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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정치인 VS 학자∼서예가…, 정종섭 국회의원-남령 선생 서예전 찾아 먹향 담은 고담준론

전시실 가득 존중과 겸허 진한 인향(人香) 묻어나
박근영 기자 / 1391호입력 : 2019년 05월 23일
↑↑ 선의 절묘함에 감탄하는 정종섭 의원과 몸을 써가며 설명하는 남령 선생.

지난 16일 오후 5시경 인사동 한국미술관 3층, 남령 최병익 선생의 회갑기념 전시실에 경주출신 정종섭 국회의원(대구 동구갑·서예가·전서울대교수·법학대학원원장)이 조용하게 방문했다.

전시실에는 몇몇 관람객이 있었으나 늦은 시간이라 다소 한산해진 분위기. 정종섭 의원을 알아본 남령 선생이 반갑게 정 의원을 맞는다.

“아, 선배님. 꼭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주중학교 두 해 선배로 모교에 와 있던 정종섭 의원의 글씨를 보면서 서예가로서 정종섭 교수를 흠모했다는 남령 선생, 전시회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이전에 왕래가 없어 차마 초대장을 보내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마침 남령 선생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정종섭 의원이 그날 바로 전시장으로 달려 온 것.

“경주 출신으로 대단히 빼어나신 분이라 들어왔기에 저도 꼭 뵙고 싶어 달려왔습니다”

잠깐 탁자에서 인사를 나눈 두 서예가는 다투다시피 작품 앞으로 다가선다. 전시실을 한 바퀴 빙 둘러본 정종섭 의원.

“그림이 많으시군요!”

짧은 한 마디. 전시실에는 글씨보다 그림이 눈에 띄게 많다.

“글씨만 써가지고는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요…”

솔직한 남령 선생의 말에 ‘그렇지요. 사람들이 글씨를 너무 모르다 보니…’라며 정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참이나 묵묵히 그림을 대하는 정 의원이 심호흡을 한다. 호흡의 의미가 무얼까…. 몹시 궁금하다.

대형 소나무 그림으로 칸막이가 쳐진 전시실 안쪽에는 역시 대형 글씨의 장진주(將進酒)가 호방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정 의원이 발길을 뚝 멈추고 글씨를 음미한다. 그런 정 의원의 시선을 남령 선생이 지켜보며 선다. 이백(李白)의 풍류가 무한정 흐르는 장진주 속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그대 위해 내 한 곡 부르리라. 모쪼록 그대는 나를 위해 귀 기울여 다오(與君歌一曲 請君爲我側耳聽)’ 기묘한 기류가 느껴진다. 그 정적을 깨는 남령 선생의 한 마디.

“저도 술 한 잔 마신 걸음에 써 보았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 보며 껄껄 웃는다. 긴장이 사라지고 다소 느긋해진 기운이 돈다.

-명필일수록 붓 가린다. 벼루와 먹, 종이도 가린다.  정종섭 의원 꺼내 든 그림에 ‘저보다 낫습니다’ 감탄…!
찬찬히 이어지던 발길이 이번에는 남령 선생 특유의 문자도 앞에서 다시 멈춘다.

“아, 새로운 시도군요…”

유심히 지켜보는 정 의원에게 남령 선생의 설명.

“오방색을 써서 조형미가 있는 그림 글자를 써보았습니다. 사군자 모두를 문자도로 표현할 수 있는데 저만의 기법을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정 의원은 현대작가로서 새로운 기풍을 연 작가들의 사례를 들며 수묵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조형을 고려한 서예의 개척도 중요하다며 공감했다.

“아, 이 청묵은 참으로 좋은 빛이 나왔군요”

정종섭 의원이 가리킨 것은 매화도 한 폭.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먹의 깊이를 꿰뚫어본 정 의원의 감탄에 남령 선생이 어색해하며 고백한다.

