라는 독특한 전시명은 그의 나이 55세 되는 올해, 경주예술의전당 300평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5500호 가량의 크고 작은 작품을 준비해 펼쳐 보이겠다는 취지에서 지은 전시명이라고 한다.

최영조 화백은 전통문인화를 전공했으면서도 현대화의 가능성을 찾아 실험적인 길을 걷고 있는 대표적 작가다.

수묵화 분야에서 현대적인 감각을 재탄생시켜 새로운 창작 분위기를 주도하며 화단에 큰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그는 격조를 판단하고 능숙하게 구사해낸다.

문인화는 전통의 엄격한 관념적 틀에 규제돼온 장르임에도 서양화의 요소까지 수용하면서 다양한 모색을 시도하고 있는 것.

그의 이러한 현대적 작품들의 특징과 법고창신의 기획이 과감하게 옮겨지고 유감없이 발휘될 이번 전시에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매화에 집중해 작품화하고 있는 최 화백의 이번 출품작은 약 300호와 200호에 이르는 매화 병풍 2점과 500호와 150호~50호 매화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을 필두로 ‘겨울 연밭’, ‘음율(공간)’, ‘몽현’ 등의
크고 작은 작품들을 출품해 대전시실을 가득 채운다. 주목할 것은 이번 전시에서 추상으로의 강한 동력이 느껴진다는 대목으로, 관람자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소풍’, 2020, 캔버스에 아크릴, 194×130.3cm.

-“수묵 표현의 다양한 가능성을 확보하면서 주제의 확장도 함께 추구”

최 화백이 그간 화선지나 장지로 수묵의 표현성 실험에 노력을 기울여 얻은 효과를 캔버스에 옮겨 그리며 물감 역시 아크릴로 바꿔서 실험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오랜 수련과 엄청난 연습량은 정신적인 힘으로 작품의 바탕에 작용한다. 서양화적 재료로 바꾸더라도 절충적이거나 혼합적인 인상을 주지 않는 문인화로서 일관성 있게 ‘정신’이 담긴 작품으로 여전히 작동하는 것.

김영동 미술평론가는 “남리 최영조 작가는 사군자의 전 품목뿐만 아니라 남종문인화의 사의(寫意)적인 풍경화와 정물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현대적인 참신한 감각으로 구현한다. 그림의 구도나 구성 표현력 등에 나타나는 감각의 현대성이 동서양 회화의 융합적 차원에서 일관성과 정체성을 견지하면서 변주할 수 있게 된 점이 돋보인다. 작품들에서 전통과 현대적인 시각이 조화로운 통합을 이룬다는 평가는 동시대적인 감성에 큰 호소력을 갖는다”라고 하면서 “2010년경부터 시험적으로 선택한 아크릴 물감과 캔버스 바탕으로 작업한 것은 문인화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로 보이나, 재료의 이질감에서 오는 저항을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극복해낸 저력은 자신감이었다. 모필 붓으로 운필과 채색에서 동양화 특유의 농담이나 논리를 유지하며 같은 화제(畫題)를 구사한다는 것은 표현력의 자신감 없이는 도전조차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했다.

↑↑ ‘고향의 봄’, 2021, 캔버스에 아크릴, 227.3 × 181.8cm.

-매화 작업 하면서 줄곧 추구한 것은 ‘청명(淸明)’// 연밭 시리즈에선 구상에서 이탈하는 경향 보이기도

그가 매화 작업을 하면서 줄곧 추구한 것은 청명(淸明)이라고 한다. 맑고, 깨끗하고, 꾸밈이 없고, 거짓이 없는 정신 또는 가치 세계를 매화를 통해 기운생동을 주는 필법으로 구현하고 있다.
“맑은 정신으로 붓을 잡으면 붓 끝에서 기가 생겨 선들이 살아있는 획으로 이어져 생명력 넘치는 선을 이룹니다”라고 스스로 말한다.

“2015년 전시에서 제 그림은 롤러로 페인팅 한 작품도 있었어요. 다양한 재료와 도구로 변화를 주면서 매화를 가져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표현의 방법적 측면에선 아직 내놓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라면서 작업의 추상성에 가속도를 내는 과정임을 암시했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최 화백의 작품세계를 ‘청명한 정신세계와 자신감 넘치는 선묘’로 평한다.

