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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佛國寺)(7)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505호입력 : 2021년 09월 15일
↑↑ 김경애 시인
경북문화관광해설사
“사이로 걷고 싶은 날 있네
사는 일 동그맣게 말아 수의를 짜는 거미 같은 날
마음만 먼 허공으로 소풍 보내고
짜안하니 몸뚱인 열반에 들고 싶은 날”
-물벽- 중

걷는사람 시인선 44, 손진은 시집 『그 눈들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

살아서 죽은 듯 열반에 들고 싶은 날 추적추적 천상세계 극락정토를 배회해본다.
지극한 즐거움만이 존재하는 영역 극락전(極樂殿)은 아미타(阿彌陀)부처를 모신 법당이다.
불국사극락전 아미타 부처는 높이 1.66m, 양 무릎너비 1.25m 이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 아미타여래좌상으로 국보 제27호다.

산스크리트어로 아미타유스Amitayus 혹은 아미타바Amitabha(무한한 수명, 무한한 광명) 단어를 ‘아미타’ 한자의 음으로 나타냈다. 무량광무량수(無量光無量壽)로 번역된다. 무한한 생명은 자비를 가리키고, 무한한 광명은 지혜를 가리킨다.
아미타amita A는 부정어 접두사다. MITA는 영어의 METER와 같은 의미다. 길이를 재다. 헤아리다. 라는 뜻이다. 이것을 부정하면 잴 수 없다. 헤아릴 수 없다. 한문으로 음역하면 무량하다. 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기독교에서 지칭되는 천당, 불교에서 설하는 극락세계 주검을 관장하는 아미타여래, 법당현판 글에 따라 건물에 대한 용도를 짐작하게 된다. 아미타부처를 모신 법당이 사찰의 중심일 때 무량수전이라 칭한다. 부속건물일 경우 극락전이란 현판을 걸게 된다.

1593년 임진왜란 때 건물과 함께, 1514년 중수한 벽화도 불탄 것을 조선 영조 26년 1750년 중창하고 1925년에 중수하였다. 후불벽화는 1973년 중건 때 조성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양식은 조선후기의 다포계(多包系)형식이다. 연화당초문양과 봉황머리를 장식한 장엄화려하게 꾸민 공포다.

극락세계를 불교경전에서는 구품연지(九品蓮池)라 한다. 아홉 단계로 구분된 연꽃마을을 상징한다. 상품⦁중품⦁하품, 상생⦁중생⦁하생 중, 쌓은 공덕의 질량에 나뉘어 높은 단계인 상품상생, 낮은 단계인 하품하생에 태어난다고 한다.
불국사극락전 아미타여래는 구품인 중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 수인으로 결가부좌 한 불상이다.
한사람이라도 더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중생들이 사후에 몰려드는 하품중생세계에 설법장소를 택한 것을 수인(手印)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극락전법당 내부엔 중심 아미타부처 좌우로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협시불이 상주한다.
후불탱화는 아미타삼존인 아미타부처, 행의 상징인 관세음보살, 지혜를 상징하는 대세지보살이 그려져 있다.
불국사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지 않고, 극락전에만 아미타삼존도, 반야용선도, 선녀도벽화가 그려져 있다.
우측 벽 반야용선도의 불교적 의미는 사람이 죽으면 수미산으로 극락왕생한다. 중생이 살고 있는 남섬부주와 수미산 사이에 구산팔해를 넘어야한다. 인로왕보살 이끄는 반야용선을 타고 다다른다. 49제 마지막 날 태우는 흰 종이배가 반야용선이다.

선녀도 벽화는 천정아래 황토위에 그려져 있다. 입고 있는 조선시대 의상으로 연대를 알 수 있다. 반대방향 위치에 비슷한 그림이 그려져 있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지 않다.

극락전 현판뒤쪽 처마 서까래사이 머리를 박고 웅크린 돼지조각상이 걸려있다. 50cm 규모의 앙증맞은 모습이다. 그동안 현판에 가려져 눈에 잘 띄지 않은 돼지조각상이 기해년(己亥年, 2007) 돼지띠 해 우연히 확인되었다. 황금돼지라 애칭 되며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어느 듯 극락전 마당에 동(銅)으로 재현 전시돼 있다. 복을 꾀하는 동물이라 전래하는 일화로 쓰다듬는 손길 반들반들하다.

극락전에는 탑을 조성하지 않는다. 무량한 수명을 점지한 아미타부처는 열반에 든 적이 없기에 부처의 무덤인 탑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대웅전석등 화창으론 훤히 보였던 석가모니부처님 얼굴이, 극락전석등 연화좌대 화사석(火舍石) 문으론 아미타부처님 얼굴 뵈지 않는다. 열반에 들지 않는 아미타부처면서 그 누구도 죽은 후 살아서 돌아온 적 없기에, 부처의 얼굴을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일까.

사찰의 석등은 백제 미륵사에서 처음 조영되어 통일신라로 전파되었다.
불국사극락전 팔각 돌기둥석등은 활짝 핀 앙련연꽃잎 수수한 맵시로 올 곧은 고전미다. 안타깝게도 중대석 부러진 돌기둥 떼어 붙인 자국이 눈에 아리다.
부자의 화려한 등불보다 가난한 여인의 지극한 등불 하나가 부처의 마음에 공덕을 쌓는다는 시등공덕경(施燈功德經) 등불을 희망으로 밝히는 여심(女心)이다.
석등아래 안상을 두른 봉로대 위에 예물과 향을 피우고 예불을 드린 옛사람들의 불심(佛心)을 맡는다.

“극락전

처마 밑에 쪼그려/ 소나기 긋는다./ 들어와 노다 가라/ 금칠갑을 하고 앉아 영감은/ 얄궂게 눈웃음을 쳐쌓지만//

안 본 척하기로 한다./ 빗방울에 간들거리는 봉숭아 가는 모가지만 한사코 본다.//

텃밭 고추를 솎다 말고/ 종종걸음으로 쫓아와 빨래를 걷던/ 옛적 사람 그이의 머릿수건을 생각한다./ 부연 빗줄기 너머/ 젊던 그이.//”
-김사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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