“그릴 때까지는 좋았는데 배접을 고려하지 못해서 원하던 대로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전시실을 한 바퀴 돌아본 뒤에 서예 문외한인 기자의 질문에 두 대가의 답이 이어졌다.

“흔히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데 두 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생뚱맞은 질문에 두 서예가가 고개를 저으며 웃는다. 남령 선생이 왕희지의 고사를 들어 왕희지도 몇 자루의 붓을 사서 그 중에 좋은 털을 골라서 다시 붓을 만들어 섰을 정도였다며 귀띔한다. 중국 여행을 자주한 바 있는 정종섭 의원은 가는 곳마다 벼루를 보러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단계석 벼루가 좋은 이유는 거기에 먹을 갈 때 서예가가 원하는 대로 좋은 농도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통 글씨를 모르는 사람들이 글씨 쓰는 그 순간만을 고려해서 글씨를 쉽고 값싸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그게 다 많은 비용의 결과지요”

두 대가는 공히 붓 한 자루로 몇 달 쓰지 못할 때도 있다는 말도 한다. 그만큼 글쓰기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단적인 표현.

먹 역시 좋은 먹을 썼을 때 원하는 글씨의 농도를 맞출 수 있다고 맞장구치는 두 대가. 심지어 좋은 먹을 좋은 벼루에 갈면 힘주지 않고 먹을 세운 채 가만히 밀기만 해도 먹이 갈린다고 알려준다. 종이도 마찬가지, 문방사우의 질이 글씨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말은 일반인들이 아는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 일깨운다. ‘명필일수록 붓 가린다. 벼루와 먹, 종이도 가린다’

대화 중 정종섭 의원이 자신의 휴대폰에서 그림 한 점을 띄워 올린다. 거기에는 세로로 길게 호수가 펼쳐졌고 호수의 작은 바위섬 위로 휘영청 달이 떠 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담백하고 기품이 어렸다.

“아, 저는 할 줄 아는 게 이것 밖에 없지만 선배님은 그 엄청난 공부에 번잡한 정치에 하시는 일이 보통 많으신 게 아니신데 그림까지 이렇게 대단하시군요. 저보다 훨씬 낫습니다”
진심으로 탄복하는 말임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화광동진, 정치는 잡다한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 소동파에게도 정치는 어려웠던 것…!

“저는 선배님께서 서울대학교 그 뛰어난 인재들을 가르치다 거칠고 투박한 시장 사람들과 시정의 잡다한 사람들을 상대하시는 모습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때까지 정치담론은 전혀 없다가 남령 선생이 뜻밖의 안타까움을 피력하고 나왔다가 어색함을 메우려는 듯 한 마디 덧붙인다.

“물론 퇴계 선생도 낙향해서는 시골 사람들의 말로, 농투성이들의 말로 사람들을 대하셨다지요”

정종섭 의원이 허허 웃으며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대신한다. 자신의 덕과 재능을 감추고 세속을 따르고 속인들과 어울린다는 뜻. 마침 지난 4월 11일, 정종섭 의원을 만난 기자에게 정 의원은 정치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예상은 했지만 정치는 정치인만의 철학이나 신념으로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깊이 생각하고 법리적으로 충분히 검증하고 발언한 말들이 당리당략, 심지어 같은 당내 파당의 이익에 의해 아무렇게나 짜깁기되기 일쑤였습니다. 그걸 또 방송과 언론이 아래위 다 자르고 보도하면서 정치인을 자기들 구미대로 재단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헌법학자이자 냉철한 정치개혁가로 정계를 비판하던 정종섭 교수는 박근혜 정권에서 정부개혁을 주도한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명성을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러나 자신의 평생 공부인 헌법 정신에 맞춰 정치를 개혁하고자 한 의도와 달리 정치는 그때그때 눈치껏 치고 빠지는 사람들의 ‘막 되먹은 판’이었고 철학적 고뇌를 담은 기자회견과 정치주장들은 앞뒤가 형편없이 잘린 채 보도되기 일쑤였다.