“남리 선생이 30여 년 화업을 지속하며 줄기차게 추구해온 것은 ‘정신’이다. 그는 오랫동안 문인화를 그리며 매화에 귀결해 이 정신세계를 새롭게 표현하려고 했다. 문인화의 정신을 견고하게 붙잡고 있으면서 동시에 재료에서 과감한 전환을 시도한다. 그것이 아크릴 문인화다. 매화 연작과 연밭 연작 등의 작업을 하면서 작가가 견지하고 있는 것은 청명이라는 정신 가치이고, 선묘(線描)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보인다. 한편, 연밭 시리즈에서 작가는 구상에서 이탈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선(線)에 대한 자신감이 고조되어 있으면서 면과 선의 배치에 고도의 기획이 들어있다”고 했다.

↑↑ ‘몽현(夢顯)Ⅰ’, 2021, 장지에 먹, 37.9×45.5cm.

-“매년 개인전을 해야 새로운 작업이 생깁니다”

1년에 한 번 씩은 전시하려 노력해 온 최 화백은 매년 진행해 온 전시지만 조금이라도 변화되고 새로운 전시를 선보이고자 애써왔다. 그의 진정한 한 해의 시작은 다음해 매화 작업의 시작점인 매년 11월부터다.

“연중 11월부터 2,3월까지는 전시 준비를 하느라 재료부터 사둡니다. 늘 작업 준비를 해두는 편이죠. 술 한 잔 마시다가도, 친구를 만나다가도 화실서 바로 작업 할 수 있도록요. 매년 개인전을 열어야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그는 매년 3월 전후로 탐매 작업을 떠난다. 문득, 매화를 탐색하러 떠나는 것인데 같은 장소의 매화를 찾아도 매번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에게 매화는 힐링이자 자신만의 기운생동인 것이다. 매화를 늘 가까이 두고 있는 그이기에 “매화를 탐색하러 가는 것이 가장 설레고 행복한 일입니다”라고 했다.


-앞날이 보장되지 않아 휘발유 한 되 사서 화구들 전부 불태우기도// 7년 만에 국전서 특선 세 번, 입선 두 번 하면서 기치 올려

현재 위치의 최 화백에게는 젊은 날의 시련과 좌절이 바탕이 되었다. 20대 중반 여인숙에서 일 년을 살기도 할 만큼 그의 청춘은 가난하고 암울했다. 참새 두 마리, 홍매화와 백매화를 한 달에 100장씩 같은 구도에, 같은 그림으로 그려 장당 3500원을 받고 화상에게 팔았다고 고백한다. 물론, 화상이 주문한 그림이었고 낙관이 없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번 돈은 한 달 35만원이었고 당시 수입의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필력이 자연스레 형성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돈으로 방세 주고 나머지로 한 달을 살아내며 일 년을 버텼죠. 표구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품삯을 받기도 했지만 4~5일을 굶기도 했었지요. 경주 시내에서 생활하면서도 명절에 내남면 집에도 못 갔어요. 부모님 뵐 면목이 없어서요. 눈물 나죠”

한때는 그림을 접고 생활을 위해 보통의 회사에 이력서까지 접수하기도 했다. 40대 초반이었다. 사람 좋아하는 그는 당시 다양한 사회의 모임과 사회봉사활동 등을 대부분 정리했다. 그러나 우직한 화가의 길은 이어지고 그 배경에는 아내의 전폭적인 이해와 후원이 있었다고 한다.

“결혼 전 도저히 화가로서 앞날이 보장되지 않아 휘발유 한 되를 사서 화구들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일체의 화구를 다 없애버렸죠”

그렇게 그림을 접었던 그는 표구사에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표구사의 대표가 된다. 결혼은 했지만 모든 게 빚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그림을 재개한 것은 표구사를 운영하면서 1994년 신라미술대전에 응모해 입선 한데 이어, 1995년 경북도미술대전 첫 출품에서 다시 동상을 수상한 것이 강력한 동기가 됐노라 말한다.

“신라미술대전 초대 작가만 되면 유명해질 줄 알았습니다. 산 넘어 산이라는 걸 깨닫고 공부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2003년 상경했습니다”

그러나 국전에 4년 연속 실패했고 우송헌 김영삼 선생과 인연이 돼 2006년 국전 특선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특선 수상 후 그 해 생애 첫 전시를 한다. 그 해엔 대구예술회관의 올해의 청년작가공모에서도 만 40세에 청년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청년 작가 선정이야말로 화가로서 재도약하는 굳건한 계기가 됐다고 회고한다.

