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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독점, 지면 최초 공개(마지막회) 문서 발견한 경주최부자선양회 최창호 이사를 통해 본 향후 과제

“문서들은 경주시민의 자산… 잘 보존되고 연구돼 경주사회에 보탬 되기를”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03호입력 : 2019년 08월 23일

많은 문서들 전문 연구자들 손길 기다리고 있어
한 건씩 문화재로 등록돼야 유물전시관 확보 시급


↑↑ ‘황성신문’ 한 묶음으로 대한광무5년(1901년) 2월부터 5월까지 발행된 것

“이 유물은 우리집안 누구 한 사람, 한 개인의 재산이 아닙니다. 경주사회 전체의 자산이지요. 공적인 유물이요, 경주시 공공의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주시민의 자산으로 잘 보존되고 연구돼 더욱 알려지고 경주사회에 보탬이 돼서 시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자산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경주최부자 11세 주손이자 경주최씨중앙종친회 명예회장 최염 회장이 최부잣집 고택에서의 방대한 문서 발견을 두고 한 말이다. 

300여 년간 이어져 온 대표적인 조선의 부자 가문으로 이웃을 위해 곳간 문을 활짝 열었던 최부잣집 창고에서 발견된 수 만 건의 문서들에 대해 지난달 18일(1399호)부터 연재해 이번호(1403호, 5회)를 끝으로 미진했지만 마무리하게 됐다.

조선시대 1600년 초부터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편지와 시문들, 공문서, 명함, 서책 등 수 만 가지 자료 어느 것 하나 중요치 않은 것이 없었다. 중요한 문서들을 통해 보는 스토리와 역사적 사실들 중 특히 1907년 나랏빚을 갚기 위해 봉기된 국채보상운동의 경우, 경주 전지역에서 참여한 시민들의 명단이 적힌 ‘경주국채보상운동 단연회’의 스토리, 최부잣집이 독립운동자금을 댔다는 구체적인 물증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문서들을 직접 보고 다룰 수 있어 행복했다. 아직 많은 문서들이 전문 분야 연구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며 향후 학술연구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 한 건씩 문화재로 추진, 등록돼야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이번호에선 곳간서 발견된 문서 외 자료들 중에서 한 뭉치씩 묶여져있는 근대에 발행된 신문들을 살펴보았다. 또 그간 자료제공과 자문에 힘써 준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최창호 이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문서 발견 이후, 앞으로의 문서 연구방향과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동안 자료 제공과 자문에 협조해 준 최부자선양회를 비롯해 최창호 이사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 ‘대한민보’로 우리나라 최초 목판 시사만화를 연재해 인기를 끌었던 신문.

-문서 외 황성신문, 경남일보, 대한민보, 만조보, 대한매일신보, 중외의약신보 등 각 신문들도 발견

문서들 외 자료로는 황성신문, 경남일보, 대한민보, 만조보, 대한매일신보, 중외의약신보 등 각 신문들이 보인다. 이들 신문은 1908~1909년 혹은 1901년의 석달치 정도가 꼼꼼하게 묶음으로 보관돼 있다. 한일합방 이전 신문들에선 항일에 관해 많은 기사를 다뤘으며 지금처럼 논설, 광고, 삽화, 외신을 골고루 실은 전형적 신문의 모습이었다.

1909년 창간된 ‘대한민보’는 오세창이 사장을 지낸 신문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이도영의 목판 시사만화를 연재해 일본인들의 비행을 풍자하고 경고해 인기를 끌었던 신문이다.

최초의 지방 일간지였던 ‘경남일보’는 창간호만 남아있는데 2호부터는 영남대학교에서 도록으로 제작해 발간됐다고 한다. 최부잣집에서 보관하다가 서책류를 기증할 때 함께 보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남일보 창간호는 전국에서 단 두 부만 남아있다고 한다. 경남에서 보관하고있는(문화재로 지정) 한 부와 최부자집에서의 한 부가 전부라는 것. 경남에서 보관중인 창간호는 다소 훼손된 상태지만 최부잣집서 발견된 창간호는 별지(창간을 축하하는 별호)와 함께 온전한 상태므로 이 신문 창간호의 가치는 논할 필요가 없다.

일본 신문인 ‘만조보’는 한 부가 보존돼있다. ‘안중근 의사 사형’이라는 기사가 보여 눈길을 끈다. ‘황성신문’도 신축년, 대한광무5년(1901년) 2월부터 5월까지 발행된 신문이 한 묶음으로 석달치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19년된 신문이다. 황성신문은 가로 27㎝, 세로 38㎝로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총 4면 이었다. 보존 상태도 아주 양호한 편이었다.

↑↑ 전국에서 단 두 부만 남아있다고 하는 ‘경남일보’ 창간호.

