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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룡사지 남쪽서 ‘대규모 광장’ 존재 확인

동서 500m·남북 50m 총 면적 2만5000㎡ 규모m 황룡사지 남쪽광장 정비·활용위한 학술대회 개최
이상욱 기자 / lsw8621@hanmail.net1450호입력 : 2020년 07월 30일
↑↑ 황룡사 남쪽담장 외곽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유구현황도.

신라시대 최대의 사찰 황룡사지 남쪽에 대규모 ‘광장’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광장 규모는 동서 500m, 남북 50m, 총 면적은 2만5000㎡에 이르며, 황룡사지 남측에서 동궁과 월지의 동문 방향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이민형 연구원은 지난 24일 경주 힐튼호텔에서 열린 ‘황룡사지 남쪽광장 정비 및 활용을 위한 학술대회’에서 이 같이 발표했다.

이 연구원은 ‘황룡사 남쪽 광장과 도시유적 조사 성과’라는 주제발표에서 광장이 처음 조성된 시기는 7세기 후반인 것으로 추정했다.

추정 근거로는 이곳 광장 배수로 내부를 채운 유물 중 ‘의봉4년개토(儀鳳四年皆土)’라는 글자를 새긴 기와가 출토됐고, 의봉(儀鳳) 4년은 서기 679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광장은 바닥에 마사토를 깔고 그 위에 주먹크기 정도의 냇돌을 촘촘히 덮어 조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광장은 7세기 후반기 처음 조성한 이후에 수차례 정비된 것으로 확인됐다.

1차 정비된 광장은 최초 광장 위에 마사토와 사질점토를 깔고 자갈을 전면적으로 덮은 양상으로 확인됐다. 이후 2차 정비된 광장은 서쪽을 중심으로 20~30cm 냇돌을 자갈과 함께 깔아 조성됐다고 밝혔다.

광장 배수로도 이번에 추가로 확인됐다. 광장 동쪽경계부에 길이 30.4m, 넓이 280cm의 배수로가 남북방향으로 연결돼 노출됐다. 이는 최초 조성된 광장으로 유입되는 물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시설이다. 배수로 내부에는 신라기와와 냇돌로 채워져 있다.

광장 남쪽에 있는 기옥들과 구분하기 위한 담장도 확인됐다. 광장과 평행하게 조성된 담장은 이번에 280m를 확인했고, 동궁까지는 약 500m로 추정된다. 광장담장은 광장보다 60cm 높고, 벽석너비는 1.5m로 조사됐다.

이민형 연구원은 “광장담장의 기초부는 1차로 조성된 광장층과 맞닿아 있어 담장과 광장이 동일한 축조공정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광장담장을 따라 기와가 다량 출토돼 담장은 기와를 올린 지붕이 있는 구조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남쪽광장은 불교 의례와 국가적 행사 장소로 활용
현재 광화문 광장과 비견되는 규모의 황룡사지 남쪽광장 기능과 역할에 대한 주제발표도 있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김숙경 선임연구원은 이날 ‘황룡사 건축과 남쪽광장’이라는 주제발표에서 광장이 동궁의 동문에서 황룡사로 도달하도록 하는 동서방향의 동선 흐름에 따라 조성됐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동궁 동문의 위치가 동편 남북도로에 접해있고, 건물 중심이 광장 남북 폭의 중앙에 맞춰져 있다”며 “왕이 황룡사로 가고자할 때 왕과 출입행렬이 월성 쪽을 향해 열리는 남문보다는 동문을 통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광장은 동궁에서 황룡사에 이르는 최단거리의 동선이 되는 것으로, 광장이 조성된 주된 이유였다고 추정했다.

또 광장에서 더 남쪽에 있었던 주거단지 사이에 도로와 담장을 축조한 것은 광장과 왕경의 도시공간을 확실하게 분리시키고, 출입을 통제하는 구조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왕경도시개발은 왕족이나 귀족에 의해 추진됐고, 당시 권력의 집중과 상징성 표현, 정치적·사회적 지배구도가 도시 형태에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김 연구원은 남쪽광장은 불교 의례와 국가적 행사 등의 장소로도 활용됐던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황룡사는 신라 궁궐과 인접해 있는 왕경 핵심구역으로 왕실과 지배계층의 권위와 과시를 위한 여러 가지 의례와 행사가 거행됐을 것”이라며 “광장은 동궁에서 황룡사로 행차하는 왕의 행렬을 수용하는 장소이자, 각종 법회와 간등회 등 국가적인 규모의 대형 불교의례와 행사를 위한 장소로 활용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황룡사는 553년(진흥왕 14년) 창건을 시작한 이후 오랜 시간 변화를 거듭해 신라 최대의 사찰이 됐다. 9층의 목탑은 645년(선덕여왕 14년) 건립됐다.

이 절에는 이 탑을 비롯해 장육존상, 천사옥대 등 신라의 세 가지 보물 중 두 가지인 장육존상과 황룡사 9층목탑이 있었다. 하지만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골 침입으로 소실돼 현재 ‘경주 황룡사지(사적 제6호)’라는 이름의 터만 남아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황룡사지 남쪽광장의 역사적 가치와 최근 발굴성과 등을 알려 향후 정비 및 활용방향을 도출하기 위해 열렸다.

‘황룡사의 호국기능과 그 변화’에 대한 기조강연(주보돈, 경북대)을 시작으로, 황룡사 남쪽광장과 도시유적 조사 성과(이민형,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신라 왕성의 중심 황룡사(이은석,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등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이어 제2부에는 황룡사지 남쪽광장의 역사적 의미와 역할(양정석, 수원대), 황룡사 건축과 남쪽광장(김숙경, 국립문화재연구소), 황룡사 남편방장에 관한 고찰(현승욱, 강원대), 황룡사지 남쪽광장의 조경정비 방향(김규원, 한올문화재연구원), 황룡사지 남쪽광장 활용방안(류호철, 안양대) 등이 발표됐다. 발표 후 발표자 전원이 참가한 가운데 열띤 토론도 이어졌다.

경주시 관계자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얻은 학계연구자 및 관계자,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유적의 관련자료 등을 종합해 체계적인 정비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욱 기자 / lsw8621@hanmail.net1450호입력 : 2020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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