“제가 지금도 지역의 청년 작가를 후원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늘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의 계기가 됐습니다. 제 경험에서의 발로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는 7년 만에 국전에서 특선 세 번, 입선 두 번을 하면서 기치를 올렸다. 1994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공모전에 출품해 수상한 것은 76회 정도로 그 중 매화 작이 65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 ‘눈꽃 향기’, 2021, 캔버스에 아크릴, 60.6 × 72.7cm.

-“주위의 많은 분들이 지금의 화풍을 견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최 화백은 사람들 속에서 행복해하고 그들에게서 많은 부분 영감을 얻기도 한다.
“제 그림은 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제 작업에 언제, 누가, 어떻게 영감을 줄지 모르니까요. 그림은 화가의 창작물이지만 주위의 환경과 사람과 자연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기도 하고 망친 작품에서 오히려 새로운 결과물을 얻기도 합니다. 그래서 ‘캔버스에 아크릴’이라는 작업도 구현할 수 있었거든요. 제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서 제 그림의 방향이 전환되는 계기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최 화백의 주위엔 그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대추밭백한의원 백진호 원장이 그렇고 큐레이터 박미희 씨, 경주문화원 조철제 원장,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이 그렇다. 이들의 의견들은 최 화백의 작품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 변화를 동반하는 발전적 화풍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 중에서도 강력하게 여러 번 지적한 이가 백진호 원장인데 “그 덕에 보약을 몇 첩 먹은 것처럼 제 그림의 방향이 진일보했습니다. 바로 캔버스에 아크릴 작업을 유도해 준 주인공이었거든요. 재료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유도해 준 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조언으로 작풍의 직접적 변화를 가져왔고 반응 또한 더욱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 ‘여유Ⅱ’, 2020, 장지에 먹, 아크릴, 101.5 × 144cm.

-에필로그... ‘시골사람 도시화가’ 남리 최영조는 풍류쟁이자 태생적 예술가

“좋은 작품은 의도하지 않아야 나오는 것 같아요. 진정한 내면 속에서 들춰지는 그림이 제대로죠”

그는 풍류쟁이다. 태생적 예술가고 화가다. 늘 하이 텐션(high-tension)인 듯한 그에게선 특유의 가식 없고 담박한 전류가 흐른다. 그 따뜻한 전류는 금세 작업으로 흘러 들어가 우리에게 위안과 휴식을 전하는 격조있는 작품으로 이어진다. 유쾌한 성품 속에 철두철미한 기본적 성실성을 장착한 최 화백의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호방한 기질은 그만의 필법과 묵법으로 구현된 작품들에서 엿볼 수 있다.

“지역서 ‘매화’ 하면 ‘남리’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지명도가 낮고 갈 길이 멀어요. 이제 겨우 수면 위로 떴을 뿐입니다”라는 그의 그림이 지난해 9월부터는 케이 옥션(K Auction)을 통해 더욱 대중과 친근해지고 있다.

4점이 연속 판매되는 성과를 올려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에 대해 “아마도 캔버스에 아크릴화여서 현대에 부응하는 색감으로 색도를 높인 것이 주효한 것 같아요. 색다른 문인화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라고 진단한다. 실험적인 작업으로 열심히 노력을 경주하며 끊임없이 도전한 작가로서 좋은 결과까지 도출해내는 최 화백을 보면 천생 예술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리 선생은 매화를 하시니 항상 봄이다. 봄이라서 늘 에너지가 넘친다”라는 지인의 말처럼 우리가 최영조 화백에게 늘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넘치는 에너지 덕이다. 작업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으로도 다음 단계 작업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기 충분하기에.

이 좋은 봄날이 다가기 전, ‘매화 작가’로 불리는 그와 한 잔 술 대작하며 ‘인생’ 따위나 논해볼까.

-남리 최영조는
서울, 대구, 울산, 경주, 포항 등에서 개인전 15회, 국립현대미술관, 경상북도도의회, 경주시에서 작품소장, 케이옥션(K-Auction)에서 4점 판매, 현재 (사)한국미술협회 경주미술협회 지부장, 우송헌 김영삼 선생과 월봉 정석환 선생에 사사, 남리 먹그림집에 주재하고 있다.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88호입력 : 2021년 0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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