“어느 시대나 정치는 늘 그랬습니다. 소동파도 그랬지요”

정종섭 의원은 자신이 가장 흠모하는 유학자로 소동파를 꼽는다. 동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표현을 쓰며 그 자신 그런 소동파를 닮기 위해 다방면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글씨와 그림은 물론 사진과 각종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정종섭 교수는 박람강기·다재다능의 대명사다. ‘소동파도 그랬다’는 말의 저변에는 소동파의 시를 악의적으로 재단하고 해석한 신법당에 의해 황주로 유배된 소동파의 억울함이 자신의 정치적 역경과 닮았다는 소회가 깔려 있는 듯했다. 그런 정 의원에게 이날의 방문은 진정한 ‘힐링’인 듯 여겨졌다.

-‘글씨 모르고는 흉내 낼 수 없는 선’ 공감에 ‘오늘 좋은 것 배웠습니다’ 덕담, ‘촌사람 전시회, 귀한 분 오셔서 빛났습니다’ 겸양도!!
탁자에 앉아 담소하던 정종섭 의원이 다시 일어서서 대형 소나무 그림 앞에 선다. 이번에는 숫제 품속에서 돋보기안경까지 꺼내 쓴 채다. 그때부터 붓의 운용이 어떻게 되었느니 선이 어떻게 그어졌니 하는 이야기들이 두 서예가들만의 언어로 진행됐다. 그 와중에 정 의원이 탄성을 지른다.

“이런 선들은 글씨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는 흉내낼 수 없는 선들입니다”

마침 어느 소나무 그림 앞에서는 정 의원이 바람결에 나부끼는 듯한 소나무를 보고 남농(南農) 허건(1907~1987)을 떠올리며 ‘남농 소나무가 자기 식으로 갔듯 (남령 선생의)이 그림들도 완전히 자기식으로 굳혔다’며 ‘남령준’이라 칭했다.

남령 선생은 “이전의 소나무 그림들이 차륜법으로 솔잎을 빗금으로 그렸는데 남농에서 처음 파필로 훑었다. 저는 그보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소나무를 그려봤는데 그래서 이런 묘사가 나왔다”고 설명한다, 소나무 껍질을 그릴 때는 소나무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물을 뿌려가면서 그렸다는 작법까지 들려준다.

정 의원은 어느 소나무 그림 밑에서 “일전에 서영수 선생께서 경주청솔로 시를 지었는데 내가 장관하던 시절 그 시를 한글로 써서 중앙일보 자선경매행사에 주면서 300만원 이하로는 절대 내주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이런 담소 중 정 의원이 또 다른 그림 앞에서 선 하나를 가르치며 이 선은 어떻게 꺾은 것이냐고 묻자 남령 선생이 몸을 써가며 글씨를 쓸 때의 기법을 설명한다. 이어 또 한 폭의 매화도가 나오자 정 의원이 필선을 유심히 보다 ‘이 선도 그렇게 해서 나왔군요’라며 감탄한다. 그러면서 ‘제가 오늘 좋은 걸 배웠습니다’며 덕담을 마다하지 않는다. 남령 선생이 “선배님 아니시면 절대로 이 말씀 안 드렸을 것입니다. 귀한 분 오셔서 전시가 빛났습니다”며 한껏 천진한 웃음을 띤다.

그림과 글씨를 두고 진지한 대화를 나눈 두 대가의 모습에서 ‘고담준론’의 원어적 의미를 실감했다. 무엇보다 오늘 처음 만난 두 거장이 마치 오랜 지인처럼 쉼 없이 대화 나누는 모습에서 ‘이 분들이 처음 만난 분들 맞나’ 싶은 의문마저 들 지경이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 존중과 겸허라는 선비의 덕목이 한껏 우러났다. 전시실 가득 묵향보다 진한 인향(人香)이 퍼져 흘렀다.
박근영 기자 / 1391호입력 : 2019년 0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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