-각계의 학자들 발견 문서의 중요성 강조...조선후기 각종 문헌의 완역은 자체의 재원만으로는 극히 제한적

한편, 한 집안에서 발견된 조선 후기 만 점 넘는 초서체 간찰류들은 수신처가 ‘경주최부자’로 확실하다는 것이 중요한 대목이다. 당시 시대상과 상황을 파악하고 연구하는 자료로 한문학계뿐만 아니라 학계의 비중있는 자료로서 그 가치는 상당하다. 특히 1780년경, 18세기 경주의 선비들이 와룡암에서 주고 받았던, 조선문인들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시문들과 화답문이 많이 남아있어 이들만 엮어도 문집 여러권이 된다. 최 이사는 각계의 학자들이 발견 문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연구할 수 있는 부분은 최부자선양회 사비로 계속 연구하고 있으나 워낙 방대한 양이라 어렵다고 했다. 점차적으로 연구비라도 확보해 내용을 발굴하고 학술발표를 가져 이를 바탕으로 완역작업을 해 도록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역사학자일지라도 한문 번역을 다 해내지 못하므로 완역을 거친 도록을 펴내 연구가들이 재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조선후기 각종 문헌의 경우, 완역할 준비를 해가고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건에 대해선 경주시에서도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차제입니다. 예산을 확보해 전시하고 완역을 거친 도록을 만들어 충분히 연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국채보상운동 건은 현재 번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1 최부잣집서 발견된 ‘경남일보’ 창간호의 별호(창간을 축하하는 별지). 2 경주최부자 11세 주손 최염 선생. 3 일본 신문인 ‘만조보’는 한 부가 보존돼있다. 4 100여 부가 전해지고 있는 ‘대한매일신보’.

-독립운동기념관에선 큰 기획전, 대구의 국채보상기념사업회에선 특별 전시 여러번 제안

최근 문서 발견 이후 타지자체나 기관에서 전시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최창호 이사는 “저희 문서 중 서울의 근현대사박물관에서 독립운동과 관련해 50여 점이 현재 전시 중인 것을 비롯해, 독립운동기념관 연구팀은 이번 발견된 독립운동 관련 문서 건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조만간 연구에 착수하려고 합니다. 독립운동사에 큰 변곡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지요. 연구를 바탕으로 독립기념관에서 큰 기획전도 가지고 싶어합니다”

“또 대구의 국채보상기념사업회에서는 기념관 확장을 앞두고 최부잣집서 발견된 국채보상운동 관련 문서들을 별도의 특별관을 기획해 전시하려는 제안을 수차례 해왔습니다”라고 했다.

-유물관 제대로 갖춰야 하는 것이 숙제, 우선 문서 발견된 곳간을 전시관으로 만들 예정
‘최부자’라는 브랜드를 육성해가기 위해선 유물관이라도 제대로 갖춰야 하는 것이 숙제다. 최부자선양회는 1600년 초반부터 1950년까지의 발견된 문서들을 주제를 달리 하면서 교환 전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라도 확보하려고 한다.

“저 개인적으로는 누구보다 이 자료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일반 시민과 방문객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에 걱정과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의 여러 언론 보도로 문서 가치가 초미의 관심사로 알려져 가치가 제대로 자리매김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그래서 임시로라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 합니다. 그리고 상설전시로 고택 마당에서 문서원본을 스캔해 둔 자료들을 전시하려고 합니다. 문서가 발견된 곳간 안에도 문서들을 교대로 전시할 수 있는 전시관을 만들 계획으로 올해 10월 중 사비를 들여서라도 전시관을 운영할 계획중입니다”

↑↑ 중외의약신보.

-국채보상운동...“경주시민 전체가 합심해 경주 각지에서 주도하고 참여한 운동이므로 경주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조성됐으면”

대구의 국채보상운동 기록물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1907년 당시 경주시민이 함께 참여했던 경주국채보상운동은 5000명이 넘는 경주 시민의 참여가 명백한 기록물로 증명됐으며 국채보상운동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스토리와 국채보상운동 전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경우로 문화재로 등록 추진해야할 과제가 남아있다.

↑↑ 최부자선양회 최창호 이사.
최 이사는 “국채보상운동 관련 문서가 최씨 집안에서 발견됐고 최부자가 중심이었지만 경주시민 전체가 합심해 경주 각지에서 주도하고 참여한 운동이었잖습니까. 경주시민 모두가 그들의 후손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죠. 현재 대구에서는 대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의 예산으로 경주에 기념비 정도를 세워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하지만 단일 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경우는 기록에 없으므로 경북도와 경주시의 예산을 확보해 경주에서 우리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충분히 연구한 결과물을 토대로, 경주 시민이 각지에서 참여하는 추진위원회 혹은 기념사업회(가칭)를 만들어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시민 통합에도 한 몫 할 것입니다. 5000여 명의 참여자 각각의 이름을 새겨 그들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이어간다면 자긍심을 고취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며 경주의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발견된 기록물을 바탕으로 가시적으로 경주관광에도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한다면 이야말로 문화재를 활용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더불어 유형적으로도 결과물로서 기념공원 등이 조성된다면 경주 관광발전에 보탬이 됨은 물론 시민의 자긍심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03호입력 : 2019년 0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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