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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향가는 일종의 연극대본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05호입력 : 2019년 09월 05일
↑↑ 김영회
향가연구가
현재의 향가풀이는 일본의 고대문자 해독법이었다.

인류에게 어느 날 집단 기억상실이라는 사건이 생겼다고 하자. 그날 이후 1500여년이 흐른 미래인들이 우리가 쓰던 핸드폰을 동굴 속에서 발견했다. 기능도, 용도도 알 수 없는 미지의 물건. 미래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했다. 어떤 사람이 자판의 버튼 몇 개를 눌러보았더니 내장돼 있던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들은 소리를 담아놓은 기계라고 결론 내렸다. 핸드폰이 가진 여러가지 기능까지는 알지 못했다. 미래인들이 핸드폰의 복잡한 구조는 상상도 못한 채 그 속에 내장돼 있는 몇 마디 소리만을 듣고 소리 기계라고 주장한 것이다. 지금까지 향가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이 이랬다.

향가를 알려면 불편한 이웃나라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일본에는 1500여년 전의 책으로 만엽집이라는 게 있다. 파고 들어가는 데 일가견을 가진 그들은 몇 백 년 동안 그 책을 연구했고, 서기 600년대를 전후해 살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소리 그대로 써둔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일본제국은 조선 말 우리나라를 침략해 와서 식민지 정책을 연구했고, 그러던 중에 향가를 발견했다. 그들은 신라의 향가 역시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소리를 써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방법으로 향가 25편 전체를 해독해낸 사람은 오쿠라신페이(小倉進平)였다.

그들은 왜 남의 나라 고대문자에 관심을 가졌을까. 가나자와 쇼자부로(金澤庄三郞)라는 학자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가나자와는 언어학자로 조선어와 일본어는 같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내선일체라는 침략정책에 앞장 선 것이다. 일제는 학자들의 지원을 받아가며, 독립군을 처형하고 민족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각종 서적을 소각했다. 민족말살이라는 배경 하에서 이러한 학자들이 향가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오쿠라의 향가해독은 민족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냈다.

이에 우리 민족이 향가 해독 전쟁을 시작했다. 대표적 인물이 양주동 박사로 그의 분노는 역사를 바꿨다. 그는 훗날 민족이 총과 칼로만 망하는 것이 아니더라고 그 때를 회고했다. 양주동 박사는 오쿠라의 논문을 읽은 다음 날부터, 향가 연구에 빠져들었다. 마침내 오쿠라의 해독을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었고, 반박했다.

센세이셔널한 반응이 일어났다. 일본인들은 당황했고, 우리 민족은 환호했다. 어느 일본인은 조선의 학자들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고까지 말했다. 향가 연구로 한일 학계의 주목을 받다가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오쿠라는 발끈했다. 자신이 잘한 것에는 눈을 감고, 틀린 것만 지적했다면서 분개했다. 10년 후 다시 양주동 박사와 대적하겠노라고 결연히 선언했다. 그러나 오쿠라는 7년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표선수가 향가라는 링 위에서 맞부딪칠 대혈투는 무산됐다. 하지만 양주동 박사는 상처받은 민족의 자존심을 치유한 일대 기린아가 되셨고, 민족의 사랑을 받았다.

뜻밖에도 이 과정에 예기치 않은 일이 잠복해 있었다. 양주동 박사가 천려일실을 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이식한 해독법, 그 가설이 과연 우리 향가에도 적용될 수 있는 지 여부를 철저히 검토해보지 않으신 것이다. 일본인이나 양주동 박사님 모두가 일본식 해독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들여다보았던 것이다. 이후의 학자들도 이에 대한 큰 문제의식 없이 오쿠라 이래 해독 결과의 수정보완에 매진했다.

하지만 이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필자가 향가 제작법을 연구하면서, 향가의 구조를 해부해 본 결과 일본식의 방법은 외과 수술을 하면서 돌칼을 들고 덤빈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향가 속에는 구조라는 것이 들어 있었다. 향가는 시가 아니었고 뮤지컬이나 연극과도 같은 무대예술의 대본이었다. 정교한 설계도에 따라 최고의 기술로 핸드폰이 제작됐듯이, 당시 경주를 중심으로 한반도에 살던 지적 엘리트들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하고, 만든 것이었다. 상상을 뛰어넘은 첨단 제품으로서, 세계에 유례없을 최고수준의 제품이었다. 그들이 만든 향가라는 첨단 제품은 한반도는 물론이려니와, 동북아 전체로 수출돼 소비되고 향유됐던 것으로 밝혀진다.

필자의 칼럼은 향가 제작법을 향가의 주인이신 경주 시민들께 돌려드리고, 향가 제작법의 로제타스톤을 남겨주신 원효대사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자는 글이다. 본격적으로 향가 제작법에 들어가 보자.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05호입력 : 2019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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